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Coat of arms of Sireta.png
시레타 공화국역대 정권
시레타 왕국(1958 ~ 1974)의 역대 내각
1대 2대 3대
도미트 정권
(1974 ~ 1977)
위셔트 정권
(1977 ~ 1878)
잉글리시 정권
(1978 ~ 1978)
시레타 왕국(1978 ~ 1979)의 역대 내각
파일:Coat of arms of Sireta.png
잉글리시 정권
사모아어: Igilisi Puleaina
영어: English Regime
파일:Henry English.jpg
헨리 잉글리시의 모습
정권 정보
지도자 초대 헨리 잉글리시 내각 총리
(Henry English)
2대 짐 테리 내각 총리
(James Tery)
존속기간 1978년 4월 13일 ~ 1978년 4월 13일 (1시간 6분, 66분)
지지기반 마이크 볼저 소장의 공화국 제3군, 일부 공화국 지지파

잉글리시 정권(영어: English Regime)은 시레타 공화국 시기에 존립했던 정권이었다. 마이크 볼저 소장이 공화국 제3군을 이끌고 에이슬린 위셔트 정권을 붕괴시키면서 세워졌으나, 제니 아던이 이끄는 해방군에게 공화국 제3군이 패배하고 내각 관저가 포위되자, 짐 테리를 형식상의 위임 총리로 앞세우고는 정권 해산을 선언하면서 66분만에 붕괴되었다. 흔히들 66분 정권(66 minutes Regime)이라고 부른다.

정권의 성립

도미트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 정책과 무리한 국유화, 사회주의 체제로의 전환은 국민들의 대대적인 반발을 일으켰고, 결국 윌리엄 도미트 위원장이 관저에서 측근이었던 앨프리드 로하른에게 암살되어 정권이 붕괴되자, 시레타 최고위원회시레타 왕국의 국왕이었던 에이슬린 위셔트를 신임 총리로 앉힐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위셔트 정권을 강제로 수립시켰다. 사실상 정권의 운영자였던 조지 폭스 국무부 장관은 자본주의 체제로의 회귀를 약속하고 정권의 민주적 이양을 약속하였으나, 20년에 걸친 전제 군주 체제와 독재 정권에 신음하던 이들의 밀려드는 기대와 구 정권 지지자와 신 정권 지지자간의 갈등, 노동자들의 궐기로 인한 대규모 혼란을 겪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공화국군 군부 내에서도 구 정권과 신 정권의 지지를 두고 유혈 사태가 벌어지자, 상황을 지켜보던 마이크 볼저 소장은 공화국 제3군의 총지휘권을 이양받아 헨리 잉글리시 중령과 짐 테리 소령과 함께 쿠데타를 논의하였다. 특히 조지 폭스 장관이 민주 개혁을 약속하고서 지방자치제 및 양원제 실시, 군부에 대한 문인통제를 약속하면서 군부의 입지가 약해질 위기에 놓이자, 이들은 쿠데타를 실전에 옮겼고, 마침내 4월 13일 오후 12시경, 총리 관저를 향해서 전차를 이끌고 총구를 휘두르면서 위셔트 정권의 해산을 종용하였고, 갑작스런 쿠데타의 발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총리 친위대가 패배하자 조지 폭스는 위셔트 총리를 대신하여 해산을 발표했다.

마이클 볼저는 헨리 잉글리시와 짐 테리를 꼭두각시 정권의 허수아비로 만들기 위하여 군인으로서의 명예 퇴직을 수리하고 시레타 통일위원회를 구성하여 간접 선거를 통한 정권의 각각 총리 및 부총리로 선출하였다. 물론 마이클 볼저는 실질적인 국정 최고 기관이었던 시레타 통일위원회의 의장직을 역임하였다.

66분 천하

그러나 마이클 볼저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눈여겨 보고 있던 제니 아던 중장은 실제로 쿠데타가 발생하여 정권이 전복되자, 휘하의 공화국군들을 이끌고 해방군(Tagata Taoloto, Liberal Army)을 자처하고 수도에 주둔하던 제3군과의 시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1] 그러자 총리 관저가 포위될 위기에 처해버린 헨리 잉글리시는 총리로 취임한지 63분만에 짐 테리에게 위임하고서는 휘하의 소수 인력들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했고, 어떨결에 총리가 되버린 짐 테리는 2분간의 연설 이후 60초의 시간을 거쳐 정권 해산을 선언하면서 결론적으로 잉글리시 정권은 66분만에 몰락하였다.

정권 붕괴 이후

짐 테리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즉시 체포되었고 마이클 볼저 소장은 피지 공화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했으나, 출국 시도 중에 검거되어 체포되었다. 헨리 잉글리시의 경우는 시레타 섬 북부에 위치한 로두아타 섬(Roduata Island)으로 망명하였다가 3개월 만에 지역 주민의 신고로 검거되었다. 이후 정권의 가담자였던 주요 인사들과 제3군 소속 군부 인사들 역시 법정으로 넘겨지게 되었다.

제니 아던 중장은 민정 이양을 약속하고 입헌 군주정을 토대로 한 시레타 제2왕국을 재건설하였으나, 1년만에 그가 암살되고 조지 폭스 전임 장관 역시 개혁 과정에서 사고사 함에 따라 왕정을 이끌어 갈 구심점을 잃으면서 시레타 무정부 시대 (1979 ~ 1981)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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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제3군은 사실 공화국 정권에 반발하던 구 체제 인사들과 범죄자들을 편제시킨 오합지졸의 군대였기에 규율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시가지에 위치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상점가의 약탈을 시도했을 정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