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브 스캔들(Scandal de Zouave) 또는 상퀼로트 스캔들(Scandal de Sans-culotte)은 1924년부터 1925년까지 당시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1]의 은행장이었던 조세프 닐로드(Joseph Nelload)가 당시 뮈르빌르 급진당 내각 시기에,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이 추가적인 투자액 확보를 하고, 그 과정에서 선물거래 중개자들에게 개시증거금 요구를 당하지 않기 위해 자행한 재무상태표의 조작을 막대한 뇌물을 받은 공화국 재무부가 묵인한 사건을 말한다.

이 때,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의 딜러와 각료들이 접촉한 장소가, 탕헤르(주아브) 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상퀼로트 거리의 카페였기에, 주아브 스캔들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1925년 8월 30일, 진보언론이었던 르 누벨 메디아 지가 대대적으로 폭로함으로서 세상에 드러났고, 이윽고 장 드 브리앙 의원의 주도로 발족된 조사 위원회에서 뮈르빌르 총리까지 닐로드의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나, 이후 조각된 내각이 세 차례 연속으로 붕괴되는 등의 정국 혼란을 초래했다.

배경

조세프 닐로드
Joseph Nelload
당시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장

문제의 조세프 닐로드(Joseph Nelload)가 은행장에 오른 것은 1924년 3월으로, 선임 은행장이었던 앙투안 바뵈프(Antoine Babeuf)가 심장마비로 급사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은 세를 불리기 위해 모르방 농업은행[2]을 인수했는데, 그 과정에서 협상을 주도하던 바뵈프 은행장이 급사하면서, 대타로 부행장보 중 하나였던 닐로드가 인수 협상을 성사시키면서, 그 공로로 은행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렇게 신임 은행장으로 등극한 닐로드는 인수 이후의 내부 재무재표 보고를 받았는데, 당시 모르방 농업은행은 대흉년으로 인해, 근간이 되는 농업협동조합들이 도산하면서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고,[3]그 빚이 고스란히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으로 승계된 상태였다. 이에 닐로드는 담보유지비율이 100% 미만인 계좌(깡통계좌)에 기록해 막대한 부채를 분산시키거나, 유령 회사를 세워 그 빚을 분산시키는 분식회계를 시도했다.

하지만 여기서 금융당국의 외부감사가 마음에 걸렸던 그는, 뮈르빌르 내각의 각료들에게 전방위적으로 천문학적인 뇌물을 뿌렸고, 뇌물을 받은 각료들은 분식회계를 묵인하도록 압력을 넣거나, 심지어 유령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경과

CAC 지수의 폭락, 그리고 마진 콜

하지만 아무리 분식회계를 감행해도, 거래자들의 예치증거금 손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에 따라 거래자들은 수시로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 측에 일일변동증거금을 추가납부하라 요구(마진 콜)했다. 이에 닐로드는 증거금을 충당하기 위해서 CAC 40 지수[4] 옵션을 양매도하는, 일명 스트래들 매도를 감행하는데, 당시 벨포르 공화국은 세계적인 식민 제국이었고, 그에 따라 벨포르권 경제 블럭이 구성된 터라 시장의 변동성이 작을 것이라 계산해, 스트래들 매도를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1925년 4월 3일, 연합왕국의 에든버러 증권거래소의 장이 마감될 시점에, 1640만 주가 팔리는 등의 주가 대폭락이 발생하면서, 기존 식민 제국들까지 대공황에 휩쓸리고 말았다. 당연히 CAC 40 지수는 대폭락했고, 이 시점에서 은행은 5억 3천만 프랑의 손실을 입었다. 이럴 때는 당혹한 거래자들이 대거 은행에 몰려들어 돈을 인출해가려고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이 법칙에는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 역시 예외가 아니였다.

당연히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은 공화국 재무부와 대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파산보호 청구가 받아들여지면서 한숨을 돌린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은 급히 부채를 청산하려고 시도했다. 대공황 기류를 타고 그동안 은폐해왔던 부채를 차금 매매하여 부당 이득을 챙기거나, 아니면 부채를 지닌 유령 회사를 도산시켜 그 부채를 투자자들에게 떠넘기는 행위 등이 그러했다.

르 누벨 메디아의 폭로, 국정감사

하지만 여신관리부 간부였던 샤를 모루아(Charles Mauroy)가 실질손실 및 깡통계좌 장부와, 일부 비자금 장부를 입수해, 당시 유력 일간지 중 하나였던 르 누벨 메디아(Le nouveau média)에 보내면서 이 사건은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1925년 8월 30일 자, 르 누벨 메디아는 모루아가 보내온 장부들을 근거로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의 불량한 재정 건전성을 질타하고,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으로부터 비자금을 수수한 내각 각료들의 명단을 폭로했다.

이 중에는 재무장관이자, 차기 총리로까지 거론되던 카밀 드부아(Camille de Bois)와 사법장관이었던 쥐스탱 보렐리(Justin Borely)까지 연루되어 뭇 대중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결국 야당인 민주공화당정의동맹의 주도로 1925년 9월 8일부터 열흘 간 국정감사가 실시되었다. 이 때 당시 뮈르빌르 급진당 내각과 경제계 간의 여러 유착이 드러나 다시금 세간에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이 때, 국정감사에서 활약한 민주공화당의 장 드 브리앙 의원은 후일 총리직을 역임하게 된다.

각주

  1. Société financière, 벨포르 제2공화정 시기에 무역 중계상이었던 에두아르 블랑쉐(Édouard Blanche)에 의해 세워진 은행으로, 당시 제계 5위의 거대 금융집단이었다.
  2. Banque agricole du Morvan, 모르방 주의 농업협동조합들의 자금력을 기반으로 세운 은행으로, 소시에떼 퓌낭시에에게 인수될 당시 제계 8위의 금융집단이었다.
  3. 총 부채 38억 8천 2백만 프랑으로, 연합왕국 파운드화로는 5억 1,671만 파운드나 되는 어마어마한 부채였고, 소시에떼 퓌낭시에 은행의 자기자본 90% 정도의 부채였다.
  4. cotation assistée en continu, 구스펠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40개의 우량종목을 대상으로, 구스펠트 증권거래소가 산출·발표하는 주가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