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디아 쇼크

  1. 개요
  2. 정치
  3. 인구
  4. 기타
엘리디아 쇼크
날짜
1947년 12월 17일 ~ 1951년 4월 21일
장소
엘리디아 공화국을 포함한 프랑키트 사회 공화국아카디아 대륙중부
원인
프랑키트 사회 공화국과 화폐 가격을 1대1로 내려 무역에서 흑자를 보지 못한것, 그로 인해 버블이 터진것
중요 피해 국가
엘리디아 공화국 프랑키트 사회 공화국
중요 피해 기업
엘리아 국제 병원
플랜스 공항
세계 엘리아 국제 센터
센타우라 타워
폰토리
프랑키트 공산당
청프리어 기업
에렌 반도체
마니호 무역 센터
피해 인구
대략 84,750,000만명 대략 350,630만명
피해 규모
폭동 25건 보고, 500명 이상 부상, 5명 사망 폭동 12번 보고, 30명 이상 타박상, 27명 부상
결과
엘리디아의 버블이 터짐, 경제의 폭락, 2차 엘리아 혁명의 시발점
영향
반 청색파 지하운동 개최, 엘리디아 공화국에 반감정 극대화, 혁명파의 분리 운동 시작

개요

1947년 12월 17일 프랑키트 사회 공화국과의 회담에서 엘리디아의 경제가 너무 높아서 화폐의 가격을 1대1로 동결했다.

그러나 무역할곳이 거의 프랑키트 사회 공화국 밖에 없던지라 무역에서에 흑자를 보지 못하게 되고 이미 성장동력을 잃었던 경제는 버블이 터져버려 gdp가 박살이났고, 결국 엘리디아에 혁명의 도화선을 불태우는 만행을 하게 된것이다.

이 사건으로 엘리디아가 국제사회에서 이미지가 크게 악화되었으며 경제가 엄청난 하락을 하였고 지하당들이 혁명을 일으키면서 20세기 엘리디아 공화국 정부 최악의 결정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뽑힌다

정치

인구

인구는 경제에 심각한 불황으로 자기 먹고살기에 힘드니 출산률이 심각하게 내려가고 치안등이 심각해져 인구가

엘리디아 공화국 인구수 변화
엘리디아 공화국
1947년 267,380,000
1948년 267,100,000
1949년 262,000,000
1950년 1월 - 5월 212,300,000
1950년 5월 - 8월 190,950,000
1950년 8월 - 12월 182,630,000

267,380,000만명

이였던 인구는 1950년에 182,630,000만명이 되었다.

민족은 엘리아 민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던

에스페한 민족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적이라며 에스페란 공화국을 1949년 5월9일(에스페란 공화국) 세우고 강제 이주 시켰다. 1949년 5월 17일(에스페란 공화국) 에스페란 공화국을 선전포고 하여 국가를 점령하고 에스페한 민족을 반역자로 취급하여 말살하였다. 이것은 2차 엘리아 전쟁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9년 9월 3일 2차 엘리아 혁명이 시작되었다.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