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치시기
| ||
[ 펼치기 · 접기 ]
|
인민공화국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한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의해 동안국이 독립을 얻어낸 이후 소련군정이 들어섰다가, 1948년 10월, 국민투표로 동안인민공화국 독자 정부를 이루며 공산 체제가 자리잡는다. 이때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청광광역시 지역은 남안도 청광시와 다산군이 관할하게 된다. 이후 6·25 전쟁에 북측으로 참여하였다가 남측에 청광 지역이 넘어간 이후 항복해버리면서 인민공화국은 해체되고 동안자치공화국이 들어서게 된다.
자치공화국
1953년 휴전 협정에서 동안인민공화국을 동안자치공화국으로 개칭하고 사실상 대한민국의 괴뢰정부로 지정하면서 18년간의 괴뢰정부가 시작된다. 이때 행정구역을 일부 개편하였으나, 청광 지역은 남안도 청광시와 다산군으로 남는다. 정전 18년 만인 1971년, 동안자치공화국이 대한민국에 편입되며 18년간의 괴뢰정부기가 끝이 난다.
대한민국
1970년대 초, 대한민국이 북한과 위상이 유사하던 상황에서 동안도가 안보의 요충지가 될 것이라는 박정희의 판단 아래, 동안도에 큰 지원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때 일제 때에 건립된 대학, 공장과 기업을 재활성화하게 된다. 북안도와 남안도는 각각 동안북도와 동안남도로 개편되었다. 괴뢰정부기에 탄압을 받았음에도 불구, 급속도로 성장한 동안도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1975년에는 다산군이 시로 승격되었으며, 1980년에는 청광시와 다산시의 인구를 합하여 110여만 명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신군부와 민주정의당은 청광시와 다산시를 합치어 청광직할시로 승격시킴을 검토하였으며, 1982년 이는 실현된다. [1] 이에 따라 청광은 대한민국 역사상 네 번째 직할시가 된다.
- ↑ 직후 전주시의 승격이 검토되었으나 불발된 것과는 상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