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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선만노
浦鮮萬奴
출생 미상
사망 1233년
국적 금나라
해영국 해영국
별칭 천태천왕(天泰天王)
해영진월경섭무대군(海瑛眞越境涉撫大君)
직업 무장 및 영주

포선만노(중국어: 浦鮮萬奴)는 금(金)나라 말의 무장 및 해영국의 영주였다. 처음에 금나라를 섬겨 야율유가(耶律留歌)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활약하다가 금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져 내부적인 분열과 파탄이 생겨나자 금나라에 예속되어 있던 거란족들이 대요국(大遼國)을 세우자 금나라의 요동선무사(搖動宣撫使)로 있던 그도 1215년, 동경(東京·요양(遼陽))을 도읍으로 하고 자립하여 대진(大眞)이라 국호를 정하여 대요국과 대립하였다.

대진을 건국한 이후

포선만노의 대진국 건립에 대한 소식을 들은 몽골의 칭기즈칸은 포선만노에게 요양왕(遼陽王)을 하사하여 대요국을 견제토록 하였고, 포선만노는 이에 몽골과 화맹하여 1217년, 고려를 거란의 침구(侵寇)에서 구한다는 구실로 고려병과 연합하여 거란의 여러 성을 쳐부수고 강동성(江東城)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갈수록 몽골과 대립하였으며 고려 북부를 농락하면서 약탈을 일삼자 1233년에 몽골군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에 포선만노는 같은 민족이 세운 국가로 여기던 해영국[1]의 군황에게 요양왕의 지위를 넘기고 목숨을 보전하기를 시도했다.

몽골의 침략 이후

해영국의 군황이었던 돈덕 군황(旽悳 君皇)은 직접 요양 땅으로 나아가 몽골의 부마국(駙馬國)이 될 것을 읊조렸다. 이에 오고타이 칸은 돈덕 군황에게 탄복하여 그에게 새로이 요양선무왕(遼陽宣撫王)의 칭호를 하사하였다. 돈덕 군황은 스스로 새로이 생긴 요양 땅을 다스릴 능력이 없음을 알고는 포선만노를 해영진월경섭무대군(海瑛眞越境涉撫大君)으로 임하여 요양 땅의 통치권을 다시 이양하였다.

포선만노는 이후 요양 땅을 다시 통치했으며, 여몽전쟁 시기에는 요양군(遼陽軍)을 차출하여 몽골군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끔 폭악해지고 거만해지자 이에 돈덕 군황이 오고타이 칸에게 포선만노의 처형을 논하였다. 결국 1240년, 몽골군에게 잡힌 뒤 부도(部都)였던 동경(東京)에서 처형되었다.

평가

개인적으로는 탈이 많은 인물이었으나, 해영국이 만주 지역의 통치권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기에 동경, 지금의 화령직할시(和寧直轄市)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과 축제가 열리고 있다.

각주

  1. 해영국의 이민족을 구성하는 이들 중에는 말갈, 즉 여진족에서 귀화한 이들이 많았으며 많은 여진족들이 조정 정계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금(金)의 황제는 해영국의 군황(君皇)을 같은 동급의 지위로 대우하면서 화맹(和盟)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