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하얼빈 전투 (푸른 오얏꽃2)


제3차 하얼빈 전투
날짜 1916년 10월 20일 ~ 12월 18일
장소 중화민국 흑룡강성 하얼빈, 송화강
결과 일본, 러시아 제국군의 승리
교전국
일본 제국
러시아 제국
대한제국
지휘관
가미오 미쓰오미
데라우치 마사타케
야마나시 한조
하세가와 요시미치
우가키 가즈시게
마사키 진자부로
아라키 사다오
알렉세이 쿠로팟킨
라브르 코르닐로프
권중현
안중근
 김승규
윤석호
 홍사익
 윤웅렬
 한규설
 주석면
 엄주익
병력 일본 제국: 12개 사단
러시아 제국: 19개 사단
984,300명
대한제국: 23개 사단
1,030,000명
피해 규모 사상자: 336,000명
전사자: 274,000명
사상자: 585,020명
전사자: 339,100명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중 아시아 전선에서 대한제국 황립육군일본 제국, 러시아 제국의 러일연합군 간에 1916년 10월 20일부터 동년 12월까지 벌어진 전투.
앞선 창춘 전투, 동중국해 해전과 더불어 아시아 전선의 가장 유명한 대전투들 가운데 하나다. 참호전의 전형적인 양상을 나타내며 공격자인 일본, 러시아, 방어자인 대한제국 양측 모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동방의 베르됭 전투, 솜 전투라고도 불린다. 본래 이 전투는 만주 겨울 공세의 일부로 하얼빈, 무란현, 이란현 등지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하얼빈과 무란현에서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기에 제3차 하얼빈 전투, 목란 전투라고도 불린다.

배경

1915년 2월 5일부터 10일까지 창춘 전투에서 대한제국 육군은 승리를 거뒀다. 4월 12일, 러시아 제국군은 영일 원정군의 도움을 받아 4월 15일부터 23일까지 이루어진 우창 전투에서 대한제국군이 하얼빈 남부로 진격하는 것을 방어했고 다시 대한제국군을 쑹화강 이남으로 후퇴시켰다. 이 전투는 아시아 전선에서 기동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한제국 장교들이 예상한 것과는 달리 러시아 제국은 1915년 6월 3일, 2개 야전군으로 공세를 시작했다(쿠로팟킨 공세). 권중현이 이끄는 대한제국의 제2야전군은 6월 9일부터 6월 12일까지 이어진 일련의 제2차 쑹화강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했다. 러시아의 공세를 좌절시켰지만, 대한제국이 만주에서 빠른 승리를 거두는 데 실패하므로 연합국이 전술적 승리를 이끌었다.

1916년에도 러시아 제국이 단독으로 전선을 남쪽으로 밀어내기 위해 여러 차례 대규모 공세를 실시했으나 대한제국군의 방어에 막혀 모조리 말아먹고 말았다. 따라서 전선은 고착화 되었고, 참호전과 소모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러시아 제국군의 피해는 가공할 수준으로 치솟았고, 이 시점에서 러시아 제국에 유일하게 긍정적인 요소는 동중국해 해전에서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 해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해상봉쇄를 풀었다는 것 하나였다. 일본 제국은 자국의 군대를 안전하게 만주로 보낼 수 있었고, 때문에 1916년 가을 러일간 회의를 통해 동년 겨울에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이 합동으로 대공세를 펼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