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다를

개요

소와 말의 거죽은 다르다는 말로 한 쪽이 다른 쪽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신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 속비미천기(續比湄泉記)[1] '부도거왕기'(副導炬王記)에서 유래되었다.

王曰、獨池征伐乙爲馬不足牛爲是何、呂佐卿易率發練諫、牛馬表異代不馬走爲牛田耕爲牛戰爲則百姓苦痛量不、王其曰可禁戰農功力令。
(부도거) 왕이 말했다. "독지(獨池)[2]를 정벌하는데 쓸 말이 부족하니 소를 쓰는것이 어떠한가." 이에 좌경(佐卿)[3] 역솔발련(易率發練)이 간하길, "소와 말의 거죽은 달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말은 달리고자 쓰이며, 소는 밭을 갈고자 쓰입니다. 소를 전쟁에 쓰려 한다면 백성의 고통이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이 옳다 여겨 전쟁을 금하고 농사에 힘쓰라 명하였다.
《속비미천기》 권 제6 부도거왕기 中

각주

  1. 난세 시대부터 비미천까지 취급한 역사서로 흠고천존(欽高天尊)의 명에 따라 그의 아들, 소가대군(昭伽大君) 등이 690년부터 편찬을 시작, 712년에 완성했다. 편년체로 쓰였으며 한문이 아닌 구간(九簡)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표기법을 사용했다.
  2. 영산도(寧山道) 남부에 위치했다고 알려진 부족 국가부도거왕 시기 이전부터 비미천의 변경을 약탈하였다. 부도거왕 사후 즉위한 읍상왕(邑常王)이 489년에 대군을 동원해 독지 추장, 탁사간우능(卓司干羽陵)을 사로잡음에 따라 쇠퇴하였고 6세기 말에 이르러 자연스레 흡수되었다.
  3. 비미천의 관등 중 하나. 비상설 최고 관직인 태재흔(太宰昕) 다음으로 높았으며 사실상 재상의 지위와 맞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