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구성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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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식민지
대영제국령 캔튼
British Canton | 英屬廣東
국기 국장
지도
Dieu et mon droit
신과 나의 권리
역사 난징 조약 1842년 8월 29일
베이징 조약 1860년 10월 18일
건국 (현 체제) 1945년 12월 31일
국가 God Save the Queen
국조 울새
수도 빅토리아 시티 (홍콩)
공용어 영어, 광둥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한자
면적 180,900km2
인구 총인구 67,515,000명
인구밀도 373.2명/km2
민족 구성 광동인 52.2%
영국인 25.3%
중국인 14.1%
베트남인 6.2%
기타 2.2%
국교 영국 성공회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 원수 엘리자베스 2세
행정
수반
총독 보수당 마크 엘리엇
행정장관 무소속 클라크 양
GDP
(명목)
총 GDP $2조 1,132억 1,950만 (8위)
1인당 $31,300 (28위)
통화 파운드 스털링 (GBP)
영국령 광둥의 경관

개요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이다.

상세

1842년 8월 난징 조약으로 홍콩이 영국에게 넘어가고, 1860년에는 베이징 조약으로 광둥성 일대가 영국에 할양되면서 영국의 식민지로 발전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체제 정비를 거쳐 현 체제가 확립되었다. 현재 영국의 잔존 식민지중 가장 큰 나라이며, 식민지이긴 하지만 영연방 왕국의 사실상 독립 국가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중국 본토와 비교해봤을때 삶의 질이 매우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그 경제 규모가 손에 꼽는다. 동아시아 내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거대한 국가이고 수도인 홍콩은 세계 3대 항구로 불릴정도로 큰 도시이다.

상징물

국호

공식 명칭은 대영제국령 캔튼(British Canton)이며 캔튼(Canton)으로 줄여부른다. 한국에서는 광둥어 발음인 "광둥"이나 혹은 한자 독음인 "광동"으로 불린다. Canton을 캔튼이라 발음하는 것은 영국식 발음이며 광둥에서는 Canton을 광둥식인 칸톤 혹은 캔톤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국가와 국기


영국령 광둥은 대영제국의 다른 식민지처럼 God Save the Queen을 국가로 사용한다. 중국으로의 귀환을 희망하는 친중파 시민들은 중국의 의용군 행진곡을 국가로 사용하지만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광둥이 독립된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광둥 민족주의자들은 사용하는 노래가 각각 다르다.

국기의 경우 보통은 상단 틀에 있는 공식 국기를 사용하지만 영국 국기를 지우고 문장만 남겨 사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보통 이런 깃발을 들고 다니는 것은 광둥 민족주의자들이지만 때로는 광둥과 다른 영국의 식민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도 이 깃발을 사용한다.

월드컵 등 영국과 별개로 참석하는 국제 행사에서는 공식 국기와 공식 국가를 사용한다. 영국령 홍콩은 뉴질랜드나 호주처럼 따로 공동 국가를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잉글랜드 팀과의 경기에서 같은 노래가 두번 연주되며, 이에 대한 불평이 많다.

역사

지리

영국령 광둥의 수도인 홍콩의 빅토리아 시티를 주위로 인구 2,000만명에 육박하는 초거대 도심인 그레이터 홍콩이 자리잡고 있다. 그레이터 홍콩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도시권중 하나이며, 현재 제국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도시권이다. 나머지 인구의 2/3이 조금 넘는 국민들은 대부분이 다른 지역 대도심에 거주한다. 시골에 거주하는 인구 역시 상당하여 총 인구의 20% 정도가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역적으로는 남부 해안가 지역에 인구가 주로 분포되어있으며, 중국의 국경과 가까운 북부 산간 지대로 갈수록 상주 인구가 적다.

광둥은 열대기후에 속하는 나라로, 한겨울인 겨울에도 영상 20도 이상의 기후를 유지하며, 일년 내내 습고 온난하다. 또한 연중 내내 고른 강수로 인해 광둥에서는 이모작이 발달해있고 그에 따라 식량 자급률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주요 도시 목록

도시들은 영국식으로 개칭된 것도 존재하고, 광둥식 이름이 남은 곳도 있다. 두개가 혼용되지만 이쪽은 더 많이 불리는 쪽으로 서술한다.

  • 그레이터 홍콩 Greater Hong Kong 1,802만명
  • 홍콩 (Hong Kong, 香港) 750만
  • 쾅처우 (Kwangchow, 廣州) 613만
  • 미들마운트 (Middlemonunt, 中山) 201만
  • 웰링스버러 (Wellingborough, 佛山) 133만
  • 덜링턴 (Darlington, 深圳) 105만
  • 레이크스버리 (Lakesbury, 潮州) 523만
  • 셤콩 (Tsiam Kong, 湛江) 450만
  • 모밍 (Mowming, 茂名) 435만
  • 칭연 (Tsingyun, 清远) 396만
  • 브리들링턴 (Bridlington, 韶关) 163만

정치


광둥 자치 의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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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 양 행정 자치내각
(2019 - )
여당

보수당
167석

자유당
17석
신임과 보완

녹색당
8석
야당

공민당
96석

광둥신당
21석

활생당
8석

광둥공산당
3석
의장 필립 스펜서 경
재적 370석

친영파가 매우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다. 친영파의 최대 정당인 보수당은 1946년 신체제 설립 이후 치뤄진 첫 광둥 지방의회 선거에서 집권한 이후, 1984년까지 거의 40년간 정권을 잡았다. 이후 광둥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회주의 성향의 공민당이 떠오르면서 1990년대부터는 보수당의 약우위인 가운데 공민당과 보수당의 양당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공민당은 총 15년간 집권하였으며 나머지 기간은 전부 보수당이 집권했다.

활생당광둥공산당과 같이 친중 성향을 보이는 정당도 존재하나 군소정당에 불과하다. 영국령 광둥은 영국과의 친선, 더 많은 자유 서구화를 주장하는 친영파와, 광둥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적 약자 보호를 주장하는 민족파로 나뉘어져있다. 그러나 친영파와 민족파 사이에서도 이념적 폭은 매우 다양해, 극렬 민주사회주의자부터 보수주의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1946년 지방의회가 설립된 이래 영국령 광둥의 의회는 큰 권한을 가지지 못했으며 평범한 시의회 정도의 권한만 가졌다. 게다가 1983년에는 마거릿 대처 총리에 의해 광둥 지방 의회가 폐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집권하자 그와 노동당의 공약이었던 지방분권의 일환으로 자치 의회가 설립되었고, 독자 국가나 다름 없는 많은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자치 정부 수반도 선출하여 총독과 함께 사실상의 이원집정부제 체제로 체제가 개편되게 된다.

분리 독립 논의

1950년대, 인도를 비롯한 영국의 식민지들이 순차적으로 독립하면서 광둥에서도 독립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국제 항구로서의 가치가 높았던 광둥을 포기하지 않았고 1960년대 광둥에서는 광둥해방총합회(Association of Canton Liberation, ACL)이 설립되었다. ACL은 바스크의 ETA, 북아일랜드의 IRA처럼 과격한 폭력 투쟁 노선을 추구했고 1971년에는 제3의 도시인 레이크스버리의 시청을 공격해 63명을 사살하고 수십억 파운드의 재산 손실을 일으켰다.

1989년 광둥의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으나 기마 부대 경찰의 진압으로 인해 15명이 사망하고 205명이 부상당하는 대참사가 일어난 적이 있다. 이 일을 지시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큰 논란에 휩쌓였으나 결론적으로 이 "피의 수요일" 사건 이후 광둥에 대한 독립 요구는 사그라들게 된다. 또한 1990년대 이후 광둥 내에서 영국인의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현재 독립 여론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독립론자들은 대신 자치 권한 확대에 대한 요구로 선회하였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 1999년 토니 블레어 내각 당시 런던,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과 함께 광둥에 자치 의회가 설립되었다.

ACL은 여전히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나, 1980년대 이후 폭력 투쟁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광둥의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단체 정도로 그 위세가 쪼그라들었다.

광둥의 독립 여론은 소수이며, 2021년 4월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 독립 찬성 16.4%, 독립 반대 81.5%로 나왔다. 아2019년 들어 본격화된 중국의 제국주의적 행보로 인해 안보를 이유로 영국에 잔류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경제

광둥의 공식 화폐는 파운드 스털링이다. 1980년대까지는 광둥 파운드(Canton Pound)라는 독자 화폐를 사용했지만 파운드 스털링과 1대 1로 페그 되었기 때문에 불편하기만 했을 뿐이지 별 의미가 없었고 마거릿 대처 총리의 개혁안으로 광둥 파운드가 폐지된 이후 파운드 스털링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불안한 국제 정세로 인해 광둥 내 시장도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영국의 노동당과 그 자매정당인 광둥 공민당은 광둥 파운드의 부활을 공약하고 있다.

교통

항공

  • 홍콩 카이탁 공항
  • 홍콩 국제공항
  • 쾅처우 동커스버러 공항
  • 쾅처우 바론스코트 공항
  • 미들마운트 공항
  • 레이크스버리 허들스덴 공항
  • 레이크스버리 커클우드 공항
  • 브리들링턴-허옌츠 공항
  • 캐세이 퍼시픽 (Cathay Pacific)
  • 로열 익스프레스 홍콩 (Royal Express Hong Kong)
  • 영국 항공 (British Airline)

사회

언어

언어로는 주로 영어가 사용되지만, 광둥어 역시 공용어이다. 그 외에는 표준 중국어와 베트남어, 인도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이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는 소수이다. 90% 이상의 국민들의 일상어는 영어와 광둥어이고, 영어와 광둥어의 비중은 비슷하다.

지명 등 고유명사에는 광둥어와 영어가 혼재되어있다. 한 언어만 골라 표기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민족파와 친영파의 입장이 갈리기 때문에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고 따라서 관공서에서는 광둥어와 영어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 지침이다. 한편으로는 중국 본토에서 가까운 지역에서는 중국어 역시 사용된다.

197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 난민들이 유입됨에 따라 베트남어의 비중이 높아졌고 특히 홍콩이나 쾅처우 등 거대 도시를 중심으로 베트남어 화자가 많아져 일부 관공서는 베트남어를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문화

홍콩은 과거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두 나라인 중국과 영국의 문화가 적절히 혼재되어있어 매우 독특한 모습을 풍긴다. 영국적인 문화와 중국적인 문화가 서로 섞여 아예 광둥 문화라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독특한 광둥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광둥은 동서양 문화 융합의 이상적 사례로 빈번히 언급된다.

문화로는 광둥 영화가 매우 유명하다. 광둥 영화는 영국, 인도, 미국과 함께 독자적인 팬층을 갖추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에 속하는 영화 산업이다. 양조위, 주성치, 성룡, 유덕화, 장국영, 주윤발 등의 배우들이 유명하며 광둥 영화는 1990~2000년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한국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광둥 영화 시장은 198~90년대 전성기 시절에 비해서는 비교적 약세이지만 여전히 흥행으로는 볼리우드, 할리우드, 영국에 다음가는 세계 4위의 수요층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과거 전설로 불렸던 배우들이 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신인 배우도 계속 발굴되는 등 앞으로 광둥 영화의 미래는 밝을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광둥 영화로는 중경산림, 영웅본색, 와호장룡 등이 있다.

외교

영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 (남중관계)

기타

영향을 받은 것들

  • 더 크라운 (The Crown) : 보다가 영감을 받았다.
  • 룰 브리타니아 : 설정에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