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차 국민투표-제 1차 전체인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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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차 국민투표
1987년 10월 27일
제 6차 국민투표
2028년 3월 20일
제 7차 국민투표
없음
선거 대상 북부 한반도 지역의 독립 정부 수립 여부에 대한 투표
선거 일시 2028년 3월 20일
투표율 68.3% ▼ 10.2%
제 1차 전체인민투표
없음
2028년 3월 20일
제 1차 인민투표
없음
선거 대상 북부 한반도 지역의 독립 정부 수립 여부에 대한 투표
선거 일시 2028년 3월 20일
투표율 68.3% ▼ 10.2%

개요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 경기도를 포함한 북부 한반도 지역 통합에 대한 제 7차 국민투표-제 1차 전체인민투표가 자치 지구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음을 알립니다.

68.3%의 투표율을 기록한 대한민국의 마지막 국민투표이다. 최초로 개헌이 아닌 이유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국민 투표 결과 북부 한반도에 임시 자치 지역을 15년 간 설치하고 기간 내에 조속히 경제, 문화적 통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남북통일을 이루기로 결정하였다.

배경

김정은의 급작스러운 사망 이후 경제난에 의한 원산 봉기가 발생하고 김여정이 정권을 잡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위기에 몰린 김여정이 급작스러운 개방을 단행하며 문제가 시작되었다. 김여정은 개성과 원산을 부분적으로 개방하여 자유롭게 외국인들이 공장이나 상업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지시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원산 봉기를 심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원산 봉기는 이로 인해 북한 내전으로 심화된다.

원산 봉기가 전국적으로 퍼지자 중국군이 친중 정권 수립을 목적으로 원산 반군을 지원하게 되고, 이는 미국 역시 내전에 개입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두 열강의 지원을 받은 원산 반군은 조선로동당이 권력을 잃게 만드는데 충분했고, 김여정의 조선로동당은 남포를 중심으로 항전을 이어 나갔다.

2년 간의 내전 끝에 북한은 원산 반군이 승리하게 되고, 곧 원산 반군은 친미파와 친중파로 분열되게 되었다. 대만 위기를 종식시킨 합의에 의해 중국과 미국은 남북한 공동 국민투표로 통일 여부를 정하자 합의하였다. 이는 통일 찬성 여론과 반대 여론이 북부 뿐 아니라 남부에서도 팽팽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독립 정부 수립을 지지하였고, 미국은 통일을 지지하였다.

대한민국의 일부 정당들과 후에 북부 한반도 기술개혁위원회가 되는 함경도 통일연맹은 투표 실시 자체에 반대 의사를 내비쳤으나, 중국과 미국의 결정을 이길 수는 없었고, 그렇게 제 7차 국민투표-제 1차 전체인민투표가 실시된다.

제 7차 국민투표 실시 당시의 세력권. 빨간색은 중국의 세력권에, 파란색은 미국의 세력권에 놓여 있는 지역이다.

결과

제 7차 국민투표-제 1차 전체인민투표에서는 북측에 자치 지역을 수립하는 방안으로 북한을 남한에 통합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함경도 노동연맹은 투표 결과에 불복했고, 이런 노동연맹을 지원하는 중국에 의해 함경도 노동연맹은 연변부터 함경도까지 독립적인 세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들은 곧, 북부 한반도 기술개혁위원회로 개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