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 (월드 워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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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第一次 世界 大戰|World War I
기간
1912년 7월 24일 ~ 1916년 2월 8일
장소
트레아, 온해, 마리아, 아렌시아, 청서양, 청해
원인
식민지 쟁탈전과 팽창 주의
교전국
견제국 연락국
양국
루미에르
모명 제국
스페란차 왕국
루오카라
켈바르디
벨레시아
실바스탄 왕국
천래
로련(1915.04.~1916.02)
유스카로프 제국
칸타즈카 왕국
알투란 제국
리베란시아 제국
결과
견제국의 승리
영향
연락국 국가 멸망 및 해체
북마리아와 트레아 국가의 독립, 아렌시아와 남마리아 국가 독립 선언
전제군주제의 몰락과 이로 인한 트레아 내 황제국 전멸 및 공화제의 대두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
피해규모
사망(군 병력): 약 3,900,000명
부상(군 병력): 약 6,400,000명
실종: 약 630,000명
총 사상자: 약 10,930,000명
사망(군 병력): 약 2,000,000명
부상(군 병력): 약 4,000,000명
실종: 약 500,000명
총 사상자: 약 7,000,000명

개요

제1차 세계 대전유스카로프 제국의 자원 확보를 위한 이웃국가인 루오카라 왕국을 침략하여 1912년 7월 24일부터 1916년 2월 8일까지 진행 된 전 세계적으로 전개 된 전쟁이다.

서론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트레아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과 그 과정에서 소외된 유스카로프 제국으로 대표되는 신흥 제국들의 불만 및 트레아 내 민족주의적 갈등 등 다수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양국, 루미에르, 모명 제국을 중심으로 한 삼국 연맹과 유스카로프 제국, 알투란 제국, 리베란시아을 중심으로 한 삼국 협약이 형성되었고 이들 두 동맹체 간의 대립이 제1차 세계 대전의 직접적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세 속에 유스카로프 제국의 왕이었던 볼로디르미치 볼로디미르 왕이 사망하고 황태자인 볼로디르미치 드미트리가 즉위하게 되는데, 드미트리는 즉위 직후 루오카라 왕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게된다.

드미트리가 즉위하자마자 전쟁을 선포한 것도 이상하진 않은게, 드미트리가 즉위하기 전부터 유스카로프 제국의 경제는 자원의 부족과 지속적인 군비 확장으로 인해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내부적으로 백성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미트리는 경제 재건을 위한 전쟁을 발발시켜 백성들의 분노를 외부로 돌리고, 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계산을 하게 되었다. 특히, 자원이 풍부한 루오카라 왕국을 침공하여 자원을 확보하고, 백성들에게 전쟁을 통한 승리를 약속함으로써 국가의 결속을 다지려 했다.

그러나 유스카로프 제국루오카라 왕국 침공은 결과적으로 전쟁의 크기가 세계수준으로 커지는 것을 야기했다. 루오카라 왕국모명 제국과 동맹을 맻고 있었기 때문에 루오카라 왕국의 지원을 받아들인 모명 제국유스카로프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사실상 삼국 연맹과 전쟁을 치루게 된 것.

같은 삼국 협약의 국가였던 알투란 제국유스카로프 제국루오카라 왕국 점령과 더불어 자신들의 염원이었던 실바스탄 왕국을 점령하기 위한 계획으로 참전을 선언하였고, 리베란시아 역시 이에 동조하여 태양제국의 식민지인 서마리아 민주공화국오르하야를 점령하기 위해 참전했다.

태양제국은 처음에는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으나, 동맹국인 스페란차 왕국이 삼국 협약의 국가들이 온해의 해상무역로를 차단하는 것을 막기위해 참전하고, 자신들의 식민지인 양국령 서마리아를 침공하니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참전했다. 1914년엔 천래가 양천동맹에 근거로 참전, 1915년엔 로련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1개 식민지 확보를 위한 유스카로프 제국의 야망에서 당대 주요 열강들이 모두 휘말리는 견제국과 연락국이라는 2개 동맹체 아래 모두가 말려드는 세계 대전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장기간에 걸친 전쟁은 주요국들을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사상자만 속출할 뿐이었던 지독한 참호전으로 변화한 서부전선의 영향과 전시 경제의 영향으로 국민들의 반감도 속출하기 시작하니 전쟁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쟁 기간 실바스탄을 침략한 알투란 제국은 영토를 얻기보다 되려 패퇴하여 상실함으로써 가장먼저 발을 뺐고, 이어 로련의 맹공으로 서서히 동부 영토를 로련에게 서서히 빼았긴 칸타즈카 왕국이 항복을, 지속해서 서마리아 민주공화국오르하야를 공격하던 리베란시아가 휴전에 합의했다. 마지막 발악을 하던 유스카로프 제국은 양면 전선을 견디지 못하고 차례대로 무너지는데 이어 유스카로프 혁명으로 인해 유스카로프가 붕괴하고, 우라즈카 공화국이 1916년 2월 8일 휴전에 합의하면서 견제국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4년 간 치러진 전쟁은 세계를 크게 뒤흔들었다. 한때 트레아의 주요 강국이었던 칸타즈카로련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동트레아와 동북마리아, 서아렌시아에서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알투란 제국은 내부 분열을 겪다가 기나긴 내전에 빠지게 되었으며, 블라모크 제국이 붕괴하고 로련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는 두번다시 이런 대규모의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동맹을 탄생시켰으나, 패전국에 대한 승전국들의 징벌은 민족주의와 파시즘의 부활을 초래했고 전후의 전쟁에 대한 공포는 이 상황을 전혀 수습하지 못했으며,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의 단초를 만들어냈다.

배경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은 단순한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이 전쟁은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정치적 긴장, 경제적 경쟁, 군사적 동맹,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충돌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된 결과로, 트레아 대륙 내 여러 강국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와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군사적 충돌을 선택한 상황이었다. 각국의 침략적 정책과 불안정한 국제 정세는 전쟁의 불씨를 당기게 했고, 마침내 전 세계를 휘말리게 만든 대규모 전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제국주의와 자원 확보의 경쟁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트레아 대륙의 주요 강국들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특히 유스카로프 제국은 자원의 부족과 군비 확장으로 경제가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내부적인 불만도 폭발 직전에 있었다. 유스카로프 제국은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그에 맞춰 제국주의적 팽창을 추구했다. 이는 전통적인 제국주의 강국들의 제국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르게 했다. 특히 유스카로프 제국은 인접한 루오카라 왕국을 침공하여 자원을 확보하려 했으며, 이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루오카라 왕국은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유스카로프 제국의 경제 재건을 위한 중요한 목표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각국의 정치적, 군사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필요에서도 비롯되었다. 제국주의적인 야망은 당시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국가의 명예와 영토 확장을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부각시켰고, 이로 인해 다른 국가들과의 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군사적 동맹과 국제적 긴장

트레아 대륙의 국가들은 서로 간의 군사적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위협으로 느꼈다. 이러한 동맹 체제는 결국 각국 간의 대립을 심화시켰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태양제국루미에르, 모명 제국이 주도하는 삼국 연맹에 대응하기 위해 트레아의 신생 제국인 유스카로프 제국, 알투란 제국, 리베란시아 제국은 서로 동맹을 맺고, 삼국 협약을 통해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공유했다. 그들은 트레아 대륙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립하기 위해, 또는 다른 국가들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서로 협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동맹 체제는 곧 대립을 초래했다. 유스카로프 제국루오카라 왕국을 침공하면서 삼국 연맹의 국가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유스카로프 제국의 공격은 결국, 삼국 연맹의 국가들과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고, 이는 곧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삼국 연맹에 속한 양국, 루미에르, 모명 제국 등은 유스카로프 제국의 급격한 군사적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을 강화했다. 특히 루미에르모명 제국루오카라 왕국과의 군사적 협력에 나섰고, 이를 통해 유스카로프 제국의 군사적 야망을 저지하려 했다. 이러한 동맹 관계는 제국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고, 각국은 서로의 군사적 동향에 대한 경계와 불신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민족주의의 확산과 내부 불만

민족주의는 당시 각국에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었다. 유스카로프 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경제적 불안과 결합되어 정부에 대한 불만을 증대시켰다. 백성들은 군비 확장에 투입되는 자원과 세금, 그리고 자원의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불만은 군사적 승리와 외부의 적을 상대로 한 전쟁을 통해 해소하려는 욕망으로 변모했다.

민족주의는 다른 국가에서도 중요한 정치적 동력이 되었다. 알투란 제국리베란시아 제국은 자국의 민족주의적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국주의적 확장을 꾀했으며, 이로 인해 다른 국가들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알투란 제국실바스탄 왕국을 점령하고자 했고, 리베란시아 제국양국령 서마리아양국령 오르하야를 침공하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열망은 각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데 있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영향

제1차 대전은 트레아 대륙을 중심으로 벌어진 대규모 전쟁으로, 세계의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구조에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전쟁의 결과로 견제국 측이 승리하고 연락국 측이 패배함에 따라 여러 국가들이 몰락하거나 재편되었으며, 이는 이후 제2차 대전의 발발로 이어지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특히 유스카로프 제국의 해체와 혁명, 알투란리베란시아의 몰락, 로련칸타즈카의 흡수 등은 세계 질서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인문학적

유스카로프 제국의 패배와 혁명으로 새롭게 등장한 우라즈카는 기존의 제국적 정체성을 잃고, 혁명 후의 혼란 속에서 강력한 민족주의와 파시즘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경제적 파탄과 굴욕적인 전후 조약으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강력한 복수심과 열망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민족적 자긍심을 되찾고 국가의 재건을 이룩한다는 명목으로 독재적이고 파시즘적인 통치를 정당화했다. 이는 이후 제2차 대전의 발발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알투란은 전쟁 이후 패배로 인해 경제와 군사적 위상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한때 대륙 내 강국으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로 인해 알투란 국민들 사이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팽배했으며, 이는 내부적으로 문화적 보수주의와 민족 정체성 회복 운동을 촉진했다. 그러나 동시에 국제 사회에서는 알투란을 소외된 국가로 간주하기 시작했고, 이는 문화적 자립과 창의적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리베란시아유스카로프와 마찬가지로 패전 이후 내부적인 혁명을 겪었다. 기존의 왕정 체제는 전쟁의 비효율성과 부패로 인해 무너졌으며, 패전의 영향으로 왕정에게 제대로 실망한 군부의 일부 파벌이 일으킨 내전의 끝에 이들 중심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되었고, 이는 이후 국제적 갈등과 이념적 대립의 불씨로 작용했다. 리베란시아는 더 이상 대륙의 강국이 아니라 혼란과 분열로 가득한 국가로 전락했다.

군사학적

제1차 대전은 대규모 병력 동원, 그리고 신기술의 사용을 통해 군사 전술과 전략의 혁신을 이끌었다. 이는 전쟁 후에도 각국의 군사 계획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견제국 측의 승리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군사 전략의 중요성을 입증했으며, 유스카로프와 같은 패전국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군사적 혁신을 모색했다. 우라즈카로 변한 이후에도 이들은 복수심을 동기로 삼아 군사 기술 연구와 무기 개발에 집중했다.

칸타즈카는 전쟁 이후 로련의 영토로 흡수되었다. 이는 로련트레아 대륙에서 군사적 위상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후 국제 정세에서 로련이 주요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로련칸타즈카의 지리적, 군사적 자원을 활용해 주변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확대했다.

알투란은 전쟁 이후 병력과 군비를 대폭 감축해야 했으며, 이는 지역 방어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특히 알투란의 해군과 공군은 전쟁의 막대한 손실로 인해 거의 해체 상태에 이르렀고, 이는 트레아 대륙 내에서의 군사적 입지를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적

전쟁은 사회적 구조와 가치관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인구의 대규모 희생, 경제적 파탄, 그리고 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재편은 전쟁 이전과 이후의 사회를 극적으로 구분 짓는 요소였다.

제1차 대전은 수백만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남겼으며, 이는 트레아 대륙의 모든 국가에 심각한 인구 손실을 초래했다. 특히 유스카로프리베란시아는 전쟁 중 병력의 대부분을 잃었고, 이는 전후 복구 과정에서 심각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야기했다. 인구 감소는 경제 회복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농업과 산업 생산량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다.

전쟁으로 인해 귀족 계급의 몰락과 노동자 계급의 부상이 가속화되었다. 유스카로프리베란시아의 혁명은 기존의 지배 계급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이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확산되는 기반이 되었다. 알투란에서도 중산층과 하층민의 정치적 목소리가 커지면서 새로운 사회적 구조가 형성되었다.

전쟁은 대륙 전역에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겼다. 참전 군인들은 PTSD로 인해 고통받았으며,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반전 정서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우라즈카에서는 이러한 트라우마가 복수심과 민족주의로 전환되었고, 이는 사회 전반에 걸친 불안정과 갈등을 심화시켰다.

나라별 영향

참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