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영화국의 역대 집권 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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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파 平民派 | ||
형성 | 1700년대[1] | |
해체 | 1906년 | |
수장 | 미나미 조사부로 다네자와 미치자네[2] 산로슈(三老主) (아오야마 마사유키, 이치나카 가네히코, 후지미야 다다히라) 아라야마 시게아키 아리타 히사모치[3] 고토 이치로, 니시카와 나오미치(공동 영수) 다키타 세이카 아리타 히사타케 난토 히타오 혼다 요시오 | |
주요 인물 | ||
내부 계파 | 초기 구도 정인당 향평당 명양당 공행당 청서당 | |
집권 기간 |
개요
선대 영화국의 조정을 귀족파와 함께 양분했던 파벌로, 귀족 세력의 기득권 축소와 근본적인 체제 개혁을 추구했다. 파벌의 이름이 평민파인 것과는 다르게 산야파에서 넘어온 명양당 세력의 존재로 소수의 귀족들 역시 파벌의 일원이었다.[4]
역사
성립
엔키의 신정
산로슈 체제와 영수상론
덴쇼의 신정
세이고 항쟁
귀족파와의 연립 시도
안카의 신정
안카의 변
위국 연립의 실패와 해체
분파
초기 계보
정인당(町人黨)
평민파에 가담했던 신흥 상공업자들이 구성한 분파로서 향평당과 비교했을 때 평민파 내의 온건파로 통했다. 이들은 귀족 세력과 영합하여 영화국의 상권을 독점한 대상인들 즉 긴레이(近令)를 견제하는 것이 주 관심사였고 그밖에 상공업에 바탕을 둔 경제 개혁과 상인 계층의 정치적 발언권 확대를 꾀하기도 했다.
항평당(鄕平黨)
평민파의 주축이 되는 농민 계급이 형성시킨 분파로 정인당 보다 더욱 강경한 개혁 성향을 드러낸 세력이었다. 귀족들의 대토지 소유를 규탄하며 급진적인 토지 개혁을 주창하고 한편으로는 귀족 집단이 독점한 정치·사회 권력의 재분배를 추진했었다.
명양당(明養黨)
본래 산야파에 소속돼 있었으나 나중에 평민파로 넘어온 개혁적 성향의 귀족들을 가리키는 분파다. 정확히는 닌코 오키미와 후지미야 다카아키의 급사로 산야파가 구심점을 잃으면서 붕괴되자 후지미야가를 비롯한 산야파 내의 주류 세력이 평민파로 합류한 것이 명양당의 연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