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고어 239인 (44.3%)
(55.7%) 301인 부시
1996년 11월 5일
1996 대선
2000년 11월 7일
2000 대선
2004년 11월 2일
2004 대선
투표율 51.3%
투표자 119,502,182표
선거일시 2000년 11월 7일 5시 ~ 8일 6시 (UST)
선거 결과
후보 민주당
대통령
앨 고어
부통령
조 리버먼
공화당
대통령
조지 W. 부시
부통령
딕 체니
선거인단
239인 301
전국득표
48.6%
58,040,401표
48.1%
57,497,634표
 대통령 당선인
부통령 당선인  
공화당
 조지 W. 부시
딕 체니  

2000년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2000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는 2000년 11월 7일 실시된 미국의 54번째 대통령 선거이다. 텍사스 주지사이자 41대 대통령의 장남인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현직 민주당 부통령 앨 고어를 꺾고 당선되었다. 지난 1972년 이후 처음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자가 대중투표에서 패배한 선거이자, 궁극적으로 결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선거 중 하나였다.[1]

현직 빌 클린턴 대통령은 3선에 도전할 자격이 없었고, 고어는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의 도전을 물리치고 비교적 쉽게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었다. 부시는 공화당 후보 지명에 있어서 일찍부터 가장 인기있는 후보로 여겨졌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의 경쟁적인 프라이머리에도 불구하고, 슈퍼 화요일에 후보 지명에 필요한 수를 확보했다. 부시는 딕 체니 전 국방장관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했고, 고어는 조 리버먼 상원의원을 선택했다.

두 후보는 주로 예산의 운용, 감세와 사회보장 정책의 개혁과 같은 국내 문제에 중점을 두고 논쟁을 벌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교 정책을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이 있었기 때문에, 고어는 클린턴과의 합동 선거운동을 피했다. 공화당은 클린턴의 무분별함을 비난했고, 고어는 부시의 경험 부족을 비판했다. 선거 당일 밤, 사우스코리아 주의 선거인단을 누가 가져갈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승자가 가려지지 않았다. 사우스코리아에서 부시는 너무 적은 득표차로 승리했기 때문에 주법에 따라 재검표를 실시했고, 한 달 간의 법적 공방을 벌였다. 대법원이 부시가 승리했다고 판결하면서, 부시 대 고어 재검표는 끝났다.

재검표가 끝난 부시는 사우스코리아에서 1,128표 차로 승리해 불과 0.008%p의 격차를 기록했다. 사우스코리아의 재검표와 소송은 선거 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궁극적으로 부시는 고어가 542,767표를 더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01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선거에서 승리했다. 부시는 1996년 민주당에 투표했던 아칸소, 애리조나, 플로리다, 켄터키, 루이지애나, 미주리, 네바다, 뉴햄프셔, 오하이오,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사우스코리아 주에서 승리했다.

배경

후보

민주당

민주당 (51주)
민주당 (51주)
2000년 민주당 지명 후보
앨 고어
Al Gore
조 리버먼
Joe Lieberman
대통령 후보 부통령 후보
제45대
미합중국 부통령
(1993-2001)
미국 상원의원(코네티컷)
(1989-2013)

공화당

공화당 (51주)
공화당 (51주)
2000년 공화당 지명 후보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
딕 체니
Dick Cheney
대통령 후보 부통령 후보
제46대
텍사스 주지사
(1995-2000)
제17대
국방부 장관
(1989-1993)

선거운동

토론

결과

사우스코리아 재검표

선거결과

둘러보기

각주

  1. 다른 하나는 당연히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이쪽은 선거인단이 불과 2명 차이였는데, 대통령이 선거기간 야당을 도청한 것으로 드러나 선거결과에 대한 논란이 끊임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공화당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