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공화국 (기계들의 유산)


이탈리아 공화국
repubblica italiana


꿈속에서
20년전 무솔리니는 로마제국의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속에 왕정을 폐지하고 자신은 종신 대통령에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꿈이었습니다 독일과의 결별이후.
우리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있지만 어둠의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무솔리니가 죽은지 10년이 다되가는 지금 이제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내게는 오직 나를 승리자로서 평화 회담에 출석시킬 수 있는 수천 명의 희생이 필요하다. - 베니토 무솔리니

개요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과거 나치 독일과 같은 편에서 싸웠고 현재는 결별한 상태다. 북쪽으로 괴뢰국인 스위스와 프랑스,독일하고국경을 접한다.

유럽 제2의 강국으로 군사 동맹기구인 지중해 협약을 창설해 독일의 남하를 막는 역할을 하고있다. 왕정 폐지 이후 정치 갈등이 극에 달해 있으며 마피아들로 불리는 깽패 조직은 큰 사화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주요도시

로마
Roma
'


역사



이탈리아 통일전쟁

1860년 사르데냐 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북이탈리아를 침공하며 이탈리아 통일전쟁이 일어난다. 1870년 트렌티노알티아디제를 지배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상대로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전쟁이 일어난다. 프랑스의 개입으로 전쟁은 이탈리아 왕국의 승리로 끝나지만 오랜 내전으로 이탈리아의 경제는 박살나게 되고 사회주의가 확산하며 농업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다. 1875년 훗날 이탈리아 사회당의 전신이 되는 이탈리아 인민당이 창당되며 노동운동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하게 되고 그 결과 역사적 좌파가 등장하지 못하고 극좌 세력인 이탈리아 인민당이 집권하게 된다. 하지만 1880년대가 되며 인민당은 각지의 사회주의 세력을 흡수하며 이탈리아 노동당이탈리아 공산당으로 나뉘어 세력을 키워가자 왕정이 폐지될것을 우려한 움베르토 1세가 군부와 자본가들을 등에 업고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1885년 검은 1월 사건으로 노동당 이 몰살당하고 공산당도 와해되며 지하조직으로 변해버린다. 이후 이탈리아 정치는 프렌체스코 크리스피를 중심으로한 우파 세력인 기독민주당이 장악하게 되고 크리스피 정부는 정부 주도의 공업화 정책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국토개발 5년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며 그동안 농업 중심으로 돌아가던 경제도 중공업 중심으로 변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오스트리아 제국에 버금가는 국력을 보유하게 되고 프랑스를 추월하며 유럽의 강자로 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한다. 1899년 크리스피 총리의 뒤를 이은 조반니 졸리티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수상의 경제정책을 모방하여 더욱 급격한 공업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하지만 실패하게 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지하조직으로 활동하던 이탈리아 공산당이 다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이후 러시아 내전이 일어나고 독일의 성장이 너무 커지자 이를 우려한 영국과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접근해 3국 협상을 채결하며 협상국에 가입하게 된다.

잃어버린 10년

1914년 1차 기업전쟁이 일어나고 협상국에 가입해있던 이탈리아는 영국편으로 참전해 독일과 싸우게 된다. 군사 개혁과 공업화의 성공으로 이탈리아군의 전투력은 강화되어 있었고 아르만드 디아츠가 사령관으로 이탈리아군을 지휘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군은 오스트라이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며 남티롤 일대를 점령하게 되고 현실에서 대패했던 카포레토 전투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피에트로 바돌리오 장군이 대승을 거두며 오스트리아 제국 본토까지 진입하며 수도인 을 위협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 후반이 되며 급속한 공업화의 실태와 오랜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피로감이 누적되며 1917년 공산당의 주도로 로마 폭동이 일어나며 불만이 정점을 찍게 된다. 군대에서도 항명사태가 일어나자 사령부는 방어로 전환하지만 프랑스에서 독일군의 최후의 공세인 힌덴부르크 공세가 진행되자 다급해진 프랑스는 소련과 이탈리아에 공세를 요청하게 되고 이탈리아군은 물자를 긁어모아 오스트리아 공세를 진행하지만 대패하게 되고 얼마뒤 독일이 항복하며 전쟁은 끝나게 된다. 전쟁에서의 활약으로 이탈리아는 프랑스로부터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일부를 양도받기로 했지만 영국의 배신으로 차라와 남티롤 일대만 얻어야 했다. 이로인하여 무능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되고 1920년 전쟁 영웅인 아르만드 디아초 장군이 로마 군사정변을 일으키며 자신이 총리에 오른다. 하지만 쿠데타 직후 유럽에 영국발 대공황이 불어닥치며 빌빌대던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게 되고 공산당의 규모는 날이갈수록 커지게 된다. 한편 이탈리아 내에서도 큰 규모의 우익세력을 보유하고 있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1924년 사회주의 세력을 척살한다는 명목 아래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로마 진군을 진행하며 디아초 총리를 몰아내고 자신이 총리에 오르게 된다. 무솔리니는 집권 직후 반혁명 재판이라는 이름 아래에 공산당을 몰살시키고 군부도 숙청시키며 절대권력을 얻게 된다. 대공황의 피해를 받고있지 않던 독일에서 경제고문을 데려외 공황을 끝내게 된다. 이후 1930년 독일과 함께 베를린 회담을 통해 추축국을 결성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는 영국,프랑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1935년 에티오피아 침공으로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독일.일본과 본격적으로 연대한다.

공화국 선포

1939년 2차 기업전쟁이 일어나고 이탈리아도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참전한다. 현실과 달리 체질 개선에 성공한 이탈리아 군은 프랑스 산악사단에 막히지 않고 마르세유를 점령하며 북아프리카로 탈출하던 자유 프랑스군을 전멸시키는데 성공한다. 북아프리카에서도 튀니스를 함락시키고 카이로를 점령하며 이집트를 장악하게 된다. 그리스에서도 막히지 않고 속전속결로 끝내고 키프로스 해전으로 영국 해군에 큰 피해를 주며 활약한다. 이후 1945년 마드리드 조약의 채결로 이탈리아는 많은 영토를 손에 넣게되고 국민들의 지지는 폭발하게 된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전국민적 영웅이된 무솔리니의 인기를 두려워 하게되고 3월의 겨울 사건을 통해 자신이 정국을 장악하고자 한다. 하지만 국가 파시스트당이 미리 눈치채고 군부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실패로 끝난다. 이후 무솔리니는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을 페지시키게 되고 이탈리아 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하지만 평소 무솔리니를 싫어하던 나폴리 마피아들이 1955년 무솔리니를 암살시킨다. 이후 아민토레 판파니가 대통령에 오르지만 1947년 제3차 추축국 회의에서 추축국을 탈퇴하며 다시 외교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하자 평소 이탈리아에 우호적이던 에스파냐국,터키 공화국과 함께 지중해 협약을 창설한다. 이후 아틀란트로파 계획 이라는 역사상 최대규모의 간척사업으로 지브롤터 해협에 대규모 댐을 건설하고 신대륙 계획이라는 이름아래 아드리아 해를 통째로 육지로 만들어 버리지만 결과는 지중해의 극심한 온난화,사막화로 되돌아 왔고 국가파시스트당의 지지는 폭락하게 된다. 이 떄문에 반혁명 재판으로 잠잠하던 이탈리아 공산당기독민주당이 각각 사회주의 국가,민주정 설립을 주장하며 국민들을 동요시키고 있었고 1960년대 되며 경제정책의 폐해가 다시 드러나며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게 된다. 국가 파시스트당에 대한 지지는 땅에 떨어지게 되고 기독민주당이 의회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자 이탈리아의 정치적 격변이 시작되었고 공산당은 노동자들을 선동해 파업과 시위를 조장하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었다. 다른 지역 정당도 의회에 진출하자 판파니 대통령은 내각 총사퇴라는 강수를 두지만 끝내 1965년 기독민주당의 줄리오 안드레오티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독일괴의 관계개선을 통해 경제위기를 해결하고자 시도하지만 반독정책을 유지하고 의회에서 압도적인 의석수를 가진 국가 파시스트당의 반대로 좌절하게 되고 내부 개혁도 급진 개혁을 주장하는 공산당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1969년 시칠리아 마피아가 주도한 이탈리아 의회 폭탄테러로 기독민주당에 대한 지지도 점점 악화되어 가고있으며 엔리코 베를링구에르를 중심으로한 공산당의 지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