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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Ashes
구시대가 끝나고 근대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보나파르트 제국이 첫번째로 무너진지 1834년,
프랑스에 맞선 7차 대불동맹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근대 시대가 열렸습니다.
첫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
참호와 기계의 전쟁 속에서 괴수와 영웅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절멸전쟁이 벌어진 1940년,
인류는 인간성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1944년에 절멸전쟁이 끝나고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1984년에 살고 있습니다.
멈추지 않고 달려간 근대성의 열차는
20세기 후반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이 열차를 따라가기에 너무 앳된 인류는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인간성은 자유, 번영, 질서로 포장된 폭력에게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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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위에서는 나폴레옹의 승리를 분기점으로 역사가 뒤틀리고 근대화가 촉진되어, 인류가 20세기에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하고, 동시에 1차 대전에서 신화 시대처럼 초인과 괴수가 다시 나타난 사이버펑크,판타지,레트로스타일의세계관이다. 전간기와 대공황을 거치며 근대성의 폭주는 극단주의와 전체주의의 형태로 나타났고, 곧 세계를 휩쓴 2차 세계대전인 절멸전쟁(Extermination War)으로 이어졌다. 1940년부터 1944년 사이 4년 간의 전쟁 끝에 미국, 독일, 중국 중심의 3대 세계질서가 형성되었다. 잿더미 위에서는 이 세계질서가 형성된 지 40년이 지난 1984년을 기준으로 1984년 까지의 근대사와 1984년의 상황,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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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나폴레옹 대제는 러시아 원정에서 모스크바 대신 상트페트르부르크를 먼저 공략하기로 결정한다. 상트페트르부르크를 함락시킨 러시아 원정군은 발트 해를 통해 보급을 받으면서 러시아 내륙 지역으로 진격했고, 그 결과 러시아는 프랑스에게 항복한다. 이후 프랑스 제국군은 이베리아 반도로 방향을 돌려 영국군을 내쫓았고, 동시에 미국도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했다. 완전히 수세에 몰린 영국은 결국 프랑스와 평화 협상을 체결한다.
1814년, 유럽은 보나파르트 체제로 통합되며 1814년부터 18년간의 팍스 프랑카(Pax Franca) 시대가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제도와 법, 가치관이 유럽 곳곳으로 확산되었고 근대 유럽 사회의 바탕이 되었다. 이로서 유럽은 더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이루기 시작했고, 프랑스 중심의 유럽 관세동맹 체제에서 산업화는 현실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고 발전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있던 프랑스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821년 나폴레옹 대제가 사망한 후 어린 나이의 후계자 나폴레옹 2세를 대신해 홀란트의 국왕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섭정이 수립되었다. 허나 나폴레옹 대제 시기에 감춰져있던 사회의 문제들과 패권의 쇠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1832년, 나폴레옹 2세가 후사 없이 급사하면서 제국은 혼란에 빠졌다. 나폴레옹 2세가 급사하자 나폴레옹 대제의 형제들은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이끌거나 혹은 떠밀린 채로 제위 쟁탈에 나섰다. 제위 쟁탈전은 결국 프랑스를 준 내전 상태로 몰고갔으며 프랑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심지어 부르봉 복고파들의 반란도 일어났다.
이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지켜본 대영제국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접촉 후 신 대불동맹을 결성해 제7차 대불전쟁, 유럽 해방전쟁을 개시했다. 대영제국,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과 유럽 각지의 반 프랑스 봉기는 보나파르트 체제를 무너뜨렸고, 전쟁 2년만에 대불동맹군이 라인 강을 넘어 프랑스 내륙에 발을 디뎠다.
1834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서 평화 협정을 맺었고, 평화 협정의 결과 대영제국, 프랑스 제국,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 5강 체제가 수립되고 신생 이탈리아 왕국,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독립, 폴란드 분할 등이 이루어졌다. 빈 체제는 명목상 복고주의를 천명하였지만, 이미 보나파르트 체제 18년 동안 급변한 사회는 구 시대로 회귀할 수 없었다. 오히려 보나파르트 체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활성화된 민족주의 운동과 계몽주의 운동이 빈 체제를 흔들기 시작했다. 민족주의는 급기야 열강들의 정치에도 변화를 불러오면서 세력의 균형을 허물고 패권을 추구하는 제국주의 경쟁을 일으켰다.
1848년, 미국발 감자 역병으로 인한 대기근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메테르니히의 철권 통치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독일권과 오스트리아 영내에 확산되었다. 헝가리 반란과 프로이센의 도전은 오스트리아를 위협했고 이를 자초한 메테르니히는 결국 사임하였다. 새로이 즉위한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무너질 뻔한 제국을 수습했지만 빈 체제는 누더기가 되었다. 프로이센은 불손한 민족주의를 수용하여 독일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제국은 발칸과 캅카스를 노리기 시작했으며, 내전과 패전 이후 칼을 갈던 프랑스는 이 상황을 이용하고자 했다.
1854년 러시아 제국이 캅카스와 발칸으로 진출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침공하면서 빈 체제는 붕괴한다. 러시아의 침공에 프랑스가 개입하여 러시아-투르크 전쟁은 국제전으로 비화되었고 곧 러시아를 지지한 국가들과 러시아에 맞선 국가들로 나뉘어졌다. 이 전쟁은 유럽 대전이라고 불렸다. 프랑스-오스트리아-오스만 연합군과 영국-프로이센-러시아 동맹군은 서로 격돌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1855년 약 1년 간의 전쟁이 끝나고 이듬해 대영제국의 주도로 런던 회의가 개최되어 유럽의 세력 균형을 정립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센은 소독일 통일을 이루고, 오스트리아는 헝가리가 독립하면서 열강에서 탈락했다. 프랑스는 비록 명목상 패전국이지만 벨기에 회복을 인정받았으며, 러시아 제국은 비록 발칸의 패권을 얻지 못했지만 캅카스에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확보했다. 이렇게 1855년 빈 체제를 보완한 런던 체제가 출범하고, 1914년까지 평화와 번영, 그리고 제국주의가 급성장한 벨 에보크의 시대가 이어졌다.
1861년, 노예제 문제를 근원으로 일어난 미국의 남북 갈등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남북갈등 봉합에 실패한 스티븐 더글러스 대통령은 남부와의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으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할 기회를 엿보던 프랑스 제국이 개입해 남부 미연합국을 인정함으로서 결국 미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패배 이후 북부의 미합중국은 공화당 중심으로 중앙집권적인 연방 개혁을 추진하고 독일과 영국과 접촉했으며, 남부의 미연합국은 팽창주의적인 정책을 개시하며 프랑스와 접촉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19세기 말, 독일의 내연기관(Verbrennungsmotor), 북미국의 테슬라 기술(Tesla-Tech), 그리고 영국에서 천천히 발전한 계산기(Computer) 기술이 시너지를 일으켰고, 이는 1차 산업혁명보다 더욱 급진적이고 더욱 거대한 발전을 이룬 2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과학적 관리론에 입각한 대량 생산 시스템이 확산되어 막대한 양의 생산을 가능케 했고, 산업기술의 정수인 자동차, 증기선, 대규모 철도가 보편화되었다. 동시에 기술을 등에 업은 서구의 침략자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침략과 수탈을 지속했고 식민지의 원주민들은 종주국을 위해 소모품처럼 희생되었다. 운이 좋은 몇몇 국가들은 서구와의 교류와 내부의 변혁을 통해 근대화를 달성하여 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각 제국들은 자신들의 우월함을 뽐내기 위해 대도시에 높은 마천루를 세우고 거리 곳곳에 전등을 달며 불야성을 쌓아 올렸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은 식민지와 변방에서 서서히 고조되더니, 급기야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키면서 점차 거대한 폭풍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4년, 벨 에보크를 지탱하던 외줄이 끊어졌다. 서로 대립하던 영국-독일-북미국 동맹국과 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 협상국은 1914년 9월에 벌어진 3차 발칸전쟁을 계기로 충돌하였고, 단숨에 수백만이 넘는 병력이 동원되어,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에서 격돌하기 시작했다. 양면으로 포위된 독일 제국을 향한 협상국의 기습공격은 각개격파 당했다. 러시아군은 힌덴부르크의 기동 방어에 격파되고, 17 계획으로 라인란트로 진격한 프랑스군은 쾰른 외곽에 구축된 팔켄하인의 참호 방어에 의해 말살당했다. 대영제국이 독일 편에 가세하자 전세는 점차 동맹국으로 기울어졌다. 서부전선의 독일군과 합류한 영국군은 점차 프랑스군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동부전선에선 폴란드를 상실한 러시아 제국이 점차 와해되기 시작하고 러시아군은 후퇴를 거듭했다. 그럼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계에 봉착해 붕괴될지언정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다.
유럽 밖에서도 마찬가지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북미국과 남미국은 미시시피 지류를 따라 지독한 참호전과 회전을 벌였다. 중동에서 오스만 제국군은 러시아군과 아랍 반란군과 맞서 싸웠다. 아프리카에선 식민지인들이 각자 종주국의 깃발을 들고 서로 격돌했다. 아시아에선 신흥 강대국인 대일본제국과 그 동맹인 대한제국이 만주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참혹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수백만명의 피가 세계 곳곳에 흐른 것이다.
세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을 무렵인 1918년, 러시아는 브루실로프 대공세의 실패 이후 혁명파와 입헌파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어 내전으로 이어졌다. 홀로 남은 프랑스는 발악과도 같은 최후의 공세를 펼쳤지만 결국 실패했고, 2,200대의 전차를 대동한 영독연합군의 100일 공세로 페텡 방어선이 붕괴되어 파리를 포위당했다. 포위당한 파리에서 황제가 도망치자 시민들은 분노했고, 남은 정치인들이 공화정을 선포하여 휴전에 동의했다.
1919년, 전쟁이 끝난 후 독일 제국 포츠담에 승전국과 패전국의 대표자들이 모여 종전 협상을 맺었고 패전국에게 막대한 배상금과 군사적 제한을 부여하는 암스테르담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대부분의 식민지를 영국과 독일에게 빼앗기고, 러시아는 핀란드, 발트,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를 독일에게 넘겨줬다. 남미국은 중남미에서 가진 모든 이권들을 포기 했으며, 공통적으로 패전국 모두 굴욕적인 배상금과 군비제한을 당했다. 반대로 승전국들은 막대한 배상금과 전리품들을 바탕삼아 경제의 번영을 이루기 시작했다. 독일은 갈망하던 중유럽 패권, 미텔오이로파(Mitteleuropa) 체제를 구축했다. 독일은 본토 경제 규모에서 영국을 뛰어넘는 것을 넘어, 인도를 포함한 대영제국과 맞먹는 패권국이 되었다. 또한 대영제국은 1차 대전 이후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기에, 독일 제국이 대영제국의 뒤를 이어 한 시대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를 빌헬름 시대라고 부른다. 영국은 비록 이 시기부터 천천히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1차대전후 호황기 까지만 해도 무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북미국은 승리의 막대한 대가를 치뤘지만, 대신에 아메리카 권역에서 미연합국과 프랑스 제국의 영향력을 무너뜨리고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남아메리카를 아우르는 영향력을 수립했다.
이후 승전국들은 각자의 번영을 누리면서 지난 전쟁이 마지막 전쟁이 되길 바랬지만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번영을 가지지 못한 패배자들은 새로운 전쟁이라도 오길 바라면서 승자들의 질서를 뒤집고자 했고, 승자들 조차 승리의 전리품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크고 작은 혼란과 절망이 계속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기의 환상은 사람들의 눈을 가렸다. 1929년이 되서야 사람들은 환상에서 깨어났다. 대공황이 도래한 것이다. 대공황은 기만적인 지난 10년 동안 쌓여진 모순들의 결과물이었다. 그 시기 몰락한 자들이 자살을 택하고, 가진 것도 없는 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났다. 이 상황을 해결해야할 정치권에서는 불안감과 공포 속에 미래를 내다본 혜안보다 근시안적인 오판이 반복되었다. 이 악순환으로 세계는 더욱 혼란과 침체에 빠졌으며, 모든 것이 무너지고 가라앉은 끝에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 역사는 분기점을 맞이했다. 1932년 전 세계의 파시스트 정권의 연쇄적인 탄생, 잿빛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1932년 3월 13일, 프랑스의 중심 파리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국가생디칼리스트들의 국민공화국 정권이 수립된 이후, 이탈리아, 러시아 제국, 미연합국(남미국), 일본제국, 대한제국 등 세계 각지에서 기존 체제가 전복되고 새로운 전체주의 체제가 수립되었다. 그들은 폭력과 대중 동원, 반동 엘리트 세력과의 연대를 기반으로 정권을 장악했고 반대파들을 물리적으로 일소하여 전체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전체주의 국가들은 1차 대전의 승리자인 영국, 독일, 북미국을 무너뜨려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연대하기 시작했다. 1936년 프랑스 재무장, 1937년의 동아시아 전쟁, 1938년의 멕시코 침공, 1939년 우크라이나 동부 반란을 거쳐 추축국과 연합국의 대치가 극에 달하자 서로의 군홧발이 점차 단단해졌다. 세상은 독일, 영국, 북미국이 주축이 된 연합국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남미국이 주축이 된 추축국을 중심으로 대립했다.
1940년 6월 22일, 결국 세계는 두 번째 대전쟁을 맞이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러시아가 독일과 영국을 향해 침공을 개시했다. 이 전쟁은 누군가에겐 조국의 미래를 위한 명백하고 신성한 전쟁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포기하지 않은 패배자들의 광기였다. 공통점이 있었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마음이었다. 전쟁 초기는 독-영-북미국 3국이 열세에 몰려 있었다. 프랑스는 아일랜드 극우 정권과 손잡고 지난 세월간 부실해진 대영제국 해군의 허를 찔러 상륙에 성공했고 라인란트를 위협했다. 러시아 제국은 드네프르강 동쪽과 벨라루스 영내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여 독일 제국과 동방 위성국들을 몰아붙였다. 유럽 추축국들이 승리하는 것을 본 남미국군은 기동전으로 북미국의 명목 수도 워싱턴을 점령하고 펜실베이니아로 진격해 행정 수도 필라델피아 인근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추축국은 곧 한계를 맞이했다. 상대는 예상보다 강했고, 오랫동안 버티며 반격했다.
1941년, 연합국과 추축국의 전쟁은 장기전으로 치닫았다. 모든 국가가 총력전 체제에 접어들었고 민간인도 전쟁에 동원되며 민족과 민족의 투쟁이 되었다. 그 결과 양 진영은 서로에 대한 무차별적으로 대량살상병기를 사용했다. 그것은 고스란히 수많은 민간인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전쟁의 모든 나날이 학살극으로 점철되자, 이 전쟁은 절멸전쟁(Extermination War)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학살극 속에서도 승패가 갈렸다. 연합국은 추축국보다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소모하며, 그리고 적을 더 죽일 수 있었으며 그들이 승기를 잡을수록 더더욱 유리해졌다. 이 말은 다르게 말하자면 패망을 목전에 두기 시작한 추축국은 점차 일방적으로 학살 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추축국은 승기를 얻기 위해 반격을 시도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추축국은 차례 차례 무너졌고, 마지막으로 남은 추축국이던 러시아와 일본 제국은 핵무기가 투하면서 항복했다. 그렇게 절멸전쟁은 전 지구에서 1억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내고 종결되었다.
절멸전쟁이 끝난 이후 유럽의 독일, 태평양과 북미의 미국, 동아시아의 중국 세 국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질서가 도래했다. 한때 같은 편으로서 같은 적에 맞섰던 국가들은 이제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허나 공멸을 바라지 않았기에, 이들은 세 국가의 영향력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를 체스판 삼아 대립하는 냉전을 펼쳤다. 이제 수많은 크고 작은 국가들이 세 거인들의 체스말이 되어 종주국의 승리를 위해 휘둘리게 되었다. 구 식민지들에서 숱한 대리전이 벌어지면서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시아의 회색지대들이 피로 물들여졌다.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전쟁마저도 식민지에게 전가한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그 어떤 종주국을 거부한 새로운 진영도 탄생했다. 영국 지배자로부터 독립한 인도인들의 바라트 연방 공화국과 러시아의 잔해에서 다시 나타난 볼셰비키들의 소비에트 연방, 남아메리카의 맹주로 우뚝선 브라질 제국을 비롯한 국가들은 각자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제4세계라 불리는 비동맹 진영을 이루었다. 작은 다윗들은 세 거인들이 서로에게 눈이 팔려 싸우고 있는 동안 자신들의 힘을 기르고 입지를 다졌다. 냉전 질서는 어느새 4개의 진영으로 구성된 4극 체제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4극 체제가 형성되자 냉전의 양상도 달라졌는데, 서로 대립하던 독일, 중국, 미국은 새로이 이해관계를 다지고 필요에 따라 협력과 갈등을 유지하면서 데탕트를 이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우위를 가르고자 하였기에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첨예한 대립의 냉전기동안 인류의 과학기술은 급격히 발전하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발전한 의체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수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지만, 동시에 사치와 우월함의 상징이 되었다. 전쟁 시기동안 급격히 발전한 정보 기술은 점차 방대하게, 점차 섬세하게 발전하면서 개개인과 합일한 생활기술이자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오파츠가 되었다. 나아가 인류는 우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1961년에 우주 궤도에 닿고, 1969년 드디어 달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방대한 양의 정보가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흘러가며, 인류는 육신의 한계를 점차 허물기 시작했고, 하늘을 넘어 저 우주로 진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또한 전쟁 이후 재건 과정에서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코포라티즘 체제가 구축되었다. 코포라티즘 체제는 파시즘을 일으킨 정치적 혼란과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계급과 계급의 적대를 해소하고 사회의 조화를 추구했다. 견고한 질서 속에서 모든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일을 다하며 충분한 삶을 보장받는 체제. 그 체제 속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조화'의 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일방적인 헌신을 바치며 착취당하거나, 불순물로 간주당해 배제되거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갈등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견고한 질서는 그 그림자마저 가려버린 채 지상 낙원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황혼이 오기 전까지 그렇게 믿었다.
1970년대, 인류는 황혼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기술과 산업의 급진적인 발전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실업, 기성 산업의 몰락과 해체로 이어졌고 고속 성장의 기세는 꺾이기 시작했다. 특히 화석연료의 쇠퇴는 석유에 의존하던 중동에 혼란을 일으켰다, 문제는 화석 연료의 수요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중동 석유 공급망의 붕괴는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이어졌다. 석유 파동이 일어난 후 독일, 미국, 중국 세 거인들의 체제는 퇴보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지금까지 종속국과 식민지에 부담을 전가 하며 종주국의 번영과 안정을 유지했지만 한계를 맞이했고, 결국 자국의 힘 없는 자들한테 부담을 지우기 시작했다. 코포라티즘 체제의 꿈은 잔인한 현실 앞에서 무너졌다. 이후 세계는 국가 안팎으로 투쟁으로 점철된 투쟁의 시대로 이어졌고 이데올로기, 종교, 권력, 계급, 그 모든 것들에서 투쟁이 시작되었다.
1984년, 황혼의 시대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며 위정자들이 국정을 주도하며 국가를 점차 퇴보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인류의 발전이 스스로가 만들어낸 한계에 가로 막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제국을 지키기 위해 회색지대를 피와 화염으로 물들이고 있으며, 썩은 물레바퀴 같은 통치에 항의하는 민중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자신들을 믿으면 언젠가 고난이 끝나고 미래가 올 것이라며 거짓된 희망을 불어넣지만, 모순 속에서 피어난 부패의 씨앗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인류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세로운 물레바퀴를 세울까. 아니면 천천히 죽어가는 현실을 외면한 채 썩은 물레바퀴를 계속 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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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근대화가 현실보다 가속되면서 기술의 발전 속도 또한 천천히 가속되어 20세기에 이르러 급격하게 발전하였는데, 현실과 달리 무선 전류 수송 기술과 전자식 계산기 기술이 일찍이 발전하여 의체, 컴퓨터, 초기형 네트워크, 로봇공학의 발전이 20세기 초중반부터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국주의 경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인류는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근대성의 광기를 맞이했다.
절멸전쟁이라 불린 2차대전 이후 미합중국, 독일 제국, 중화민국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개편되었으며, 이들은 회색지대로 불리는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자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원 전쟁의 목표는 2차대전 이후 대두된 코포타리즘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속의 사회주의로 정리되는 코포라티즘 체제는, 자본가와 비자본가 계층 모두의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회색지대의 자원을 착취했고, 이 착취가 회색지대를 황폐화시키고 무질서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제국들의 자원전쟁에 끼어들어 제국들의 붕괴를 암약하는 세력이 있다. 바라트 연방 공화국(인도)와 소련(1949년 건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코민테른이다. 이들은 회색지대 내 좌익 민족주의 독립세력을 지원하는 동시에, 회색 자원지대들의 질서를 붕괴시켜 자원 수탈의 사이클을 붕괴시켜 세계혁명으로 이끌고자 한다.
영미권은 독일, 중국과의 자원 경쟁에서 피해를 입었고, 뉴딜과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표되는 영미식 코포라티즘 체제에 한계를 맞이하자 코포라티즘 체제를 포기하고 비자본가 계층을 희생시켜 자본가를 우선 구제했다. 허나 이 정책은 영미권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기술적 실업과 빈곤, 사회 혼란으로 사회적 비용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GDP 성장률을 홍보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코포라티즘에 만족하며 온건화되었던 영미의 진보주의 진영은, 코포라티즘이 무너지자 다시 급진화되었다. 그 중에서 특이점 기술이 사회주의를 실현할 물질적 토대로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특이점 기술 시스템과 사회주의를 결합하자는 특이점 사회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사이버신 노선이 탄생했다. 미국 사회당이 집권한 디트로이트가 특이점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하여 러스트 벨트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대안경제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는 영국의 몰락 공업도시에도 영향을 미쳐 영국 대처 정권의 존속에 위협을 주고있다.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보수진영의 극단화를 일으켰다. 레이건이 교권주의, 반동주의자들과 연대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대처 정권 하 영국에선 극우 반동주의자들이 사회진화론에 기반한 계급사회를 주장하고 있다. 영미권 외에도 유럽, 남미, 아시아 각지에서도 극우 반동주의가 성장하고 있으며 이해관계에 따라 기성 보수진영과 야합하거나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세속권력에 대한 종교의 권위가 크게 손상을 입고, 반대급부로 극단적인 종교 테러리즘이 발흥했다.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가릴 것 없이 종교극단주의 테러를 일으킨다. 영미권의 경우 구 미연합국에 속했던 미 남부 지역에서 발흥한 기독교 근본주의와 인종주의, 전체주의적 사상이 결합된 '신성한 국가(Divine State)'라는 테러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수바스 찬드라 보세의 카스트 및 악습 청산 운동의 반작용으로 시바신을 추종하며 순수한 힌두교 기반 국가를 추구하는 샤이비즘이 등장했다. 오스만 패권 치하의 아랍 지역에서 발흥한 지하디스트 운동은 전 세계 이슬람 국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1974년 이란 내전과 레반트-메소포타미아 반란 이후 심화되었다.
종교 테러리즘 외에도, 미국의 악명 높은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 '유나바머'의 반기술주의 사상이 빠르게 퍼지고 있으며 이는 반달리스트 운동이라는 새로운 조류의 테러리즘을 낳았고, 종교 테러리즘 진영에서도 반기술주의를 수용하여 연대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문명이 인간의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그로 인해 인간은 자연에서의 생존투쟁을 통해 행복을 얻는 대신 인공적인 문명에서 생존투쟁으로 불행을 겪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기술 문 파괴하고 목가적인 원시 생활로 회귀하고자 한다. 이들은 유나바머의 지령에 따라 격렬하게 테러를 저지르고 있으며, 기술 문명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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