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정권
1차 대마진 전투
一次對馬津鎭戰鬪
대마도는 일본에서 한반도로 가기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곳으로 반백년간 조선의 땅으로 대마주로 불려왔다. 풍신수길은 소서행장을 선봉장으로 세우고, 전선 700척과 1만8천여명의 병력을 주어 대마도를 평정하여 그의 사위인 소 요시토시의 휘하에 두도록 하고자 했다.
이에 중종 11년 4월 8일 8시에 히젠 나고야를 출발하여 이내 대마도의 엄원(이즈하라), 대마진에 당도하였다. 대마부장 주승휘는 멀리서 오는 대규모 함대를 발견하고 즉시 연락선을 띄우고 봉화를 피웠다. 조선에서도 일본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짐작했기에 이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대마도의 장졸은 모두 정병이었으며, 즉시 전투태세에 만전을 기하여 이내 들어닥칠 적을 요격하고자 기세를 제고하였다.
왜군이 항만에 다다르자 대마수사 천향은 매복하여 있다 후방에서 일본군의 선봉을 급습하여 전과를 올렸다. 대마진에서도 무오총통을 쏘아 원거리의 적 함대를 파괴했고 상륙하는 적을 향해 비격진천뢰와 천보총으로 대적하니 일본의 공세는 힘을 잃어 연안에서 멈추어 섰다.
이각이 지나 대마수사의 함대는 중과부적하여 무기가 떨어지자 충각이라도 하여 적의 함대를 박살내었다. 그러나 이내 월선한 일본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엄원 연안은 일본군의 피와 살점으로 가득차 파도가 붉게 보였으며, 그러고도 끊임없이 돌격하는 왜군에 의해 첫 진지가 함낙되었다. 중군 김읍일이 분투하였으나 일본군의 파상공세에 결국 중군이 사로잡히자 대마부장은 청수산성으로 들어가 농성하였다. 이에 하루 동안 격렬한 싸움이 이어졌으나 일본군은 산성을 함낙시키지 못하였다.
밤 사이 부병감 허식은 정예기병을 이끌고 일본군 진영을 급습하여 화약과 전선을 불태우고 수뢰옥을 던져 많은 인명을 살상하였으나, 복귀 중 매복에 당하여 전사하였다.
9일 오전에 봉수대와 가네다성이 일본군의 급습을 받아 빼앗겼으며, 일본군이 사방에서 청수산을 포위하니 이내 화약이 떨어져 사수들이 천보총을 쓸 수 없어 활을 들어야 했다. 소서행장은 격문을 보내 항복을 권하였으나 대마부장은 단칼에 거절하며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해가 뉘엿거리자 병사들이 서서히 지쳐 성벽 위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대마부장과 그 장졸은 끝까지 일본군을 베었고 주승휘는 성에 불을 지르고는 적 조총에 맞아 숨졌다.
기간 중종 11년 4월 8일 ~ 4월 9일
장소 대마도, 대마진
목적 대마도 점령을 통한 진출로 확보
결과 일본의 대마도 점령
교전국
조선 조선
도요토미 정권 일본
지휘관
조선 
대마부장
주승휘
조선 
대마부병감
허식
조선 
중군
김읍일
조선 
대마수사
천향
제1군
도요토미 정권 
1군 사령관
고니시 유키나가
도요토미 정권 
소 요시토시
도요토미 정권 
마쓰라 시게노부
도요토미 정권 
아리마 하루노부
도요토미 정권 
오무라 요시아키
도요토미 정권 
고토 스미하루
수군
도요토미 정권 
수군 사령관
구키 요시타카
도요토미 정권 
도도 다카토라
병력
조선 
조선
3,708명
도요토미 정권 
일본
30,100명
손실
조선 
조선
3,599명
도요토미 정권 
일본
10,70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