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시
原米市

휘장
위치
지리
지역
대한민국 대한민국 충청남도
면적
532.3km2
하위구역
4개구 12개동 6개면
인구
343,732명
인구밀도
570.60명 / km2
정치
시장
백남기 (더불어민주당, 초선)
시의회
14석
9석
5석
1석
도의회
8석
1석
국회의원
윤기열 (갑, 초선)
서병훈 (을, 3선)
김처서 (병, 재선)
상징물
시화
진달래
시목
느티나무
시어
망둥어
표어
바다의 번영 - 새시대로의 전진
홈페이지
원미시 홈페이지

개요

충청남도에 위치한 충남의 제2도시. 서해에 위치한 원미군도에 자리잡고있다. 한때 포항제철과 함께 한국의 양대 제철소라 불렸던 원미제철과 인천항의 멀티로 사용되었던 원미항 등이 위치한 공업도시이다. 1995년에는 제1기 신도시의 일환으로 당선신도시가 지어져 공업이 몰락한 현재에도 산업도시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인구는 33만명으로 충청남도에서는 50만 특례시인 천안시에 이은 2위이다. 전국적으로는 경기도 광주시에 이은 33위이다. 1949년 조사 당시에는 인구 1300명 남짓의 작은 어촌이었지만 1963년 제5개년 경제 개발 개획의 일환으로 원미 제철소와 원미항이 지어짐으로서 산업도시가 되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1975년에는 인구 12만을 돌파했고 한때 한국에서 가장 인구성장률이 빠른 도시이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제철업의 쇠퇴로 인해 도시 인구가 16만명대에서 정체되었으나, 1995년 당선신도시가 지어져 20만명대를 돌파했다. 2014년 원미시의 인구는 30만 272명으로 충청남도에서는 2번째로 인구 30만명을 돌파한 도시가 되었다.

원미제철소 외에도 1960년대에는 원미시에 원자력발전소 3기를 지을 개획이 있었으나, 예산 문제로 무산되고 현재의 영광에 대신 원전이 지어지게 되었다. 광양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매립 사업으로 토지가 크게 늘었다. 원미시는 충청남도에서 가장 집값이 높은 지역이며, GRDP는 5만 7천불로 아산시, 천안시에 이은 3위를 기록하고있다. 원미시에 위치한 당선신도시는 분당신도시와 함께 대표적인 1기 신도시이자 집투기의 대명사로도 꼽힌다.

원미시와 태안군은 원미대교를 통해 연결되어있다. 또 평택항, 인천항과는 배로도 연결되어있다. 원미항은 부산항, 인천항, 여수항에 이은 대한민국 제4위의 화물 운송량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역사

원미시는 고려시대때 처음으로 역사에 기록된 어촌도시였다. 삼별초의 주요 항쟁지였던 결과로 몽골에 의해 어촌 전체가 폐허가 되버려 15세기까지는 무인도로 남았다가, 다시 15세기에 어촌이 형성되었다. 17세기에는 청나라와의 교역이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원미가 주요 무역항으로 개발되어 어촌의 기능과 무역소의 기능을 같이 하게 되었지만 목포항에 밀려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역항으로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시설이 들어와 공업도시로서 성장했고, 수천명에 불과했던 인구는 단기간에 수만명으로 불어났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인들이 모두 월미 제도를 떠나 다시 작은 어촌마을이 되었지만, 박정희 정부에 의해 원미시의 조선 시설이 재건되어 다시 원미시는 부흥하였다. 1976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원미시는 군에서 현재의 시로 승격되었다. 제조업의 쇠퇴와 함께 1990년대 원미시의 인구는 정점을 찍었으나, 1기 신도시의 일환으로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다시 인구가 늘어났다.

인구 추이

원미시의 역대 인구 추이
1960 010,821
1973 089,432
1978 160,421
1980 172,635
1985 168,577
1990 192,832
1995 213,456
2000 220,484
2005 253,421
2010 294,732
2015 310,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