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펼치기 · 접기 ]
에우랍수스 대륙
국기 국기
메츠틀리틀란 마가다 세렌디아 나일
국기 국기 국기
아티아 에우랍수스 굴레탄 아르미니우스
국기 국기 국기
아르타뉴
천호 대륙
국기
칠서 랴오 세화 원고
국기 국기 국기
영성 한라 바이당 비회
뉴니버스 대륙
국기 국기 국기
알벨란드 국가명 국가명 국가명

혁명의 시대

시민 혁명 당시 게르마니아

시민 혁명이 성공하고 제헌의회를 통해 새롭게 갖게된 헌법에 따라 국체를 민권정으로 바꾼 후 등장한 초기 행정부는 그동안 누적되어 왔던 여러 사회적 문제들의 해결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특히 경제 부분에 있어 그동안 특정 계층들이 지배적으로 사유화하던 경제의 체질개선이 요구되었다. 우선적으로 행정부에서 시행한 정책은 헤르만부르크 은행[1]의 신용을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의회는 은행법을 제정하고 헤르만부르크 은행이 제국시절 보유하던 부채를 그대로 승계함을 명확히 했다. 한편 헤르만부르크 은행은 은행법 제정으로 국가은행(Reichsbank)으로 개칭하고 시장경제체제의 안정화를 최우선 목표로 수행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경제 침체를 막고자 민간 시장에 투자 은행 성격으로 자본을 공급할 아르민은행이 분리 설치되었다.

여전히 시민들이 직면해야했던 생필품과 식량 부족은 당해년도부터 지속된 풍작으로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시위와 소요가 줄어들고 민심도 안정화되었으며 재정적자와 부채문제 해결하기 위해 성직자를 비롯한 반혁명파 세력들의 재산을 국유화하고 국유재산을 담보로 국가은행은 공채를 발행하게 된다. 이후 권리의 시대를 지나 발전의 시대까지 오면서 꾸준히 이어진 정부의 중상정책은 탄탄한 채권 시장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며 자본주의 시장의 발전에 크게 기여되었다고 평가된다.

초기 행정부는 또한 내부 질서를 다잡은 이후로 혁명 이후 약해진 군사력을 재정비하고, 공격적인 외부 확장 정책[2]을 통해 자원 확보에 몰두하였고 이렇게 확장한 영토들에 금광 등이 발견되자 골드러시가 이뤄진다. 새로운 귀금속들의 유입은 비지니스 거래에 있어 약속어음 대신 금은본위제 화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했으며 이러한 현금 거래의 확한은 거래 비용의 절감과 세금 징수의 효율성을 이끌어냈으며 정부는 재정 역량을 강화하고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 동시에 진행되었던 칠서, 세화국을 비롯한 천호대륙의 국가들과의 교역 확대와 이로인한 수요는 또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게 기여한다.

권리의 시대

한편 제헌의회 시절 발표한 '봉건제 폐지'[3]칠서의 민권정 체제를 받아들이고 참고하면서 천부인권, 주권재민, 인간의 자유와 평등, 사유재산의 자유 등을 골자로 선언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Erklärung der Menschen- und Bürgerrechte)'가 상하원에서 법률의 형태로 통과되었다.

이 법률은 특히, 재산권을 강화하고자 자연권적 재산권으로서의 특허권를 인정했을뿐 아니라 중상주의 정책기조를 펼치던 초기 행정부는 의회와의 논의를 통해 기존 기술을 간단하게 개량하는 경우도 권리를 부여하는 실용신안 제도까지 특허의 권리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사유재산권 보장과 함께 혁명 이후 비약적인 과학과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된다.

또한 이러한 만인에 대한 '권리'의 보장은 곧 의회를 통하여 법적인 절차로 소유권을 정하는 경우들이 발생했는데 특히 반혁명파 세력들의 재산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토지소유권이 입법화 되고, 근로계약이 확립되었다. 한편으로 토지소유권 확보는 농토에서 강한 영향을 미쳤는데 농토의 수확량이 증가했을뿐 아니라 이렇게 증가한 수확량은 이후 도시의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식량 공급에 기여한다.

발전의 시대

경제적, 제도적, 사회적 변화는 산업 혁명의 출현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런 제도적인 안정 장치들은 재산권과 정치적 안전을 보장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산층을 성장시켰다. 또 경제 발전과 혁명 이후 보통 시민들의 기본권 보장은 시민들의 사회활동을 촉진시켰고 이로인해 결혼 연령이 늦춰지기 시작하는데 이 결과 젊은이들은 더 오랜 시간 교육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인적 자원이 더 많이 구축되게 되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발전된 노동시장과 금융시장의 발전을 강화시키는 요인이었다.

이런 문화적, 경제적, 법적 토대로 아르미니우스 기업가들은 자생적인 산업화를 통해 발전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육체와 가축 기반의 노동력은 기계로 점차 기계로 대체되어 갔으며 제철 기술의 발달과 정제된 석탄 사용은 산업화를 촉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증기기관의 도입과 확대는 생산 능력의 급격한 증가를 뒷받침했으며 동시에 이 세대 동안의 장기간 풍작은 시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증가시켜 시장 수요를 증가시킴으로써 기업들의 시장 공급망 확대에도 기여한다. 이 시기동안 아르미니우스는 유례없을 정도의 발전을 이끌어냈으며 이 시기 동안 진행된 교육제도의 정비, 과학 기술의 지원은 앞으로 직면하게 될 추가적인 산업혁명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

3차 대분쟁 이후의 시대

3차 대분쟁 이전까지는 보호무역으로 통상 정책에 있어서 상당한 보수적 관점으로 일관하였으나 3차 대분쟁 이후부터 주류 정치세력인 자유당이 다시 장기집권의 시작, 국제회의라는 범국제적 조직의 재정비와 교통의 비약적 발전, 전쟁을 치르면서 비대해진 내수시장은 모두 자유무역을 위한 토대가 되었다.

3차 대분쟁 이후 자유당의 주도 하에 아르미니우스는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관세 인하와 보호무역 정책으로 갖추어졌던 규제들의 철폐가 시작되고 그 대신 자유무역으로 인해 직면할 여러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초점을 두게된다. 재집권한 자유당 정부에서 자유무역의 청사진을 계획한 프리드리히 알레프만은 직면할 문제로 (a)관세 장벽 철폐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내수시장 경쟁력 상실, (b)비대한 무역의존도로 외국에 의한 경제침식, (c)비관세 장벽 철폐와 이로인해 경쟁성을 갖추지 못한 분야에 대한 주권, 안보적 문제 대두라는 3가지 문제를 가장 핵심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주요 문제로 뽑았다.

그는 (a)에 대해서 "예측가능하고, 시장에 언제든지 접근 가능이 보장된 자본주의 시장에서 시장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보호무역으로 구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호무역에서조차 배척해야할 대상이다. (...) 이러한 기업은 국민과 국가 모두에게 손해다. 결국 시장을 먼저 선점한 기업은 다른 기업들을 무너뜨리고 독과점 체제를 수립하거나 다른 기업과 독과점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수렴될 것이다." 라고 평가했다. 한편 (C)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비무역 장벽을 지지함으로써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비판받는다.

다음은 그가 주도한 자유무역 기초 원칙이다 :

I. 국내 기업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분야는 적극적인 개방을 추진한다. II. 국가는 자국 기업이 시장 원리에 따라 성장 할 수 있도록 지원 정책을 함께 제시함을 의무로 한다. III. 주권과 안보적 차원에서 개방이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무역 장벽을 유지한다. IV. III에서 규정한 비무역 장벽은 최소한의 조건에서 점진적으로 이들의 성장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며, 시장 접근 자체를 막는 정책은 지양되어야 한다.

비무역 장벽의 최소 조건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일정 부분에 있어서 시장 접근이 보장되는 제도인 쿼터제로 가장 대표적으로 식량이라는 개방에 있어서 모든 국가가 보수적면서 주권적 문제로 접근하는 분야에 대해서 관세를 통한 수입 규제에서 벗어나 쿼터제를 도입하면서 나일과 같이 식량 순수출국이 아르미니우스의 식량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b)에 대해서는 '호혜 통상 협정법' 제정과 '카르텔청'의 권한 확대, 반독점법의 개정과 시장 감독 기구 설치로 이 문제를 접근하였다.

그는 "가장 건전한 자본주의 시장이란 경쟁이 있는 시장이다. 무역의존도가 안보 문제로 비화되었다면 시장이 그 분야에서 건전한 시장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시장을 감독하고 조율할 기구를 설치함으로써 특정 기업이나 동종기업들의 이익이 그 분야에서 카르텔 또는 독점을 만들어내는 것을 방지한다." 라며 국내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주문했으며,

동시에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압도적이지는 않더라도 유의미한 시장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우리나라 기업일수도 있고 타국의 기업일수도 있다. 이를 허용하는 문제는 호혜적인 문제로 접근한다. 타국이 우리 기업의 시장 접근성을 높여줘 우리나라의 경쟁력 있는 기업이 그 국가의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할 것을 약속한다면, 우리도 그 나라의 경쟁력 있는 기업이 우리나라의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할 것을 약속할 수 있어야한다. 호혜성의 원칙과 그 분야에 대한 반독점 행위의 제어만으로도 특정 국가의 일방적인 경제침식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정책들은 내각이 바뀌면서 부분적인 조정은 있을지언정 알레프만 원칙이라고 불리며 핵심적인 원칙들은 훼손되지 않고 아르미니우스가 펼치는 자유무역 정책의 핵심이 되었다. 처음에는 농수산, 원자재, 공업제품으로 시작한 자유무역 정책들은 점진적으로 세계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소프트파워에 해당하는 예술문화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대표적으로 그동안 자국의 예술문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유지되어 욌던 스크린 쿼터제와 같은 비무역 장벽은 사라지거나 호혜성의 원칙에 따라 축소되었다.


  1. 표준 통화를 만들어 교환가치를 통일하고, 주화권 발행 및 유통에 대한 국가적 통제 강화하며, 채권 시장의 안정성 보장과 활성화를 통한 재정의 안정성 확보의 목적을 가지고 원로원의 권고에 따라 제국 시절 설치
  2. 이는 아직까지도 남아있던 내부 불만 세력을 해결하는데 확장 정책을 이용한 것도 있다.
  3. 사실 시민 혁명 전에도 사실상 봉건제는 더 이상 작동되지 않았으며, 경제적으로 이미 중상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