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한

유라한

유라한 프로마 총산주의 대연방의 1대 최고지도자이다


프로마 총산주의 대연방의 1대 최고지도자이며 프로마를 혁명국가로 바꾼 장본인이다 그가 어떤인물인지에 관해서는 만은이들의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그가 프로마를 변혁시킨 혁명가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평가는 나뉜다고 볼수 있다. 최악의 독재자냐 아니면 최고의 지도자냐

생애

유라한은 공화력 5년에 태어난 사람이다. 유라한은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농노의 후손이었다.유라한은 빈곤속에서 살아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혁명적인 저서에 어릴때부터 눈에 떴다. 유라한의 가족들은 빈곤을 싫어했기에 공화국의 무능력함을 증오해왔다.유라한은 11살이 되던해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며 공장에서 일을 했어야 했다.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돈을 모아 자신 스스로 학교에 다니는등 엄청난 능력자였다. 이런 유라한의 대범함은 당시 시대로 봤을때 엄청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라한은 혁명에 눈을뜬 시기는 고등학교에 다닐때 였고 당시 유행하던 혁명적인 서적을 자주 읽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가 대학교에 입학할때쯤 공화국이 무너지며 대공화국이 세워진다. 대공화국은 반노조 성향이 강했으므로 노조출신인 아버지가 대공화국의 군대에 의해 죽는 모습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혁명운동에 투신한다. 당시 프로마에서 총산주의 운동은 주로 아크연방과 천하인민연방이 주도했다. 그중에서도 아크연방의 자금에 기대며 친아크연방 성향의 혁명가가 주류였다.

유라한의 젊은 시절 사진이다

유라한은 여기서 아크연방의 혁명노선이나 정책에 불만을 가진다. 기득권 중심의 혁명적인 모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라한은 기득권이나 엘리트 없는 오로지 무산만인의 계급이 주도하는 국가를 원했다. 사회의 불필요한 유산은 모조리 불태우고 없애기를 원했다.그는 아크 연방에 비판을 가하는등 당내 소수파로 전락해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무산만인의 완전혁명을 목표로 천하인민연방과 손을 잡는다. 당시까진 천하인민연방은 큰 혼란과 전후 후유증으로 아크연방에 비해 복구가 느렸다. 아크연방은 전쟁을 했음에도 특유의 전체주의적인 능력으로 순식간에 복구했지만 천하인민연방은 지속적으로 구 인더스니아 지역에서의 사보타주가 계속 있었기에 복구에 애를 먹고 있었다.

유라한은 혁명의 때를 기다리며 대공화국 정부를 붕괴시키기로 마음을 먹는다. 때마침 기미트는 아크연방을 쳐들어가 아크연방에 엄청난 치명타를 입힌다. 이때를 기회로 친인민연방 세력인 유라한은 총산주의 세력내에서 급격히 영향력을 확장하고 프로마 대총산당의 실질적인 리더가 된다. 유라한은 이때를 기점으로 당내 영향력을 통합하고 순식간에 혁명군을 확장하며 대공화국을 향해 지속적으로 전쟁을 벌인다. 그결과 대공화국은 끝내 무너지게 되며

유라한이 프로마 총산주의 대연방의 지도자가 된다. 이후 유라한은 프로마에서 과거 제국시절 영토 획득을 목표로 전쟁과 대학살과 숙청을 통해 프로마를 유래없는 극좌국가로 만든다.

만행

유라한은 극우국가로 불리던 국가를 한순간에 극좌국가로 바꾸었다. 이후 프로마는 권위화가 됬음에도 현재까지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국가로 불리는 이유가 되었다.

그 이면에는 엄청난 죽음이 있다.

유라한은 매우 잔인하게 프로마의 엘리트들을 숙청했고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로 사회를 주도해 사회의 학살과 혼란을 일으켰다. 유라한 시기에 프로마의 지식인은 물론 과거의 명예로운 가문들은 죄다 사라졌다. 유라한은 프로마인들의 전통적인 사고관을 바꾸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뇌와 교육 그리고 아이들을 가족중심에서 당중심으로 바꿨다. 그렇게 수많은 세대가 혁명 프로마의 시대정신속에서 살아가야했다.

워낙에 잔인했기에 프로마에선 과거 전통세력이 싹이 말랐고 종교세력들도 와해되었으며 부르주아들은 초토화되었다.

당연히 자본주의경제는 땅으로 꺼졌지만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구프로마 세력이 청산되자 대총산당 내의 반 유라한 세력을 처형시켰고 이후 유라한은 철권통치로 독재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