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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트
4979년 7월 1일[1]
국가연합 지리 이벤트 단체 무역품 마법 테크 레벨 인류 언어
기여자 행동 강령 설정 표준 기여자 관리표준 디스코드[2] 네이버 카페[2]

이 문서에서는 사트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이벤트들에 대해서 서술한다. 사트의 전반적인 역사는 이 문서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1 3000년대 초반 자소크인 남하

자소크 국가연합이 결성되고 우훗 제도가 새로운 노선을 타면서 기존에 에비타겐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 자소크 국가연합의 사람들과 남하한 사건이다. 자소크 국가연합의 사람들은 에비타겐을 출발하여 하키엘러시아차르비스를 넘어 배를 타고 조소네스, 라시디까지 이르렀으며, 그 중의 일부는 아트리아 북부까지 이르렀고, 이후에 아트리아에서 정착해 살거나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바에 의하면 이때 이동하기 시작한 자소크 사람들이 무르무르섬네크로 문화를 이루어 사는 등의 새로운 생활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2 3109년 대파랑

파랑 기병대라고 불리는 수생정령의 유목민 기병대가 세계정복을 목표로 북메디아 대륙에서 결성된다. 이들의 진격 경로에서 북메디아 대륙의 수많은 국가들이 멸망한다. 북메디아의 대부분의 국가는 이때 없어지거나 이들에게 복종하게 된다. 이들은 북메디아의 전역을 지배했으며, 남메디아로 진출하려다 실패했다. 다행히도, 엘레르디 왕국과 구 셰르 반도,[3] 구오, 북메디아 서부 산맥, 아마자쿠라를 비롯한 몇개의 국가는 위치상의 이점으로 이들의 침공을 막아내거나 받지 아니했다.

3276년, 파랑 기병대북메디아남메디아를 잇는 해협의 공성전에 실패하고[4], 전투의 패배와 내부의 문제로 인해 와해되기 시작된다. 이후 20년간 파랑 기병대는 자신들이 짓밟았던 모든 국가에게 잔인할 정도로 보복공세를 받아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이때 몇개의 후신 기병단들이 살아남아 북메디아의 일부 국가가 되기도 한다.

파랑 기병대의 외곽을 맡고있던 분견대였던 레네 분견대는 도주중 자신들이 공격했었던[5] 고대 요정왕국인 엘레르디 왕국의 보호를 받아 현재의 셰르 반도에 정착하게 된다. 이것이 이렘나 철랑대의 모태가 되는 이렘나 기사단국이다.

3 3577년 HTC 통일

3577년 2월 5일 자소크 국가연합텔리아토스치흐하키엘러시아로 병합되어 통일된 사건이다.

4 4156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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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코리스 메타 · Sokoris META+
1회 2회 3회 4회 5회
일기장 주인 시메타시스 군사령관 - - -
사트 · 아이타쿠테 시니소 · 메타

4156년 전쟁은 시메타시스자소크 철학단에게 전쟁을 선포하여 시작되었다. 시메타시스는 건국 때부터 극지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러한 지리적 특성이 시메타시스에서 진행하는 여러 기술발전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시메타시스 측의 입장이었다. 시메타시스는 좀 더 따뜻한 지방의 지적(地的)자원이 필요했으며, 자소크와 전쟁을 하고 영토를 탈취하려고 했다.

자소크는 전쟁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당시의 시메타시스와는 하키엘러시아 국가연합을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안 직후 자소크 철학단의 행정부는 투타여르 데 자소크의 북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피난할 수 있도록 국가시설을 동원했고, 일반인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전쟁 초기에는 딜렌과 사시나 호수를 포함해 북서쪽 해안선을 따라서 파트라세타까지 쉽게 점령당했다. 자소크의 동쪽 지방은 사막이 많았기 때문에 시메타시스 군은 해안선을 따라 계속 남쪽으로 전진했으며, 자소크는 하키엘러시아가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자소크가 지키고자 한 곳은 하키엘러시아 뿐만이 아니다. 투타여르 데 자소크 최북단의 제로에서 진행하고 있는 극지방 연구단지는 자소크의 천문학 연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메타시스가 이곳을 점령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자소크군은 파트라세타 지역과 제로 지역에서 오랫동안 대치하게 되었다. 그동안 시메타시스는 사시나 호수 동쪽으로 진행해 왔으며, 동쪽 해안선에 닿기까지 6년이 걸렸다.

시메타시스 군이 동쪽 해안선에 닿자 자소크는 시메타시스를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이 테이블에서 시메타시스는 기술 개발을 위한 영토를 요구했으며, 자소크는 최대한의 영토와 극지 연구를 위한 연구단지 소유권을 주장했다. 이 협상은 마련되고 종료되기까지 1년 4개월정도가 소요되었으며, 마침내 4164년 8월 15일 국경선과 UMG를 체결하여 전쟁이 종전되었다.

이 전쟁으로 자소크 철학단에는 230만 명, 시메타시스에는 30만 명의 군사상자가 발생했고, 자소크 철학단의 5000만명이 피난, 이산 등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집계된다.

5 4308년 반란: 바란 혁명

4305년 경 부토니에 일대에서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남메디아 일대에서 부토니에-바란 전쟁 혹은 부토니에 내전으로 일컫고, 바란 자국에서는 기념하듯이 바란 혁명이라고 표기한다. 이 전쟁은 여러 관점이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왕실 계승의 당위성을 두고 일어난 왕위 전쟁이며 심층적으로는 바란 북부의 군벌들이 종용한 쿠데타로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의 전쟁 후 바란 측이 완전히 승리하면서 부토니에를 바란이 계승하게 된다. 이후 약 백 여년간 대대적인 바란의 국가 주도 산업이 육성되었고, 그로 인해 세스라인드 제철소바움베니치 전술작전부대 등이 탄생하게 된다.

6 4478년 바란-미세자리아 국경분쟁 및 바란 쿠데타, 바란-미세자리아 전쟁

4478년 6월, 바란미세자리아 연합 양국은 세자리아 강 유역의 지정된 중립지대를 놓고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45세기 경 부족들을 화합하여 세력의 확장과 성장을 주도하던 미세자리아는 오랜 역사로부터 바란에게 빼앗겼다고 인식하는 세자리아 강 유역을 두고 해당 지역을 자국에게 반납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해당 지역의 대다수 인구나 언어의[6] 미세자리아의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바란의 바움-베니치는 이에 대해서 일치 허락하지 않았고, 이에 대응한 미세자리아는 일부 병력들을 통해 국경에 있는 초소들을 향해 견인포를 사용함으로써 큰 문제로 번졌다.

그러나 이듬해 바란 왕정과 미세자리아 연합이 평화협정을 논의하였다. 군부에서는 반발이 있었으나 전쟁은 일단락되었고, 이로서 과거 북부군벌이었던 바움-베니치는 왕정에게 크게 분노했다. 결국 쿠데타가 일어나고, 쿠데타의 여파로 이어서 바란-미세자리아 전쟁까지 일어나 바란은 큰 충격에 빠진다. 자세한 것은 바란-미세자리아 전쟁 참고.

7 4580년(임시) 메펠라트리아 산업혁명

메펠라트리아에서 촉발된 산업혁명은 여러 국가들에게 폭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8 4605년 4월 15일, 바란-레프레누제 분쟁

9 4639년 에스라스타-바란 해전

10 각주

  1. 2022년 10월 2일 16시 48분 14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2.0 2.1 현재 제이위키에서는 비공개 상태
  3. 현재의 이렘나 반도
  4. 이들의 공세를 막아낸 국가는 후의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이 된다.
  5. 파랑 기병대는 3188년에 시작된 북부 해안 침공의 실패로 실리킬 숲과 구오 영내까지 진출할 수 없었다.
  6. 이 경우 바란과 미세자리아 모두 군벌의 영향에 따라 부토니에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지역어가 혼합되어 그 어감이 전혀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