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아마토 총리 암살 사건

안토니오 아마토 총리 암살 사건

아마토 총리가 타고 있던 관용차와 경호차량의 잔해
위치 로마냐 공화국 리에치 시 18구 외곽
발생일 1951년 11월 29일
14:25 p.m.
대상 안토니오 아마토 총리 내외
종류 폭탄 테러
수단 부착형 TNT 폭탄 5개
사망자 안토니오 아마토, 줄리아 아마토 외 9명
부상자 경호실장 피에트로 콘테 외 2명
공격자 데비토 모란디를 비롯한 북부 독립여단
동기 로마냐 북부 지방의 분리주의

안토니오 아마토 총리 암살 사건은 1951년 11월 29일 로마냐 공화국안토니오 아마토 총리데비토 모란디를 위시한 극우 테러조직 북부 독립여단의 폭탄 테러에 당해 암살당한 사건이다. 1951년 11월 29일에 아마토 총리는 슈퍼레제라에서 만든 슈퍼레제라 SL34를 타고 남부 지역 시찰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오후 2시 25분, 루이지 플라자를 지나던 아마토 총리의 모터케이드 행렬에 데비토 모란디를 비롯한 북부 독립여단원들이 미리 설치해둔 폭탄을 기폭시켰다. 폭탄은 아마토 총리의 관용차와 주변 경호차량을 날려버렸고, 아마토 총리 부부는 즉사했다.

데비토 모란디는 조직원들과 함께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도주했고, 사법당국은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을 취합하여 데비토 모란디를 범인으로 지목, 추적에 들어갔다. 주범인 데비토 모란디는 1959년 3월이 되서야 국경 부근에서 체포되었다.

배경

1945년의 국민투표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들어선 후, 공화국은 공화정을 지지하던 북부와 왕정을 지지하던 남부가 갈라져 큰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제헌 총선에서 안토니오 아마토(Antonio Amato)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국민의회(하원)에서 제1당으로 등극했고, 아마토는 칼로 데 판파니가 이끄는 민주노동당과 연정하여 집권했다. 하지만 원내 제2당이던 로마냐 인민당과 경제 정책을 두고 충돌하고, 연립여당이었던 민주노동당도 경제 정책에서 균등한 부의 분배를 외치며 아마토 총리를 압박했다.

그 과정에서 아마토 총리는 남부동맹을 비롯한 남부 지역의 군소 정당들과의 대연정도 할 수 있음을 시사하자, 공화국 정계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분노했다. 하지만 아마토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어, 자유민주당 - 남부동맹 - 중앙당의 대연정이 구성되었고 한 번 더 총리직에 올랐다. 이에 자극받은 극렬 분리주의자이자 테러리스트였던 데비토 모란디는 아마토 총리의 암살을 획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