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1913년, 신순성 제독이 건함경쟁 중이던 일본 제국의 공고급 순양전함 취역을 근거로 대한제국 의회에게 해군 증축을 위한 추가지원금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한국형 전투순양함 제작이 결의되었지만, 한일전쟁의 여파로 건조 자금이 부족해 당시 한독동맹을 맺고 있던 독일의 블롬 포스 사에 설계를 요청한다. 기본적으로 독일 제국 해군의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을 바탕으로 일본의 전함을 상대할 수 있도록 주포를 12인치에서 14인치로 강화한 형태이다. 또한 선미에 주포탑 1기가 추가 배치되었다. 상부구조는 현대중공에서 설계하였고, 이 설계안은 대한제국의 초노급전함인 세종급에도 적용된다. 설계가 완료되고 고종 태황제는 일본 해군과의 수적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2~3년안에 완공 될 것을 요청했다. 1913년, 준공되기 시작했으며 1916년부터 취역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활동
안동은 취역하자마자 주력 전투순양함으로 제1함대에 속해 같은 신예 전함인 세종과 충무급, 전주급과 함께 동해에서 일본 해군을 견제했다. 1916년 여름, 신순성 제독이 세종을 기함으로 동중국해 해전에서 일본의 가미무라 히코노조 제독의 연합함대와 교전해서 순양전함 이시즈치를 안동과 을지(충무급 2번함)가 공동으로 폭침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이때 연합함대가 후발대로 두고 있던 후소급 전함과 공고급이 전투에 합류하였고 이들과의 교전에서 안동은 중파당하고, 그 외에도 대한제국의 여러 주력함이 격침되면서 안동은 만신창이로 겨우 진해항에 도착한다. 이후 주력함을 잃은 대한제국 해군의 소극적인 활동으로 진해항에 틀어박혀있다가, 1차 대전이 끝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활동
1938년, 대한조선국 원수부는 진해항에 정박 중인 안동의 개장을 고려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실현하지 못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3년이 지난 1942년, 일본이 남해안을 포격하며 신사왜란이 발발한다. 진해항에 정박 중이던 안동은 일본군의 공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지만, 대일전 참전으로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와 전시경제 환경 속에서 1944년 대개장을 받고 전선에 복귀한다. 2차 대전이 끝나기 1년 간 대한해협에서 일본을 위협했다. 전쟁이 끝나고 1951년에 퇴역했다.
매체에서의 등장
네이비필드에서 한국 트리의 1차 전함으로 등장한다. 월드 오브 워쉽에서 한국 전함 테크 트리의 5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1944년 개장형이 6티어 프리미엄 전함으로 등장한다. 전함소녀, 벽람항로에도 모에화되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