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신력 486년 8월 23일 루메지아 왕국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되어 490년 3월 30일 아이니오위스 왕국의 항복으로 종전된 아이니오위스 왕국과 루메지아 왕국간의 전쟁.
상세
아이니오위스 왕국은 정규군 외에 사관생도, 16세부터 60세까지의 민간인까지도 모두 징집하여 저항했지만 당대 초강대국의 지위를 가지고 있던 카르노세아 공화국의 지원을 받은 루메지아 왕국을 이길 수는 없었다. 2년차인 488년부터 아이니오위스-네브리안드 연합해군의 활약으로 카르노세아 공화국의 지원물자를 실은 호송선이 족족 격침되면서 급해진 루메지아 왕립군의 잦은 공세로 전황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490년 3월부터 시작된 루메지아 왕립군의 춘계대공세로 이즈블러프(Easbluff) 지역의 제34보병사단, 제35경보병사단이 붕괴하면서 수도방어선이 돌파당했다. 결국 30일 오전 11시 경 아이니오위스측이 항복선언을 하게 되면서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4년 동안의 전쟁 끝에 아이니오위스 왕국 전역이 황폐화되었으며 당시 최대의 자원매장지이자 공업지대였던 벨로네 지역과 나파이로 지역을 배상명목으로 토해내면서 상당한 범위의 영토를 상실했다. 또한 전후처리 및 전쟁범죄 재판이라는 명목의 피의 보복으로 수많은 군인들과 왕족·정치인들이 루메지아 왕국군에 의해 처형당했다. 특히 전쟁 중 호송선단과 루메지아 해군을 모조리 격침시키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아이니오위스 해군은 루메지아의 복수의 칼날에 사실상 해체 상태에 직면했다.
아이니오위스 왕국의 항복 직전에 왕립해군의 루메지아 해역에서 통상파괴작전을 수행중이던 제2함대와 5함대의 주력함정이 군항으로 복귀하지 않고 네브리안드 왕국으로 이동하고 항복 선언 직후 여러 군 지휘관들, 네브리안드 왕국과의 국경지대 근처에 있던 국경수비대와 예비사단이 그대로 네브리안드를 비롯한 여러 국가로 망명하면서 완전한 괴멸을 막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신력 495년 7월 10일 아이니오위스 제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네브리안드 왕립군의 아이니오위스 특수군집단으로 편성되어 네브리안드군으로 활동했다.
양국 병력
양측 총합
- 486년 8월 전쟁발발 직후 : 689,901명(아이니오위스 왕국) / 2,863,732명(루메지아 왕국)
- 487년 : 1,204,836명 / 2,963,857명
- 488년 : 4,402,891명 / 3,152,156명
- 489년 : 5,983,990명 / 3,014,825명
- 490년 3월 종전 직후 : 2,761,023명 / 3,118,736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