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론 전쟁
날짜ABY10년 4월 17일 - ABY 14년 5월 25일
장소스타워즈K-1 .
결과

찬드릴라 공화국의 승리

교전국

은하제국
제국의 손
제국군사위원회

노그리 부족연맹 ABY10 - ABY13

찬드릴라 공화국

노그리 부족연맹 ABY 13-ABY14
지휘관

은하제국 대제독
제국의 손 대총독
쓰론 대제독
제국의 손 다크 마스터
조루우스 츠바오스
제국군사위원회 장군 길라드 펠레온

노그리 부족연맹
부족 원로 일카하임Ir'khaimABY10 - ABY13

찬드릴라 공화국 최고의장
몬 모스마
찬드릴라 공화국 안보위원장
레아 오르가나
찬드릴라 공화국 함대 총사령관
기엘 아크바 제독
찬드릴라 공화국 자유군단 감독관
가름 벨 이블리스(Garm Bel Iblis)
신 제다이 기사단 수석 기사
루크 스카이워커

노그리 부족연맹
부족 원로 일카하임Ir'khaimABY13 - ABY14

찬드릴라 공화국 초기의 최악의 군사적 위기

클론전쟁이후 지속되어 온 은하 규모의 분쟁의 종말

1.배경

2. ABY 10년: 다가오는 위협

3. ABY 11년: 쓰론의 전격전

3.1 블랙홀 작전

3.2 코르산트 봉쇄

3.3 찬드릴라 봉쇄 작전

3.4 우키오 공세

4. ABY 12년: 지구전

ABY12년 초기, 찬드릴라 공화국찬드릴라 봉쇄 작전과 미드림 양동 작전에 휘말려 미드림 전선이 무너졌다. 당시 찬드릴라 공화국 함대는 ABY11년의 대패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여서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쓰론이 이끄는 제국군사위원회 병력은 코어월드로 진입하여 코렐리아를 함락시키는 등 큰 전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한 솔로가 이끄는 제5 기동대가 코렐리아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성공하였고 이 중요한 공업거점 행성을 두고 찬드릴라 공화국제국군사위원회간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코렐리아 공방전)

쓰론의 지도하에 제국군사위원회자쿠 공세 이전 세력을 회복하고 계속하여 찬드릴라 공화국을 패배시키자 일부 제국 장성들은 오만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쓰론의 명령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을 하고 방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국 사람들은 “인간우월주의”에 너무 심취해 있었기에 원래부터 쓰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는 세력을 어느정도 회복하자 디시 발동했다. 공화국은 이러한 오만으로 기회가 생기면 바로 공격했고 제국군은 그때마다 무너졌다. 쓰론이 세운 위대한 전과를 제국 장성의 오만이 망치기 시작했다.

또한 제국 잔당들의 근본적인 문제였던 파벌싸움도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점령지 관리 또한 쓰론이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제국 군벌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아 쓰론이 한 행성계 정복하고 제국군벌에게 인계하면 그 제국 군벌이 찬드릴라 공화국에게 빼기는 등의 혼란상이 계속되었다. 군벌연합체라는 제국군사위원회의 근본적인 한계가 쓰론 대제독의 계획을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쓰론은 제국군사위원회를 군벌 연합체에서 제국체제로 이행시켜 점령지 관리나 보급 체계를 개혁하려고 했지만 제국 군벌들이 협력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제국의 손의 다크 마스터인 조우루스 츠바오스가 쓰론의 전쟁에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다크 사이드 포스만 추종하는데 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했고 실질적인 위협인 공화국 함대보다는 신 제다이 기사단 제다이들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다이들은 잡히지 않았고 제국의 자원만 낭비되었다. 쓰론은 제국군사위원회가 공세 한계점을 도달했다는 것을 느꼈고 제국 병력을 재정비를 하기를 시작했다.

한편 찬드릴라 공화국은 쓰론 함대와의 정면 충돌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지구전에 들어갔다. 쓰론 함대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이 모든 함대에 내려갔다. 공화국 함대는 공세보다는 거점방어에 집중했다. 또한 우려되었던 자유군단특수구역의 이탈도 자유군단 감독관 가름 벨 이블리스의 노력으로 발생하지 않아 찬드릴라 공화국은 상대적으로 후방이 안정되었다. 또한 신구 한비 경제부장이 공화국의 경제를 효율적으로 전시경제체제로 이행하여 많은 핵심공업행성들이 궤도 폭격을 당하거나 블랙홀 작전때문에 원료 공급로가 차단당하고 영토의 1/3이 잃은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이 공업생산량 측면에서는 쓰론을 압도하기 시작했다.(한비 전시 생산계획)

찬드릴라 공화국의 공업생산량
ABY12년 한비 전시 생산계획이 실시된 후
공업생산량이 급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솔로가 이끄는 기동 함대들의 유격전이 시작되었다. 한 솔로는 제국 점령지를 순회하며 현지 저항 세력들을 지원했고 이러한 저항세력들이 제국의 후방을 혼란을 일으켜 제국의 보급망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제국 점령한 행성 대부분이 내전 상황에 돌입했고 이 때문에 제국 점령지는 제국 측의 전시생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제국군사위원회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함대를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쓰론은 이러한 전략에 우려를 표했지만 후방 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러한 지구전은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한 채 양측에 수 많은 사상자만 내는 소모전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는 더 많은 공업생산량과 인구를 가지고 있는 찬드릴라 공화국이 원하는 바 였다.

공화국의 지원을 받는 게릴라들이 지속적으로 제국을 괴롭혔다.

5. ABY 13년: 소모전

6. ABY 14년: 쓰론 암살

7. 결과

7.1 은하내전의 진정한 종결

7.2 몬 모스마 실각

몬 모스마는 제국 성립이후 은하 공화당, 반란연합, GTC, 찬드릴라 공화국을 이끌며 제국체제에 항거하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몬 모스마의 집권기가 거의 10년이 다되어 가자 그녀에 대한 피로감이 늘어 갔다. 민중은 새 시대 새 지도자를 원하고 있었다. 특히 쓰론 전쟁기 중반에 실행했던 지구전 전략은 수 많은 행성들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수 억명의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전쟁 당시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전쟁이 끝나자 수 많은 유권자들은 당시 몬 모스마 정부 정책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 당시 자유군단을 이끌며 구 제국 군벌 세력 이탈을 막고 전선에서 뛰어다니며 싸운 가름 벨 이블리스이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은하 공화당 지도부는 몬 모스마로는 재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ABY 15년 총선 때는 당 총재로 가름 벨 이블리스를 선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몬 모스마 자신 또한 지쳐가고 있었다. 몬 모스마는 수 십년간 제국과 싸웠다. 하지만 그녀는 그 것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다. 몬 모스마는 은하 공화당 사태 때 남편과 수 많은 동료들이 죽임을 당했다. 은하내전기, 그녀는 수천만명을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고 그녀 자신 또한 아들 하나를 호스 전투에서 잃었다. 찬드릴라 헌정위기 때는 동지들이 서로에게 총질을 하는 것을 보아야 했고 그녀의 딸 또한 인민국가의 포격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쓰론이 왔다. 몬 모스마는 지쳤다.여러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가족을 잃은 몬 모스마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소진되었다. 결국, 제 2차 은하협정이 체결된 직후 그녀는 재선 포기 선언을 하였다. ABY 15년 2월 4일 몬 모스마는 은하 공화국 최고의장에서 물러나 은퇴를 했다.

7.3 진보의 시대로의 이행

8. 쓰론의 패배?

쓰론 대제독이 과연 패배했는지 여전히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많다. 모두가 레아 오르가나 안보위원장이 노그리 족을 상대로 한 외교 교섭이 성공하여 노그리 족 경호원에게 쓰론이 암살당해 찬드릴라 공화국이 승리했음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이 작전이 없었더라도 공화국이 승리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즉, 쓰론 대제독이 전략적으로 패배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8.1 주장1: 쓰론 패배는 필연적이었다.

ABY14년 전황을 보았을 때 쓰론의 패배는 필연적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로 프리웨일같은 공화주의 성향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가설로 쓰론 전쟁 후반의 소모전적 성격에 주목하여 공업생산량이 훨씬 컸던 공화국이 승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8.2 주장2: 쓰론이 승리했을 것이다.

빌브린기(Bilbringi) 전투의 상황을 보았을 때 쓰론이 승리했을 거라는 주장이다.

8.3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