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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연방 Imperial Federation of Great Bri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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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게 빛나는 태양의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고, 우리의 태양은 저물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우닝 가와 버킹엄이 예상하지 못한 세계 대공황과 인도 독립전쟁을 거친 대영제국은 서서히 빛을 바래가고 있습니다.
오로지 앵글로색슨인만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수정된 제국주의의 기치 아래에 하나로 뭉쳐 앵글로색슨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를 되찾을 것입니다.
지배하라, 브리타니아여!
개요
대영제국연방(Imperial Federation of Great Britian)은 네 개의 대륙(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수정제국주의 국가이다. 본래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었던 영국은 대공황 이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뉴질랜드를 본토의 구성국(country)으로 편입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역사
세계 대공황과 인도 독립전쟁
영국은 세계 곳곳에 거점을 세우고 식민지를 운영하는 등 산업혁명의 심장이자 세계 식민제국의 최정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전성기의 영국에 경종을 울린 것은 역시나 세계 전역을 환란에 빠지게 만들었던 세계 대공황이었다.
1923년 5월 8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그동안 버블로 쌓여왔던 주가가 폭락하게 되면서 오스트리아와 경제적인 역학관계를 쌓아오던 독일의 경제가 붕괴했고 이것은 거대한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전 세계가 경제적 혼란에서 해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국 또한 이러한 혼란에서 예외가 되진 못했다. 당시 스탠리 볼드원 총리는 긴급히 파운드 블록 형성을 통한 해결책을 강구했으나 이러한 내각의 시도는 당시 영국의 최대 식민지였던 인도의 독립전쟁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진다.
세계 대공황이 지속되면서 한편 당시 영국령 인도에서는 경제적 위기를 틈타 독립의 여론이 활성화되었고 자와할랄 네루를 중심으로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Militant India Liberation Committee)가 수립되며 인도 전역이 전쟁의 물결에 휩싸였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수바스 찬드라 보스는 자와할랄 네루가 이끄는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의 부속 행동대인 청년바라트협회(Youth Bharat Association)의 일원으로써 당시 뉴델리의 영국 총독부 청사를 테러하여 당시 인도 총독이었던 프레드릭 테시어가 사망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한편 당시 인도 독립운동의 또다른 거두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며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의 해방운동을 주장하여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소금 행진을 하였다. 하지만 영국 식민지 당국은 간디의 이러한 비폭력적 시위 또한 잔혹하게 진압하면서 간디 또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수감 도중 열악한 환경 탓에 마하트마 간디가 사망하자 그의 지지자들마저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로 돌아서면서 식민당국과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 사이의 내전이 격화된다.
스탠리 볼드원 내각은 해당 사태에 책임을 지고 해산하였으며 네빌 체임벌린 당시 재무장관이 총리로 선출되어 임시내각을 꾸렸다. 네빌 체임벌린 임시내각은 영국의 본토군을 인도에 배치하기로 결정하며 본토 군대가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와 격전을 벌였다. 아마다바드 전투에서 영국군은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군 1만 여명을 사살하며 서서히 판세가 기울어지게 되었고 결국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의 인도 독립의 열망은 좌절되고 만다.
수정제국주의의 등장
영국은 가까스로 인도의 독립을 억제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한 국내 문제는 심각했다. 특히 인도 독립전쟁 도중 파괴된 인도내 기반시설로 인해 영국은 막대한 양의 공급을 감당할 수요를 잃었고, 이것은 대공황으로 휘청이던 영국의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데 일조한다. 특히 당시 영국 최대의 은행이었던 영란은행이 막대한 손해를 보았고, 불안정한 경제 상황 탓에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하면서 영란은행은 결국 예금인출중단까지 하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러한 우울한 상황 속에서 네빌 체임벌린 임시내각은 해산되었으며 1927년 총선의 열기가 달아오르자 각 정당은 인도 독립전쟁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각 정당과 파벌로 돌렸다. 이로인해 정권은 불안정해졌으며 런던 각지에서 대규모 노동자 시위가 발생하는 등 정세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사 린톤-오만이라는 정치인이 등장하여 극우 초왕당파 정당인 제국당을 결성하였다. 당시 제국당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지만 제국당에 두 거두가 입당하며 상황은 급변한다. 한 명은 오스왈드 모즐리로 당시 좌파 성향의 정치인이었으나 인도 독립전쟁의 여파로 식민지의 선주민들에 대한 반감을 형성하여 민족주의적 색체를 들어내기 시작했고 제국당에 소속되어 활발히 정당 활동을 하였다. 또다른 한 명은 윌리엄 조이스로 오스왈드 모즐리보다 더욱 민족주의적 색체가 강한 인물이었는데, 특히 모든 사태의 원인을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대공황으로 보고, 그 대공황의 배후에는 금융계를 거느린 유대인이 있다는 신념 아래에 반유대주의 정서를 표출했다.
한편 당시 보수당 내에서도 민족주의적인 색체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제국당에 동조하는 인물들이 나타났다. 특히 1926년 초 런던 대파업이 발생하면서 사회주의의 위협이 표면하되기 시작하자 보수당은 이것을 해결할 방법으로 제국당을 택했다. 당시 제국당은 산하의 행동대로써 일명 붉은 셔츠단(Redshirts)이라 불리는 민족행동의용민병대(National Action Volunteer Militia)를 운영하며 파업과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었는데 보수당의 입장에선 이러한 제국당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시위를 진압할 좋은 수단이었다.
하지만 보수당의 이러한 판단은 되려 양날의 검으로 다가왔는데, 제국당의 직접적인 행동은 당시 영국 대중에게 큰 호흥을 얻었고, 특히나 거대 식민지에서 대농장을 운영하던 지주와 공장주들은 제국당의 정서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한편 오스왈드 모즐리는 윌리엄 조이스와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더욱 민족주의적으로 변모하였고 그는 로사 린톤-오만을 뒤를 이어 제국당을 끌게 되었다. 제국당의 전체적 노선은 더욱 급진화되었고, 이후 모든 식민지에 오로지 앵글로색슨인만이 살 수 있도록 정화해야한다는 주장까지 이어진다. 인도 독립전쟁의 원인이 인도 원주민들이라 믿은 까닭이었다. 결국 이러한 극단적인 주장과 사상은 큰 호흥을 얻어 1927년 총선에서 제국당이 보수당 다음으로 오는 제2당의 지위를 얻게 된다.
케이블가 전투와 수권법
1928년 10월 4일, 제국당의 당원들과 오스왈드 모즐리, 윌리엄 조이스는 당시 유대인과 반민들이 밀집해있던 지역인 케이블가로 행진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제국당만의 시위 방식이었고 수정제국주의를 홍보할 방법이었다. 하지만 해당 행진은 안티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안티파와 제국당 사이의 전투가 벌여졌다. 이 전투로 윌리엄 조이스가 사망했고 오스왈드 모즐리는 왼쪽 귀를 다치게 되었다. 하지만 붉은 셔츠단을 위시로한 제국당의 전력은 안티파를 분쇄했으며 당시 케이블가는 피로 물들었다. 이 사건을 케이블가 전투라고 부르며, 또는 당시 케이블가의 유대인과 반민이 운영하던 점포들의 유리창이 수정조각처럼 깨지는 것을 두고 수정의 밤이라고도 부른다.
이후 제국당은 윌리엄 조이스를 애도하였고, 여론은 윌리엄 조이스의 사망 사실에 격분하며 안티파를 향한 거대한 반감이 형성되었다. 안티파는 더이상 활동이 불가능함을 인지하고 영국을 떠나거나 스스로를 숨기기 시작했으며 결국 제국당은 그 인기에 힘을 입어 1929년 총선에서 제1당의 지위를 얻으며 제국당의 당시 당수였던 오스왈드 모즐리가 총리로 선출되고 제국당-보수당 연립내각이 형성되었다.
1930년, 오스왈드 모즐리가 수권법을 통과시킴에 따라 의회의 승인 없는 총리의 단독 입법이 가능해졌다. 또한 정치경찰인 제국근위대가 창설되어 사회는 경직되기 시작했으며 오스왈드 모즐리 주도의 강력한 중앙집권이 구축된다.
- ↑ 영국에 반감을 가진 세력이 부르는 멸칭이다.
- ↑ 관습법의 특성상 성문화되어있지는 않지만 영국 내 모든 영토에서는 영어 사용이 의무화되어 있으며, 모든 공교육과 행정 서비스는 영어로만 이루어진다.
- ↑ 제국성공회를 제외한 모든 종교의 활동은 철저히 감시받으며 선교가 금지된다. 이것은 제국성공회와 같은 기독교 계열의 종단들에게도 적용된다.
- ↑ 한편, 영국에서 태어난 모든 국민은 성인이 되기 이전에 제국성공회에서 세례성사를 받을 의무가 있다.
- ↑ 실상은 일당독재이다. 1931년 그나마 여당이라고 볼 수 있는 자유당 마저 신임과 보완으로 전환되며 여당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정당은 제국당의 지도를 받는다. 제국당을 제외한 정당은 마그나 카르타 이후의 민주주의의 자부심을 가진 영국 의회가 민주주의의 가면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한 구색정당에 지나지 않는다.
- ↑ 정식 명칭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남아프리카와 뉴질랜드의 제국연방과 다른 왕국 및 제국령의 황제, 앵글로색슨인의 왕, 신앙의 수호자이신 폐하이다.
- ↑ 본래 제국당에 맞썰 유일한 야당이었으나 1935년 총선 직전 자유당의 당수 허버트 새뮤얼이 암살되면서 당 전체가 제국당에 의해 괴뢰화되었고 이후 신임과 보완 정당이 되었다.
- ↑ 이로인하여 영국에는 더이상 야당이 남지 않게 되었다.
- ↑ 다만 두 의원 모두 제국당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그중 한 명은 본래 연방당 소속이었다가 제국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과정이기에 무소속일 뿐이다.
- ↑ 민간 기업이 다수 존재하지만, 국영기업인 대영제국공사(British Imperial Corporation)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