D+210

シンオウ国
신오국ㅣSinnoh Nation
국기 국장
世の中を変える平和
(세상을 바꾸는 평화)
상징
국가 신오의 노래 [1]
국화
해당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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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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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오수반국 수립 1902년 12월 31일
  • 관동제국에 합병 1910년 5월 1일
  • 광복 1944년 9월 8일
  • 재신오하나군정청 수립 1944년 11월 7일
  • 신오국 수립 1946년 4월 19일
  • 제1차 헌법 공포 1946년 6월 1일
  • 정부수립 1946년 6월 3일
  • 제2차 헌법 공포 1968년 11월 4일
  • 제3차 헌법 공포 1982년 3월 29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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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축복중앙시
최대 도시
축복중앙시
면적
83,424.84km
접경국
관동연합국, 안나르공화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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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8,834,129명
민족 구성
온신족 92.1% 선단족 4.2% 관동인 2.4% 기타 1.3%
출산율
2.23명
평균 수명
90.82세
기대 수명
97.44세
공용어
열도어
지역어
선단어
공용 문자
오정동맹글
종교
국교
없음
분포
군대
신오국 반립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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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성
1개 특별시, 9개 자치도
자치도로
4개 구[1][2] , 32개 자치시, 2개 특별지구[3]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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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다당제
민주주의 지수
201개국 중 18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원수 (챔피언)
코우키 루카스
정부
요인
총리대신
사쿠라이 토모
제1의원 의장
카리노 나마에
제2의원 의장
스테키나 우데
중앙법원장
카카나이 세에메에진
통합선거위원회위원장
리카이 코오카
여당
민권정민당
연립 여당
선단보수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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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
GDP
(PPP)
전체 GDP
$4012억 2861만
1인당 GDP
$41,211
GDP
(명목)
전체 GDP
$3868억 1204만
1인당 GDP
$39,239
외환 보유고
$5,730천억 (세계 39위)2021년
신용 등급
무디스 Aa+
S&P AA
Fitch AA-
화폐
공식 화폐
신오국 환
ISO 4217
SOH, Hw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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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코우키
시간대
UTC+9 (관동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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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가입
1947년
ccTLD
.So
국가 코드
316, SO, SIO
전화 코드
+15

개요

신오국(シンオウ国, Sinnoh(SO), Sinnoh Nation(SN))은 동아시아의 오정열도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다.

상징

국호

신오국의 제3차 헌법에 따라서 공식적인 국명은 シンオウ国(신오국)이다. 해당 수정헌법의 공포는 1982년 3월 29일이였으나 제1차 헌법 제정 이후로도 국명을 シンオウ国이라고 명시하였기때문에 シンオウ国이라는 국명을 사용한 기간은 39년이 아닌 제1차 헌법 반포일인 1946년 6월 1일이 되므로 2021년 기준 75년이 된다. 약칭은 シンオウ(신오)를 약칭으로 쓰고있으나 국가에 따라서는 オウ国(오국) 또는 シン国(신국)을 양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영문 및 약칭 및 통칭으로는 Sinnoh를 사용중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외교&국가적 행사에서는 Sinnoh Nation(SN)이라는 국명을 사용한다. 국가코드로는 SO, SIO이 사용된다. 과거 하나군정 당시에는 HNS(HaNaSinnoh)라는 국가코드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신오국 수립 직후 SO와 SIO로 변경되었다.

국기

シンオウ旗
지위 공식 국기
제정시기 및 근거법령 대신오국 <제국기본법> (1891년 4월 2일)
신오공화국 <공화국 국기에 대한 법률> (1900년 3월 29일)
신오수반국 <공화국 법률 이향에 관한 법률> (1903년 12월 12일)
신오민정임시정부 <1호 의제> (1931년 2월 1일)
신오국 <신오국기법> (1946년 6월 4일)
근거법령 신오국기법
제작자 세에기켄 쿠코센샤 (1850년 ~ 1932년)
후쿠오카 류야 (1923년 ~ 1990년)

검은색과 푸른색 사이의 색깔인 바탕은 우주를 나타냄으로서 신오국의 무한한 상승을 나타내며 중앙의 하얀색과 적색의 별은 우주만큼 넓은 세상에서도 중심을 지키며 밝게 빛나는 신오국을 상징함과 동시에 흔들리지 않는 국민의 열정을 상징한다.

국가

シンオウの歌
지위 공식 국가
제정시기 및 근거법령 신오민정임시정부 <1호 의제> (1931년 2월 1일)
신오국 <신오국가법> (1946년 6월 4일)
근거법령 신오국가법
제작자 알수없음 (1907년 제작으로 추정)

해당 국가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기는하지만 제작자를 확실하게 알수없는 것 에다가, 작곡가가 관동국의 인물인것으로 추정되어 정계에서는 매우 자주 국가 변경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가-리그 분리와 함께 국가의 상징적 부분에서 논란이 가장 큰 문제.

슬로건

  • 人を人らしく、ここは シンオウ国 (1992~2019)
  • 世の中を変える平和 (1989~2000)

역사

신오섬 입장에서 말하자면, "너무 힘들었어요"

고대

신오국 국가의 시작은 기원전 84년[4] 에 탄생한것으로 추정되는 북해왕국이다. 북해왕국은 현재의 오정열도 중 두개의 열도와 안나르공화국의 동부 일부를 차지 했을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북해왕국의 건국 신화를 알려주자면, 초대국왕으로 추정, 또는 예상되는 사아나이토 아이사츠(サーナイト挨拶)는 포켓몬과 인간, 그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라고 한다. 그리고 그 포켓몬은 현재의 가디안, 당시 기준 사아나이토로 추정된다. 일부학자들 이 자료를 근거로 과거부터 포켓몬과의 교제를 가능하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증거부족으로 인하여 사아나이토 아이사츠라는 인물이 실존하는것은 확실하지만, 포켓몬과의 교제를 통하여 태어난 왕일 가능성은 적다는것이 정설이다.

아무튼 다시 돌아오자면 이후 북해왕국은 200년대 중반까지 번성하나 극도의 쇄국정책과 비교류, 그리고 북쪽의 국가의 한계상 농사의 부실로 인하여 반란이 발생하였고 결국 387년으로 추정되는 즈음에 멸망한다.

이후 북해왕국의 지역에는 북조국이 들어섰고 북조국은 과거를 본받고 쇄국을 풀면서 남쪽으로는 관동, 북동쪽으로는 지금의 안나르족 일부와 교류하며 세를 넓힌다. 하지만 이후 관동국의 통일 이후의 오정열도 통일전쟁을 막아내지 못하며 502년 멸망한다. 이후 신오는 무려 1000년간 관동령 북조로 추락하며 신오국의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레치를 그어버리고, 이는 지금까지 신오인과 관동인의 사이에 벽을 세우는 계기의 시작이 된다.

중세

관동령 북조가 된 신오국은 통일된 오정열도의 관동국 내에서도 천민급으로 대우를 받아야만 하였고, 아예 포켓몬을 전투용 및 애완용으로 키우는것이 금지되는 등의 차별을 무려 500년이나 받아야 했다. 하지만 500년이라는 시간이 짧은것도 아니고, 결국 1034년 경 관동의 개혁왕이라고 불렸던 안조의 개혁정책으로 신오인에 대한 차별이 일부 사라졌으나, 대부분은 여전히 찬밥취급 받았고, 그것이 관동 본토인과 기타 신오를 제외한 모든 오정열도의 백성들에게 각인되었기에 결국 1531년 북조의 강철섬에서 반란이 발생, 그것이 선단과 현재의 축복시에 까지 퍼지며 북조 전체로 퍼졌고, 관동의 지배에 지친 일부 오정열도에서도 반란이 일어나며 결국 관동이 북조의 독립을 인정하며 관동 북부의 일부까지 가지고 나가서 결국 1535년, 독립전쟁 4년만에 독립을 인정받고 대신오제국을 건국하게 된다. 하지만 신오의 중세시기를 굳이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신오국은 중세시대를 관동에게 먹힌채로 버렸다고도 말할수있을것이다.

근대

신오공화국 시절 대통령궁의 모습

신오국이 근대에 들어오자 역대동안 차별받았던 흔적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가장먼저 당시 신오국에는 기초적인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제국독립전쟁으로 땅이 피폐해졌던것이 이유인것은 당연하것이고, 가장 중요한것은 관동이 독립때까지 신오국의 인프라를 전혀 책임지지 않았던것이 매우 컸다. 당시 대신오제국의 초대황제였던 태석제는 신하들과의 대화에서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 고통스럽다"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결국 이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대신오제국에 분열의 바람을 일으키게된다.

1668년, 선단부의 부관이였던 야스쿠치 아마리가 군사를 일으키면서 신오국의 4국시대가 시작된다. 선단부의 부관이였던 야스쿠치는 "중앙정부의 선단차별과 탄압에 민심은 제국을 떠났다"라는 연설을 통해 독립을 선포한뒤 귀족공화국인 대선단국을 선포했고, 뒤를 이어서 현재의 부영도지역에서 강암국이 탄생한다. 그 이후 19일 후 녹산도와 정산부 일부를 차지한 평동대국이 개국한다. 이로서 제국은 4개로 분열되게된다. 하지만 대선단국을 제외하면 굉장히 급하게 독립을 한 성격인지라 조금씩 제국군에 진압되기 시작하고, 1705년에는 평동대국이 항복하였으며, 1706년에는 강암국이 항복하게 된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로 탄생한 대선단국이니 만큼 안밀려 골머리를 앓기 시작되었으나, 선단국의 포켓몬들이 갑자기 원인모를 질병에 걸려 죽어가며 선단국은 갑자기 중요한 이동수단과 식량, 그리고 보좌관을 잃게 되었고 이를 안 중앙정부의 강력한 공격으로 끝내 멸망하게된다. 그때가 1710년이였다. 이 내전으로 신오국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며, 관동지방의 일부영토가 이탈하여 제국에서 대신오국으로 국명을 바꾸는 등, 이를 되돌리는것에는 수십년이 걸렸으나, 그래도 어느정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게 된다.

1812년, 대신오국은 귀족회의를 통하여 황제세습제에서 황제투표제로 정치체제를 변경한다. 이것에 반발한 연종은 귀족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대신오국은 2차 4국시대의 직전까지 가게되고, 실제로 강철섬의 군수였던 아타노 이게코와 선단부의 타와사키 이니치로가 반란을 모의하였으나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결국 반종이 황제투표제안에 도장을 찍으며 신오내전위기가 마무리된다. 이후 대신오국은 평화의 시기를 보냈으나, 대신오제국의 성립 이후 남쪽의 야만인이라고 여겼던 관동과 강제협약을 맺으며 개항하게 된다. 여담으로 당시 황제였던 장조는 포켓몬을 동원한 전쟁[5]을 하더라도 개항하면 안된다고 억지를 부리다가 관동군의 최신식 무기와 오성열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포켓몬을 보고 전쟁을 포기했다고 한다. 결국 개항에 서명한 황제였으나, 일부 보수파귀족들과 백성들이 당연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1899년, 대신오국이 멸망하고 신오공화국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신오공화국은 대통령중심제 국가로 스타트를 끊는다. 이렇게 출발한 신오공화국이였으니, 당연히 다음대통령은 이를 수습할 수 있는 대통령이야 했다. 일단 일단 초대 대통령에는 귀족 중 포켓몬 배틀 1순위이자 대신오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외무대신을 역임한 세에기켄 코쿠센샤가 임명된다. 그가 취임직후 가장먼저 펼친정책은 바로 치안안정화였다. 그는 경제를 발전시키기보단 치안안정화를 1순위로 여겼고, 이때 나온말이 바로 “경찰보다 비버니가 무서운나라에는 희망이 없다”이다. 그렇게 치안안정화 정책으로 본격적인 개혁에 박차를 걸던 찰나, 축복광역시에서 그의 경찰권력 강화에 불만을 품던 육군장관 겸 추후 관동령 신호에서 신오리그담당장관에 임명되는 테에기쇼 오코오부였다. 쿠데타 직후 코쿠센샤는 협박에 못이겨 하야하며 대통령궁을 떠났고, 초대 부통령이자 외무대신이였던 지카이테키나 사칸 역시 오코오부에게 정권을 넘기며 퇴임한다. 하지만 안그래도 반외세 신오공화국이 띠껍기 그지없었던 관동은 신오민족주의를 내세운 오코오부가 집권하자 역쿠데타를 계획, 성공하며 신오수반국이 세워지게 된다. 또한 이 수반국은 세계최초 리그와 정치체제를 일체시킨 사례가 되게 된다. 아무튼 수반국 수립직후 관동은 내심 사칸이 수반을 맞길 기대했으나 코쿠센샤의 배틀실력이 떡실신하며 코쿠센샤가 집권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코쿠센샤 수반정권은 국민 역할 강화와 당시로는 어마어마하게 파격적이였던 여성참정권 보장까지 추진한다. 하지만 관동국이 이를 나둘리 없었고 결국 취임 7년만에 수반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신오는 관동에 흡수되어 관동령 신오가 된다.

현대

신오국의 현대역사는 굴곡의 역사, 그 자체였다.

전반기

현대 신오국의 전반기의 요약은 관동령 북조의 재림으로 요약 가능하다. 물론 그 기간은 관동령 북조의 기간보다는 확실히 짧았지만 기간안에 신오는 당할수 있는 모든것을 착취당한다. 당시 신오는 1908년부터 시작된 북부 가뭄으로 상당히 피페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그 상태에서의 관동의 수탈은 농민들에게 악영향을 주었다. 이때 무슨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이 당시는 전쟁 하나를 수십년을 끌어버린 지나-관동전쟁의 시작직후 였다. 당시 관동에서도 급격한 공업화로 인한 농지가 줄어가고 있었고, 신오국에 대한 착취가 없을수가 없던 상황이였다. 하지만 관동에게 두번째 수모의 시작과 착취는 신오 독립 운동에 불을 붙이게 되었고, 이는 1915년, 6.13 축복 만세운동으로 터져나온다.[6] 이후 충격받은 관동국은 이 사건으로 마나세 미네유키 총독에서 이츠이 토메요시로 교체되고 어느정도 완화된 정책이 시행된다. 하지만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였고, 1916년 1월 2일, 지나의 탄젠시[7]에서 세에기켄 고쿠센샤를 중심으로한 신오국민의회가 수립되고, 1931년에는 기타 독립단체들을 통합시켜 세에기켄 고쿠센샤를 총리로 하는 신오민정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그리고, 관동국의 희대의 벙크, 하나전쟁이 터지고, 지나와의 양면전선을 유지하는데 실패한 관동국덕분에(?) 독립의 때가 다가오게 된다...

중반기

올게 왔다. 독립이 왔다. 관동국이 1944년 6월 29일 공식적으로 항복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4년 8월 12일 공식적으로 관동령 신오총독부가 신오국에서 철수하고 재신오하나군정청이 신오국에 설립된다. 당시에는 나자미스트 연합 공화국, 지금의 안나르 공화국은 신오국 분할통치를 제안하였지만, 공산주의의 물결을 우려한 하나국의 반대로 무산되며 신오국은 하나국 단독으로 신탁통치를 하게된다. 하지만 우여 곡절도 많았는데, 당시 하마무토 타다노부 신오임정 총리는 신탁통치 결사반대 결의안을 발표했고, 사회주의 임시정부이자 하나군정청 수립 전 치안을 담당하던 신오인민공화국 정부또한 하나국의 신탁통치에 반대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타다노부가 신탁통치 찬성으로 전향하면서 유혈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고 끝나게 된다. 참고로 이때 신오국의 현대사를 바꾸는 일이 터지게 되는데, 자세한건 신동일보 공화국 입장 오보사건 참조. 아무튼 공산주의자들의 일부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신탁통치가 1946년 5월 9일 공식 종료 되었고, 5월 25일 신오 초대 총선에서 신오임정의 후신인 자유당이 승리함에 따라서 신오국이 공식적으로 건국된다.

초대 총리에는 하마무토 타다노부가 선출되었고 총리의 김기인 5년동안 무난한 국정능력을 보여주며 극초반 나라의 상승세를 무난하게 이끄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1951년 7월 연임성과 1년 후에 질병으로 정계를 떠난뒤 1957년 편안하게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다음 총리인 타케지 리유키 집권 이후 나라가 후진국 패시브인 나락으로 빨려들어간다. 다케지 리유키 총리는 취임직후 가장 먼저 수도권의 공업화를 진행했는데, 여기까지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무리한 공업화는 이 글을 보는 누구나 알겠지만 파멸로 가게된다. 또한 공업화를 할거면 국가적으로 할것이지, 굳이 수도권만을 중심으로 진행시켜 일부 도시는 아예 소멸되어 합병되는 극단적인 증상이 일어나는 등, 총리로서의 자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자유당 내부에서 출당의 목소리가 나오고, 그렇게 되었지만, 내각불신임은 당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사여이 있는데 당시 신오국 정계는 세에기켄의 후손이라고 하는 정치적 뿌리가 같은 집단이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같은 뿌리의 총리를 불신임까지 시키면 자신들의 정치적 명분까지 잃게되니 결국 울며겨자 먹기로 불신임까지는 않게되며 출당 직후 총리로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못한채로 3대 총선에서 총리로서는 최초로 낙선[8][9] 하게 되며, 자유당은 적당한때 손절했다는 칭찬을 받으며 과반을 확보하며 다시 총리를 배출한다. 다음 총리 코쿠가 텐슈는 리유키의 똥을 치운는데 주력하며 농업-공업의 적절한 발전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게된다. 이때 시행된 정책이 무한 선진화 정책. 이후 상승하는 지지율에 4대 총선에서 총리 두번째로 연임에 성공하고, 선진화 정책을 다시한번 성공적으로 이끌며 5,6대 총선에서도 자유당을 승리시킨다. 물론 여기까지는 평범한 후진국의 평범한 성공신화가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늘 그렇듯이 여기까지 오니 드디어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1966년, 6대 총선에서는 은퇴 장성이자 최초의 비세에기켄계 총리인 키노도쿠니 신자테모가 자유당의 총재로 선출된다.[10] 그런데 이때부터 조짐을 보였던것이, 당선직후 당명을 신오재건회로 변경시키는 안건을 당회의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킨다. 당연히 당 원로들과 당원들은 반발했지만 국민들의 무관심과 언론의 무관심속에서 묻혀버린다. 아무튼 이후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총리로 선출된 신자테모는, 초반에는 무한 선진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성공시키면서 국민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게된다. 그런데 1968년 10월, 갑자기 총리는 개헌을 추진하는데 당시 발표 내용에는 나자미스트 공산주의자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등 당시 독재자가 흔히 내거는 이유를 개헌 사유로 넣어버린다. 당시 개헌안의 내용은 국회의 임기를 5년->7년으로 늘리는 내용과,[11] 무소속의 출마를 금지시키는 내용 등 전혀 자유민주주의스럽지 않은것들이였다. 이에 국민과 야당, 그리고 당내 소장파들은 물론이고 당내 주류이던 세에기켄계마저 반대하자 신자테모는 반대파를 모두 출당시킨뒤, 이에 의원들이 반발하여 찾아간 총리관저를 특수부대를 동원하여 포위시킨다. 또한, 야당의원들은 나자미스트의 간첩이라는 주장으로 전원 긴급조치를 발령, 가택연금 시킨뒤 의회에서 협박먹인 당내 주류파(였던것)과 당내에서 자신을 지지하던 의원들을 모아, 훨씬 강압적이고 독재적인 헌법[12]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버린다. 당연히 반발한 국민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포켓몬 특수부대를 동원시켜 해산시켜 버리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에 당시 챔피언이던 야마모토 키모유키가 라디오에 나와서 신자테모를 독재자라 강력히 비난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먹히지 않자 개헌전날인 1968년 11월 3일에 챔피언직을 내려놓게 된다. 이 사건이 이름하여 1968년 11월에 일어났다고 하여 11월 조치, 또는 챔피언을 끌어내렸다는 멸칭으로 11월 수반사태라고 불리게된다. 그리고 이렇게 잃어버린 15년이라고 불리는 암흑기가 신오국에 찾아오게 된다.

잃어버린 15년

잃어버린 15년당시의 축복시의 모습
그분은 과보다 공이 훨씬 큽니다
킨신조 오쿄쿠토오 제14대 총리
난 그를 세에기켄의 후손으로 인정할수없다.
세에기켄 후미카 제6대 총리[13]

신자테모의 잃어버린 15년이 시작되고, 동시에 신오국의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 시기를 잃어버린 15년을 비꼬며 되찾은 15년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유는 이 당시 정권이 경제만큼은 확실하게 살려놨기 때문이다. 이 15년 사이에 국민소득은 800HN[14]에서 5,000NH 수준으로 6배 수직 상승했으며, 수출은 1억NH에서 250억NH로 급상승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진행된 한연[15]의 박정희 정부와 함께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적으로 평가된다. 자 이제, 좋은거는 잔뜩이야기 했으니 비판을 이야기 해보자. 간단히 말하면 정치가 박살났다. 물론 한연의 전두환 정부때처럼 학살을 자행하지는 아니하였지만, 선거때마다 부정선거를 감행하고 상징적 국가원수인 챔피언을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등, 자기가 만든 헌법조차 짓밟는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선거는 계속 진행되었기에 그의 암살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작동하는데 심각한 문제는 없었지만, 선관위에서 그의 사망직후 치루어진 9대 총선에서는 통합선관위 위원장이 왜 부정선거를 안하냐고 어리둥절했다는 이야기가 나올정도로 그의 민주주의에는 심각한 오작용이 많았다. 그렇게 잃어버린 15년이냐 되찾은 15년의 싸움과 야당과 학생들, 그리고 이를 진압하는 경찰들의 사이에서 피가나올때까지 집권하였던 신자테모 내각은 1982년 2월 12일에 그가 가장 아끼던 부하이자 국가정보보안성 성장 하츠네 오쿄쿠토오에게 암살당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현재

드디어 마지막이다. 암살직후 정치권엔 혼란이 찾아왔다. 하지만 직후 바로 안정화가 되었는데, 이는 당시 부총리던 신보오와 카노오의 덕이 컸다. 당시 직후 카노오 부총리는 총리권한대행으로 취임한 직후 야당과의 협상으로 2월 18일, 6일만에 총선을 결의하고 2월 19일 민주화 선언인 219선언을 발표한다. 이후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며 제8대 신오국회의 임시회를 열어 3월 14일 3차헌법개정을 완료하고 이를 바로 공표하면서 성공적으로 정국안정화를 이끄는것에 성공한다. 헌법은 신자테모의 집권 이전으로 회귀되며, 일부 조항을 추가한것이였다. 신오재건계 출신 부총리였던 그가 이렇게 야당에 협조적이였던 이유는, 그가 애초에 군부출신이 아니였으며, 애초에 독재를 반대했다는것이였다. 이는 그가 훗날 총리에서 퇴임하고, 공소시효가 만료된 직후 작성한 회고록인 <누군가는 해야했기에>에서 "만약 하츠네 오쿄쿠토오가 암살에 실패했다면, 그 다음날 내가 암살할 예정이였다. 다행히 한번에 죽여줬지만."에서 이를 긍정하며 사실로 밝혀진다. 아무튼 다시 돌아가자면, 당시 선거는 당연하게도 진보좌파를 주축으로한 사회당과 민주화세력이 굉장히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신오국의 국부로 추대되는 세에기켄의 유일한 핏줄이자 해외에서 신오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던 세에기켄 후미카가 정계진출을 선언하고 세에기켄 신당을 창당하며 세에기켄 풍이불게되어 중도우파 세에기켄 신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확보하는 이변이 일어난다. 해당선거에서 신오재건회는 전국구 1석과 지역구 1석을 제외한 모든지역에서 나가리되며 극우화한다. 이렇게 사회당과 양당체제를 이루게된 세에기켄 신당이였으나 사회당이 "세에기켄 가문 패권주의"를 비난하자 정민회로 당명을 바꾸게 된다.

의회에서 총리로 선출된 세에기켄 후미카는 신자테모 내각의 경제정책을 일부받아들이며 경제성장을 도모하여 어느정도 성공한 뒤 1983년 의회해산으로 치뤄진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다.하지만 1985년대 말 나자미스트의 해체 조짐이 보이면서 해마열도를 통한 난민들의 대량유입으로 열병을 치루다가 미노와 노보루 재정대신과 가미카와 아야 난민특명대신의 불법 포켓몬 판매의혹으로 1985년 5월 13일 내각총사퇴를 선언하며 정계를 떠나게된다. 이후 후쿠오카 류야 당시 정민회 총재가 총리로 선출되었으나 선출당시에는 이미 의회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시점이였고 내각 지지율도 좋지 않은 상황이였기에 모두가 의회해산을 예상했으나 임기만료일 1달 앞까지 추하게 버딘다. 결국 불신임을 당하여 총리직에서 내려오게된다. 이후 신보오와 카노오 총리가 취임 직후 의회를 해산했고, 1986년 7월 25일 총선에서 정민회가 참패함과 동시에 사회당이 압승하며 수십년만에 신오국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실현된다.

한편 사회당으로 정권교체가 되며 리그일치체제에 위기가 오는데, 사회당은 민주화 이전부터 리그일치체제는 말도안된다고 주장하며 격렬하게 폐지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범좌파의 집권에 실패하며 포기할수밖에 없었는데 기회가 온것.[16] 1990년 5월 7일. 사회당 의원들과 연립여당인 민주운동 의원들이 출석하여 리그와 챔피언의 지위와 효력을 정지시키는 개헌안의 상정을 기습적으로 시도한다. 하지만 당시 의장과 부의장의 "날치기는 절~대로 안된다!" 방침으로 실패하며 오히려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된다. 거기에 챔피언이던 바그무라 류타로의 눈물의 정견회가 국민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결국 몇달뒤 임기만료로 치루어진 총선에서 사회당은 정민회에게 4년만에 정권을 다시 내주며 참패한다.

분량조절에 실패하면서, 여기서 부터는 짧게 요약하며 들어가자면 사회당한테 정권받은 정민회가 경제를 거의 한국수준으로 성장을 시켜서 무슨 집권은 1990년부터 2003년까지 해먹다가 정민회가 대중당으로 분리되면서 2002년 지선에서 참패하고 민권정민당으로 당명을 바꾼뒤 재출범한다. 하지만 이미 늦어서 국민 신회도 잃고, 나자미스트가 드디어 해체되면서 그 여파가 신오국까지 뻗어왔고, 결국 다시 사회당한테 정권을 넘겨준다. 하지만 그 사회당도 내각불신임당하면서 망할뻔했는데, 내각불신임 당하고 총리한 사람이 북유럽을 바탕으로한 복지정책을 시행시켜서 국민들한테 지지받고 8년이나 했지만 은하단 내란음모사건과 기타 등등의 논란으로 지쳤는지 2012년에 정계를 은퇴해버린다. 그리고 이 당시 안나르안보위기로 좌파한테는 정권주면 안된다는 여론이 생겼고 정민당이 승리했는데, 오히려 내 영토야 빼액하던 땅을 뜯기면서 지지율이 나락가고 다시 사회당한테 정권을 넘겨준다. 이후 이름부터 기름이 없다인 아부라가 나인다 총리가 집권했으나 진짜로 오일쇼크로 실각하면서 민권정민당의 사쿠라이 토모가 정권을 잡게된다.

자연환경

신오국 지리교육 애니메이션에서의 신오지방 지도

오정열도 국가가 그렇듯, 지역별로 가지는 특성과 날씨변화, 자연환경은 극과 극을 달린다. 물론 그렇다고 칼로스처럼 어디는 아프리카마냥 40도까지 올라가고, 어디는 극동지방 수준의 추위를 달리는것도 아니며 오정열도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편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날씨변화가 비교적 심한 수준에 속한다. 특히 선단지방과 남부-중부지방의 날씨격차가 굉장히 심한쳔에 속하는데, 남부는 눈이 오지도 않는경우에도 선단에는 눈이 1m이상 쌓여있는 경우가 흔할정도. 다른 오정열도 국가들도 이정도로 눈이쌓이는 경우는 없는데,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17]

남부지방

선단지방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평범한 레파토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대프리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여름에는 굉장히 더우며, 겨울에는 선단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히 추운편에 속한다. 또한 자연은 이미 신자테모 내각 시절의 무분별한 개발로 상당수 파괴되어있으나, 이는 오정열도에 비교해서 그렇다는것이고 실제로는 상당히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잇다.

선단지방

선단지방의 기후는 말그대로 그냥 춥다. 신오인들은 선단지방을 상대로한 지역드립중 겨울가을겨울겨울이라는 농담도 있을정도다. 여름을 제외한다면 온도는 평균적으로 영하 5도에서 영상 15도 까지 오르락 내리락하며, 겨울에는 무려 평균 영하 18도라는 꿈도 희망도 없는 수치를 자랑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러한 냉대기후 현상은 아직까지 연구중이며, 정확히 알수가 없다. 하지만 학자들의 대부분 공통된 의견은 오정열도의 모든 국가 북부의 추위와 관련이 있다는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위에서 작성되어있는 것 처럼 눈이 1m이상 쌓여있는것은 평범한 수준이며, 적어도 20cm 이상의 눈이 선단지역을 강타한다. 이렇다 보니 선단지방이 다른곳보다 폐쇄적이고 발전이 더딘이유가 이것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환경적으로 살펴보자면 상당히 생존력이 강한 나무들이 많이 살고있으며, 발전이 더딘 덕분에 오히려 자연환경이 잘 지켜진편에 속한다.

행정구역

정치

의회중심의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국가수반(챔피언)

シンオウ國 國家首班 | Champion of Sinnoh Nation

현직 총리대신 코우키 루카스
신오국의 국가수반은 신오국의 국민통합과 국가 위기 회복능력 정신에 기초하는 국가의 상징이자 수반이다. 이 지위는 주권이 있는 신오국 국민의 동의와 포켓몬 배틀 실력, 그리고 신오리그의 승인에 기초한다.
シンオウ国の国家首班は、新五国の国民統合と国家危機回復能力の精神に基づく国家の象徴であり首班だ。 この地位は主権がある新五国国民の同意とポケモンバトルの実力、そして新五リーグの承認に基づく。

신오국 헌법

정말 설명하기 까다롭다. 국가수반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신오국의 정부수립 직후의 제헌총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오국은 1945년 정부 수립때까지 일반적인 입헌군주제는 물론이고, 과거 세에기켄을 국가수반 자리에 오르게 해주었던 리그입헌제 역시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이는 진보좌파 공화당은 당연하고 보수정당인 자유당 역시 찬성하는 모습이였다. 하지만 제헌총선에서 왕정회가 예상외의 승리를 거두며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자, 당장 집권의 문제가 시급했던 자유당이 그나마 가장 최근 경험한 체제이자 공화제에 그나마 가까운 리그입헌제를 당근으로 가져오면서 수립된것이다. 하지만 아래 설명할 신오국에서의 트레이너 인식이 후한 덕분에, 챔피언을 대놓고 무시했던 신자테모 내각에서도 건드릴수 없었고, 오히려 지하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화제를 향한 칼날을 피해낼수 있었다.

국가수반의 자격은 포켓몬리그의 시즌에서의 12세 이상의 뱃지를 8개 이상 전체 보유하고, 4천왕에게 승리한 승리자에게 있다. 또한 제1의원, 제2의원 또는 선출직 공무원을 지낸 자라면 자격이 박탈된다. 또한 전직 국가수반 역시 선출직 공무원을 뽑는 선거에 출마할수 없다. 만약 국가수반의 자리가 사망, 또는 궐위될시에는 4천왕 중 한명이 국가수반직을 임시로 승계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통성이 굉장히 부족한 편이지만, 조금씩 정통성을 채워가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내고 있다.

공화당과의 관계

내각총리대신

シンオウ國 總理大臣 | Prime Minister of Sinnoh Nation

현직 총리대신 사쿠라이 토모
총리대신은 신오국의 행정적 권한이 통하는 국가내각의 대표이자 수장이다.
総理大臣は, シンオウ国の行政的権限が通じる国家内閣の代表であり首長である。

신오국 헌법

신오국은 형식상 신오리그에서 선출된 챔피언이 통치하는 입헌군주국이기에 뒤에 대신(大臣)이 붙는다. 총리의 자격은 제2의원, 또는 제1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 제2의원이 당선된다. 제2의원이 총리대신이 된 경우는 사실상 거국내각의 성격으로 설립된 신보오와 카노오 총리 뿐이다. 특이하게 이름이 내각총리대신이 아닌 총리대신인데, 이는 신오임정 당시의 고쿠센샤가 짧게 부르는것을 제안했고, 이를 수용하며 고착화 됐기때문이다.

총리의 자격에는 국회의원의 5/4가 출석한 뒤 제1의원과 제2의원의 과반의 의결이 필요하다는것이 헌법에 명시되어있다. 관습적으로는 당대표 및 제2의원이여만 하지만, 앞서 언급된 신보오와 카노오 총리처럼 특수한 경우에는 관습적 상황이 지켜지지 않기도 한다. 또한 전직 챔피언은 총리가 되는것이 불가한데, 이는 통일지방선거에는 출마가 가능하지만 총선에는 출마가 불가능한 체육관 관장과 같다. 또한 특이한 관습이 있는데, 바로 의회해산을 하지 않는것이다. 신오국 헌법은 총리의 의회해산권을 보장하지만, 고난은 겪어야 한다는 신오 답게(...) 이러한 관습이 있는것. 이로 인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뒤 해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해당정당이 폭망하는경우가 굉장히 자주 발생한다(...)

현직 총리는 민권정민당 소속으로 21대 총선에서 승리한 사쿠라이 토모 총리다.

신오의회

신오국 신오의회 원내 구성
シンオウ国シンオウ議会です
[ 펼치기 · 접기 ]
제1차 사쿠라이 토모 내각 2017.5.13. ~ 2022.5.13.
연립여당

76석

11석
야당

54석

13석

3석
무소속 3석
재적 160석

신오국의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헌법기관이다. 기본적으로 의회가 신오의회 하나뿐인 단원제 국가이다. 국회의원의 공식 직명은 신오의회 국민의원이나 대체로 신오의원으로 짧게 부른다. 임기는 5년이지만, 내각의 결정에 따라 의회가 조기해산될시 의원을 다시 뽑아야한다.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을 선출하며, 부의장은 좌측과 우측에 앉는다고하여 좌의장, 우의장이라는 별명이있다. 대체로 의장은 대체로 여당이 가져가고 제1야당이 좌의장을 가져가며 우의장은 15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의석수 3위의 회파, 또는 제2야당에게 돌아가는것이 일반적이나, 가끔 여당이 10석 넘지 않는 여당에게 부의장을 주어 야당과 마찰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우의장인 11석 정당이자 연립여당인 선단보수당 소속의 도오시마 쇼오키가 있다. 의회 정원은 생각보다 자주바뀌지만, 대략 150석에서 170석 사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재적 의원수는 160석이다. 최근의 선거는 2017년에 있었던 총선이며, 사회당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오랜만에 공화당과 선거연대를 하는등의 노력을 보였지만, 오일쇼크 심판론을 피하지 못해 실질적으로 패배하였다. 하지만 무난한 압승을 예상했던 민권정민당 또한 과반에 2석 모자란의석을 확보하였으며, 결국 이는 선단보수당과의 연립정권을 이루는 결과를 낳았고, 결과적으로 선단보수당의 실질적인 승리로 귀결되었다. 기타로 은하창조회는 지역구 의석 한석을 다시 확보하는등 선전하였다.

선단자치의회

선단자치의회 원내 구성
キッサキ自治議会
[ 펼치기 · 접기 ]
제1대 의회 2019.9.21. ~ 2023.9.21.
도정 여당

41석
도정 야당

27석
무소속 12석
재적 70석

선단지역의 입법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사실 이전에도 선단의회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도의회정도의 기능을 하였으나, 선단 도민들의 자치의회 설립요구와 선단보수당과 민권정민당의 연립정권 수립으로 거의 하나국의 주의회 정도의 기능을 하는 기관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임기는 4년으로 고정적이다. 의회 정원은 80명으로 신기하게도 신오국 법령으로 정해져있다. 최근의 선거는 2019년에 있었던 제1대 자치의원 선거로서 자치의회 설립에 앞장섰던 선단보수당이 승리하였으며, 기타 선단보수당 지원 무소속 인사가 9명 당선되며 사실상 80석중 50석을 보유한 압도적인 여당이되었다.

정당

보수정당

진보정당

경제

1차 산업

2차 산업

3차 산업

4차 산업

사회

사회적으로는 일부 열려있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다.

민족 구성

오정열도가 서로 붙어있던 시기부터 신오지방에 정착했던 온신족이 92% 가량을 차지 하며 가장 많다. 그 다음은 빙하기 시절 지금의 선단지방으로 가서 갈라진 선단족이 약 4%를 차지하며 그 다음은 신오를 수천, 수십년을 지배하고 지금도 가장 가까운 접경국인 관동국에서 건너온 관동인이 2% 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하나국이나 기타 국가들. 온신족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사실상 신오는 온신족의 민족국가라 불러도 무방한 수준이지만, 이것이 정치로 가면 4% 가량을 차지하는 선단족의 권리를 지지하는 선단보수당과 기타 재신오관동인권리연합 등의 결집력이 강해 이들의 입김도 비교적 강한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90% 가량 차이나는 이들을 누를수는 없기에 이들이 일부 부분에서 비교적 소외받는것은 어쩔수 없기도 하다. 참고로 점점 온신족의 인구는 늘어나고, 기타 민족의 인구는 줄어들다 보니 정치와는 상관없이 점점 온신족의 입김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물론 열린사회답게 차별같은것은 적은편이다. 여담으로 과거 안나르에게 일정도 남부를 빼앗기기 전까지는 시베리안이 1% 가량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일정도 남부의 반환이후 시베리안은 사실상 사라졌다.

사회 전반적 분위기와 국민성

사회 전반적으로 열려있는 성향이 강하다. 물론 오정열도 국가들이 그러한 만큼 지역별로 차이는 선명하게 나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외지인이나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갑게 맞이하며, 인종끼리나 민족끼리의 갈등도 매우적은편이다. 이는 과거부터 여러번의 침략을 받고, 지배를 받으며 그에 따른 포용력이 국민특성과 열린사회를 만들엇다는것이 중론이다. 또한 국민성 지역별로 꽤 다르긴 하다만 공통적으로 굉장히 침착하고 평온해서, 스페인과 비슷하다는 이야기 역시 많이 나온다. 예시를 들자면 만약 당신이 신오인에게 5시에 온다고 해놓고, 6시에 와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것이 좋다. 그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국민성 자체가 게으른고 고집이 없는것은 아니여서 일을 맞기면 제시간 안에 해놓는 모습을 볼수있으며, 고집은 굉장히 쎄서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않기도한다. 여담으로 포켓몬도 그 지역 인간을 닮는지, 참 말을 안듣는다(...).

트레이너에 대한 인식

다른국가에서 절대 다수의 인구를 차지하는 포켓몬 트레이너, 여기는 길에서 지나가는 한명한명이 트레이너라고 보면된다. 트레이너에 대한 인식이 워낙 좋기다는 이유로 리그정치일치 체제가 세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입된 국가이며(...), 현재도 포켓몬리그의 수장인 챔피언이 국가 원수로서 활동할수있는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신오국통계청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법적으로 포켓몬 소지가 불가한 6세 미만을 제외한 수치에서는 전국민의 97.5%가 포켓몬 트레이너인것으로 집게되었다. 또한 매년 열리는 포켓몬 리그 참가자는 처음 신오국민 모두에게 참가자격이 주어진 리그가 처음 열린 1980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지금까지 50만명 이상을 항상 유지하고 있으며, 2000년 밀리니엄 리그에는 무려 리그에만 200만명이 참가하면서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 만큼 국민의 트레이너 참여와 트레이너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은편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정적 효과도 나타나는데, 직업자체가 트레이너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며 생산인구가 줄어들어 당국이 골치를 썩는가 하면, 트레이너에 따른 자격 미달과 사고가 매일 끊이지 않는 부작용 역시 심하게 나타난다. 이에 따라 1997년 1월 부터 트레이너 면허법이 실행되었지만 1997년 10월에 국민의 격렬한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9개월만에 폐지 하기도 하였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사회 전반적으로 열려있는 성향과는 별개로 성소수자에 관한 인식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 과거에는 공화당의 일부, 현재는 사회당과 신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성소수자하면 떠오르는 동성부부에 대한 허용의견은 30% 초반에 이르고 있으며, 시민결합 역시 비교적 높긴 하지만 40% 후반에 머물고 있다. 트렌스젠더에 대한 의견 역시 긍정이 30~40%를 왔다갔다 거리며 이를 실감케 한다. 중앙정계에서는 신공화당 최초의 트렌스젠더 공동의장인 후치가미 아야코와, 의원 임기 중반에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전 사회당 비례대표 의원인 도조 도요타 제외하면 중앙정계에서는 성소수자 정치인을 찾기어렵다. 대부분 열려있고 진보적이라 평가받는 신오국이 이러한 성향을 띄는 까닭은, 신자테모 내각시절의 영향이라는 의견이 많다. 과거 신자테모 내각 시절 신오기독교동맹의 반 성소수자 운동과, 당시 집권당이던 신오재건회가 역대급으로 합을 맞추며(...) 성소수자 탄압운동 및 반성소수자을 벌여 이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는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점점 좋아지며, 차후에는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성과를 달성할수있을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포켓몬에 대한 인식

신오국 영화 <꼬마 명탐정>에 등장한 피카츄의 모습

포켓몬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하다. 우선 일부 국가에서만 논의되는 지능 포켓몬 사회참여 논의가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포켓몬의 발흥지로 추정되는 아유타[18]보다도 포켓몬의 대우가 좋은 편에 속한다. 위에 설명한 지능 포켓몬 사회참여 논의가 시작된 국가가 신오국이니 말 다했다. 또한 포켓몬은 가족, 또는 친구 그 자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사실상 전국민이 포켓몬을 키우고 있으며, 트레이너에 대한 인식에서 설명한것 처럼 트레이너의 숫자도 굉장히 많다. 하지만 과거 민주화 운동시절에는 인식이 약한 박해지기도 했었는데, 이유는 민주화운동 시위를 진압하는것에 인간부대가 아닌 포켓몬 특수부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테모의 암살 이후 인식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게 된다. 지금은 녹색정치나 레디컬 포케니즘 운동이 과거의 운동권, 지금의 진보의 상징으로 떠오르며, 지금은 애증의 관계 비슷한 상황을 이루고있다. 다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도감에서 불타입으로 분류되는 포켓몬들의 인기가 유달리 높은데,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부분 신오국의 불타입 포켓몬의 부제라고 설명한다.[19]

문화

음악

애니메이션

드라마 및 영화

군사

대중매체에서

관련문서

  1. 전체구 축복특별시 소속
  2. 렌고구, 세호쿠구, 도난구, 세에기켄구
  3. 강철득별지구, 챔피언특별지구
  4. 여기서 하나 알려주자면, 여기서 기원전이란 아르세우스의 탄생을 기준으로 세는것이다.
  5. 당시 아시아쪽에서는 포켓몬을 동원한 전쟁을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니까 비상식적이고 개취급 받더라도 그건 못하겠다는 정도로 개항반대여론이 강했다는것이다.
  6. 여담으로 6.13 축복 만세운동은 당시 지나령 관동지역의 12월 운동으로 번지게 된다.
  7. 현실의 우한
  8. 이것이 현직 총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낙선사례이다.
  9. 당시 제2의원 지역구는 축복특별시 제3구였으나, 하필 거기가 자신이 추진한 노동자특별구역인지라 2.4%차이로 낙선한다. 참고로 이 노동자 특별구역은 텐슈 내각에서 공식 폐지된다.
  10. 신자테모가 총재가 될수있었던 것은 당시 세에기켄계 안에서 파벌싸움이 일어나자, 합의안으로 무계파 다선의원이던 신자테모를 총재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11. 지금도 그렇고 당시도 그렇지만 신오국 국회의 임기는 총리의 임기와 동일시 된다.
  12. 대표적으로는 국회의 임기를 8년으로 늘리는것과, 국회의 3/1을 총리가 지명하는것이 있었다.
  13. 세에기켄 고쿠센샤의 손자
  14. 1HN이 1달러라고 생각하면 된다. 굳이 한국어로 읽자면 하널
  15. 현실 한국에 위치. 현재 포켓몬 세계관의 한국의 상황은 알수없기에 사실상 제작자 가공의 국가임을 알림.
  16. 당시 개헌은 재적 의원의 3/2 이상이 출석하여 5/3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되는 시스템이였다.
  17. 단, 선단은 위도가 오정열도에서 2번째로 높은곳이라는것을 기억해야한다.
  18. 현실 인도. 명칭은 당연히 허황옥의 아유타국 공주설의 아유타에서 따왔다. 또한 당연하게도 제작자가 만든 가공의 가공국가이다(...). 제발 인도 배경시리즈도 내주길 바란다.
  19. 보고있나 게임프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