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도시철도 1호선 부탄 가스 테러 사건 Incheon Metro Line 1 Butane Gas Terror Incide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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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 | 2030년 10월 3일 오후 4시 30분 |
유형 | 폭발물 테러 |
범인 | 북부 한반도 기술개혁위원회 |
장소 |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인천대입구역 |
탑승인원 | 983명 |
피해 | 사망 94명 부상 101명 |
사고열차 | 인천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 #1002-1[1] |
검단역 출발 송도달빛축제공원역 종착 |
개요
2030년 10월 3일, 반정부단체 북부 한반도 기술개혁위원회에 의해 발생한 폭발물 테러 사건. 검단역에서 출발하여 송도달빛축제공원역에 종착하던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전동차에서 발생하였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대한민국 최악의 철도 참사로 꼽히며, 이 사고로 인해서 수도권 주요 역에서 유류품 검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사건의 진행
북부 한반도 기술개혁위원회 소속의 30대 남성 김민혁은 부탄가스 통 두 캔과 라이터 하나를 소지하고 있던 검정색 가방에 담아 작전역에서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열차에 탑승했다.
- 15시 59분, 테러범 김민혁이 테크노파크역에서 하차하여 인근의 편의점을 방문하여 맥주 한 캔을 구매하였다. 이후 다시 열차에 승차하기까지 20분간의 뜸을 들이는데, 그 사이 북부 한반도 기술개혁위원회와 통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 16시 22분, 테러범은 다시 테크노파크역에서 승차하여 송도달빛축제공원행 1002-1열차에 탑승하였다.
- 16시 30분, 송도달빛축제공원행 1002-1 열차가 지식정보단지역을 출발하였다. 열차가 테크노파크역에 가까워지자 김민혁은 두개의 부탄가스 캔 중 하나에 소지하고 있던 송곳으로 구멍을 뚫은 후, 자신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 부탄가스 통을 던졌다. 그 후 김민혁은 "일자리가 빼앗기지 않도록 대비하라!"고 외치면서 가지고 있던 라이터에 불을 붙여 부탄가스통에 붙였다. 후에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김민혁은 열차에서 테러를 저지른 후 환승통로를 통해 이동해 GTX-B 송도역에서도 동일한 범행을 저지를 계획이었다고 한다.
- 16시 31분, 기관사가 테러 발생 사실을 알려 승객들에게 즉시 대피를 지시했다. 신송119안전센터에 화재 사실이 신고되었다.
승객의 대피가 지연된 가장 큰 원인은 스크린도어로, 기관사와 역무원의 대처는 훌륭했으나, 스크린도어의 광고판 부분이 탈출을 막아 승객의 대피가 지연되었다. 이로 인해 스크린도어의 화재 시 문제점 논란이 크게 제기되었다.
- 16시 32분, 인천대입구역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화재 사실을 보고하였고, 종합사령실에서는 지식정보단지역에 정차하여 있던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열차에 진입 금지를 지시하였다.
- 16시 35분, 소방 인력이 도착하였다. 순간발화현상의 우려에 쉽게 화재를 진압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17시 20분, 인천송도소방서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 18시 16분,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었다.
결과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와 달리 종합사령실, 역무원, 기관사 모두의 대처가 훌륭하였으나, 스크린도어가 탈출을 막았을 뿐 아니라 화재가 크게 번져 안타깝게도 94명의 사망자와 3명의 실종자가 나왔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송도 구간이 삼 주일 동안 운행이 금지되었으며, 수습 이후에도 인천대입구역은 계속해서 무정차 통과 조치가 내려졌다.
사고 이후
방화범 및 증거인멸 혐의가 있던 몇 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이 사고로 그동안 한국 국민들은 무관심했던 러다이티즘 운동이 테러 운동으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북부 한반도 기술개혁위원회는 전 국민의 공분을 사게 된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과의 합동 작전으로 테러를 지시한 북부 한반도 기술개혁위원회 위원들이 구속, 기소되었다.
또한 스크린도어 안전성 논란이 제기되었으며, 고속열차 탑승 시 소지품 검사를 실시하자는 여론이 한 때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 사건을 추모하고자 시민단체에서는 '스마트폰 라이트 운동'을 펼쳤다. 러다이트와 라이트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해 러다이트 테러 운동에 대항하는 추모 운동으로, 매일 4시 30분마다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을 이용해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자발적 참여 부족으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날이 밝아 라이트가 보이지 않는 것은 덤.
여담
- 이 사건 이후 인천광역시에서는 119안전센터의 별칭을 10·3안전센터로 지정하였다.
- 일부 커뮤니티에서 이 사건을 두고 지역비하성 발언을 내뱉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각주
- ↑ 실존하지 않는 열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