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부산포 해전一次對釜山浦海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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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께서 대마주가 일본군에게 점령된 후로 삼남으로 왜군이 쇄도할 것을 우려하여 충청, 황해, 경상의 수사에 명하여 함대를 모아 동래에 정박하고 적의 동태를 살피도록 하였다. 4월 12일에 충청수사가 함대를 소집하여 사천에 정박했으며, 경상우수사는 웅포에, 경상좌수사는 부산포에 함대를 배치하였다. 경상좌수사 기흥은 11일부터 계속하여 척후를 시작하였고 소서행장을 필두로한 1군과 구귀가륭의 수군이 크게 증원된 것을 이내 확인하였다. 이를 즉시 조정에 보고하여 중종은 황해수사 박응을 수군감으로 임명하여 삼남수사를 지휘하도록 하였다.4월 13일 오전 8시부터 일본 수군이 첨병으로 부산포로 쇄도하였다. 그러나 수군감 박응과 그의 함대는 아직 경상해역에 도달하지 못하였기에 경상좌수사가 단독으로 출정하기로 결단하였다. 이에 서신을 보내어 사천과 웅포에 원군을 청하였다. 포열선 20척, 판옥선 23척, 기갑선 5척, 사후선 3척 총 51척의 함대를 가진 경상좌수군이었으나 상대는 300여척의 세키부네와 30척의 아타케부네를 가진 왜수군 첨병이었다. | |||
기간 | 중종 11년 4월 13일 | ||
장소 | 부산포 앞바다 | ||
목적 | 한반도 진출 교두보 확보를 위한 제해권 장악 | ||
결과 |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 | ||
교전국 |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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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
지휘관 | |||
수군감
박응 경상우도 수군위사
우치복 † 경상좌도 수군위사
기흥 † 충청도 수군위사
성월담 † |
제1군
1군 사령관
고니시 유키나가 소 요시토시
마쓰라 시게노부
아리마 하루노부
오무라 요시아키
고토 스미하루 †
수군
수군 사령관
구키 요시타카 도도 다카토라
가토 요시아키
와키자카 야스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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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포열선
42척 판옥선
78척 기갑선
12척 구선
5척 사후선 8척 |
아타케부네
48척 세키부네
890척 고바야부네
80척 | ||
손실 | |||
조선
미상 |
일본
미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