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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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평양 시대(平壤 時代)는 조선의 시대 구분이다. 숭린 단군이 평양경에 천도한 794년부터 부탁 합전에서 부여 씨가 승리한 1185년까지를 의미한다. 험독 시대 당시 확립된 율령제와 왕토사상이 무너진 시기이기도 하며, 끌어올렸던 황실의 권력이 다시 외척에게 넘어가기도하고, 상황이 섭정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초기에는 황권 강화와 중앙집권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858년 김의정 이래로 김씨가 단군의 외척으로 섭정과 관백직을 독점하면서 귀족정으로 변모했다. 939년에는 견신검과 김부가 각각 일으킨 견김의 난을 시작으로 동산도[1]를 중심으로 읍루의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견신검은 스스로를 신군(新君)을 자칭했을 정도로 격렬했다. 이때의 반란으로 삼한인, 선비인, 물길인들을 정복할 때 존재했던 정이대장군이라는 직책이 잠시 부활했었다.
또 김씨의 경우 조선 최대의 장원을 소유한 귀족이 되었기에 여러 정면 도발에도 황실에서는 이를 묵과할 수 밖에 없었다. 김씨는 강력한 권력을 이용해서 섭관정치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지방에서는 단군이 선임한 지방관의 권력이 약해지고, 전국에 걸쳐있는 섭관의 지방 장원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의 무사들이 떠올랐으며 이들의 전횡이 장원을 넘보지 않는 선에서 허용되었기 때문에 빠르게 봉건화를 촉진했다.
평양 시대 후기인 1068년부터는 섭관가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단군이 양위하여 상군으로 원정[2]을 실시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상군의 통치를 보조하기 위해 섭관가의 무사들과 맞설 수도 인근의 무사층이 떠오르게 되었으며, 이 때 뜬 무사집단이 개성 부여씨[3]와 운중 탁발씨[4]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