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미국-멕시코 전쟁 (기계들의 유산)


Second N.U.S.A-Mexican War
2차 미국-멕시코 전쟁

오늘 아침, 나는 보았다. 한 무리의 침략자들을, 대통령께서 우리는 승리 아니면 죽음이라 선언하였고.
우리의 땅과 자원을 빼앗고 나라를 굶주리게 만든 간악한 위선자들에 맞서 최후의 한명까지 우리는 싸울것이며.
이 대투쟁은 승리의 증표로써 기억될것입니다.
멕시코인들이여 무기를 들고 일어나라!

죽음을 부정하는 문명은 인생을 부정함으로써 끝난다. - 옥타비오 파스



개요

1927년 일어난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분쟁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전쟁은 5개월만에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으며 당시 멕시코 대통령인 엘리아스 카예스도 처형되 라틴 아메리카의 반미 감정이 폭발하였으며 외교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미국 내부에서도 막대한 비판이 일며 1929년 대공황과 함께 공화민주당이 국민진보당한테 처음으로 정권을 빼앗기는 원인이 된다.

배경




1920년 멕시코 혁명에서 혁명군이 승리하고 1924년 농민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은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가 95%의 득표율로 멕시코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당시 멕시코는 미국이 멕시코 혁명에 개입하며 이전부터 유지하고 있던 멕시코 만과 북부 사막지대의 유전,자원 채굴권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미국의 기업들은 멕시코인들을 저임금 노동자로 부리며 착취하고 있었고 정치에도 크게 개입하고 있었다. 친미정당인 제도혁명당 출신이지만 반미 성향이 강했던 카예스는 자국내 반미 세력들을 결집 시키고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

1925년 신 미합중국 국영 석유공사의 멕시코 자산을 압류 하였고 군대를 보내 북부의 유전을 점거하게 된다. 내부적으로도 자국 기업을 지원하며 미국의 영향력을 낮추고 있었고 일본-멕시코 정상회담으로 미국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당연히 미국 정부도 이를 불편하게 보고있었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워런 G. 하딩은 초거대기업인 포드의 의견을 받아들여 멕시코를 다시 침공하고자 한다. 1926년 겨울, 카예스는 일본 해군을 포섭해 멕시코만의 유전을 점거하는 사태를 일으키고 미국은 즉각 모든것을 되돌려 놓으라는 하딩 각서라는 이름의 최후통첩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카예스는 이를 무사하게 된다.

전개




1927년 1월 1일 밤, 미군은 의회의 동의와 대통령의 선전포고도 없이 멕시코 국경을 넘으며 침공을 시작하게 되고 침공 5시간만에 수도 멕시코시티가 폭격 당하게 된다. 카예스는 남부의 툭스툴라쿠티에레스까지 대피하여 모든 멕시코인들은 끝까지 항전하라는 라디오 연설을 진행한다. 연설을 들은 시민들은 민병대를 결성했고, 심지어 카르텔까지 동참해 싸울것을 선언하며 자발적으로 모든 멕시코인들이 미국에 대항해 맞서 싸우기 시작했고 미군의 에상과 달리 2일만에 멕시코군이 사단 동원과 예비군 소집에 성공하며 본격적인 전투 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미군은 초반에 빠르게 주력을 섬멸하고 대통령을 생포해 전쟁을 끝내고자 했지만 격렬한 저항에 막혀 캘리포니아 반도도 점령하지 못한채 국경 100km 부근에섬 막히게 된다. 결국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의 주방위군, 후방의 병력들까지 동원한 다음 대규모 포격과 공습을 진행하게 된다. 멕시코시티 대공습으로 20만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사망했고 학살등 비인간적인 행위와 동의없는 선전포고가 언론에 의해 폭로되며 미국 국민은 물론 전세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평소 멕시코와 우호관계를 가지던 일본이 대량의 무기를 지원해줬고 독일과 소련은 군사고문을 파견해줬다.

하지만 미국도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하며 진격하는곳 앞의 존재하는 모든것들을 파괴하며 진격해오고 있었고 2월에는 국경에 있는 모든 주들이 함락되고 베라쿠르즈와 아카풀코에 해병대가 상륙하게 된다. 1달동안 100만명이 넘는 멕시코인이 사망했고 전황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미국 본토에서도 반전 시위가 일어났지만 하딩은 강경진압으로 강제해산 시켜버린다.


2월 말이 되며 멕시코 주방위군이 본격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100만이 넘는 주방위군중 미군의 화학전으로 70만이 넘는 병력이 사망했고 시날로아 주방위군은 아예 전멸해버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멕시코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는데 카예스 대통령은 사망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선에까지 찾아가 장병들을 격려하였으며 400만명이 넘는 대규모의 민병대가 결성되었다.

3월에 들어서 멕시코시티 코앞으 케레타롤를 수복하는등 미군한테 반격을 가하기도 하였지만 미국은 라인베커 작전으로 멕시코 전역에 대규모 폭격을 날리고 있었고 이 작전 1번에 300만톤이 넘는 소이탄과 집속탄이 사용되었다. 3월 29일, 미군의 전차가 멕시코시티에 진입했고 정규군이 전멸한 상황속에서 민병대가 끝까지 저항했지만 멕시코시티는 함락되었고 탈출하던 카예스도 잡히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멕시코 군대들의 지휘채계는 완전히 무너졌고 민병대들은 산악과 정글,도시로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진행하지만 1달간 이어진 미군의 대토벌 끝에 남아있던 멕시코 민병대와 지도부도 모두 항복하며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결과와 영향

1927년 6월 23일 카예스는 텍사스로 압송되었고 그곳에서 처형되 시체는사막 어딘가에 버려지게 되지만 멕시코인들에게 영웅으로 기억되었고. 미국은 남아있던 멕시코 정부인사들과 보여주기식 협상으로 댈러스 협상을 채결하며 멕시코에 대한 이권을 다시 원상복귀 시킨다. 이 전쟁으로 미국은 막대한 국제적 비난을 듣게되었고 아예 직접적으로 멕시코를 지원햇던 일본,독일,소련은 미국과 단교하기도 하였으며 후임으로 들어온 찰스 커티스 행정부에 대한 지지율도 취임 한달만에 10%대로 추락하기도 하였다.

총 500만명이 넘는 멕시코인이 사망하였고 미군도 20만명 넘게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