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괴담의 원리 시리즈
1. 나를 흉내내는 것 #2. 그것은 삼행시를 모른다. #3. 행복한 우리집 #
독자 해석 및 추측

디시인사이드 나폴리탄 괴담 마이너 갤러리 모 유저가 작성한 나폴리탄 괴담 시리즈. 그전까진 나폴리탄에 관심도 없었고 뭘 읽어도 재미가 없었는데 이건 처음으로 감탄하며 시리즈 전부 다 읽었다. 읽고 또 읽고 읽고. 많은 사람들이 이 명작을 알았으면 해서 출처를 남기고 제이위키로 가져왔다. 평소 나폴리탄에 관심이 많던 사람들은 분명 좋아할 것이다.

원작자: ㅇㅇ(118.218) (디시인사이드 나폴리탄 괴담 마이너 갤러리 유저)

나를 흉내내는 것

1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얼핏 들린 것 같아서 나는 거칠게 헤드셋을 벗었다.
평소에는 옆방에서 누나가 부르는 소리도 안 들리는데, 왜 1층 부엌에서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소리는 이렇게 잘 들리는지.
일어나서 스트레칭 한 번 하고 문고리를 잡은 순간.
“곧 가요. 엄마!”
닫힌 문밖에서 내 목소리가 들린다.
다다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난다.
“…엄마….”
“오늘….”
엄마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말소리. 발밑에서 조금 작게 들린다.
나는 비틀었던 문고리를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놓았다.
1층으로 뛰어 내려간 무언가가 나인 척하고 있다.
2
어쩌지.
나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눈을 질끈 감고 고민했다.
나가봐야 할까.
혹시 누군가가 장난치는 걸까?
하지만 그건 정말 내 목소리였는데. 가끔 디스코드에서 다른 녀석 마이크로 들리는 진짜 내 목소리.
그리고 수상한 건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차가운 마루에 귀를 가져다 댄다.
“…학교에서…글쎄….”
“…손목….”
1층에서 도란도란한 가족들의 대화가 들린다.
녀석은 마치 나인 것처럼 내 가족들과 떠들고 있다.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 대화를 엿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귀를 아플 정도로 바닥에 바싹 붙인다.
“맞아….”
“…나는….”
우웅.
갑자기 주머니에서 느껴진 진동에 놀라서 입을 틀어막고 허리를 바싹 구부렸다.
진정하고 폰을 꺼내보니 우리 가족 단체 톡방에 메세지가 와 있었다.
[엄마 : 부엌에 있는 거 엄마 아니야. 엄마 지금 방 안에 있어.]
3
엄마도 엄마를 흉내내는 무언가를 인지하고 방에서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린 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부엌으로 나가 보기로 결정했다. 이런 괴상한 일을 겪는 게 나 뿐만이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이 내게 상당히 큰 용기가 되었다.
끽. 나는 방문을 열었다.
문이 끼익하고 열리는 소음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들렸다. 맨날 보던 하얀 벽과 [멍청이 출입금지]가 적힌 누나방 문이, 오늘따라 굉장히 낯설다.
심장이 쿵쿵 뛴다.
조용했기 때문이다.
고요하다.
방 안에 있을 때는 끊이지 않고 두런두런 들려오던 말소리가 문을 열자마자 뚝 끊겨서 그렇다.
나는 문득 그런 광경을 떠올린다.
가족끼리 모두 모여서 떠들다가 갑자기 아무도 없을 윗층에서 소리가 들린다. 말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문 아빠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쉿하고 모두를 조용히 시킨다.
그리고 식탁에 둘러앉은 모든 이들이 온 신경을 집중한다.
내 소리를 향해서.
나는 숨이 턱 막힌다.
피부에 찬바람이 닿아 한껏 오므라드는 것 같고 당장이라도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숨을 들이켜도 폐가 반 밖에 안 차는 것처럼 갑갑하고 어떻게든 이 순간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아아아아아!”
나는 될대로 대라는 식으로 괴성을 지르며 계단을 구르다시피 내려간다.
4
“아, 깜짝이야. 멍청아. 왜 갑자기 지랄인데?”
식탁 의자에 앉은 누나가 나를 보며 인상을 썼다.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그 옆에 앉아있던 엄마가 물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던 아빠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며 물었다.
엄마가 대답했다.
“네가 여기서 밥을 먹고 있었냐고? 뭔 소리하니, 얘는. 밥 먹자고 하니까 제일 먼저 뛰어왔으면서.”
누나가 킬킬대며 거들었다.
“멍청이. 먹다말고 화장실 급하다고 뛰어가더니 어디에 머리 부딪친 거 아니야?”
나는 계단 옆 화장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이 활짝 열린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하나 더 했다. 누나가 대답했다.
“엄마는 밥 먹다가 어디 안 갔다 왔냐고? 멍청아. 엄마가 너냐?”
나는 미소짓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다가, 폰을 꺼내서 가족 단톡방을 본다.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엄마와 나눈 톡이 모두 지워져 있다.
5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입맛이 없어서 밥은 먹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너무 조금 먹는 게 아니냐고 걱정했다.
하지만 난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알 길이 없어 가족들과 있고 싶지 않았다. 방문을 잠가버리고 헤드셋을 뒤집어 썼다.
귀신에 홀린 것이라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며 게임을 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창문 밖이 깜깜한 걸 보니 밤이다.
나는 헤드셋을 벗었다.
달칵.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달칵달칵.
무언가가 내 잠긴 방문을 열려고 한다.
“아빠. 방문이 잠겼어요.”
내 목소리로 우리 아빠한테 도움을 요청하면서.
6
나는 침대 아래로 숨었다.
문밖에 있는 것과 마주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직감 같은 게 아니다. 보다 실제적인 감각이다. 뜨겁게 끓고 있는 냄비 주변의 후끈한 공기를 느끼고, 저 냄비를 만지면 손을 다치겠구나 알게 되는 것에 가까운.
“아빠. 문이 잠겼어요.”
“그렇구나.”
“누가 안에서 찰칵하고 잠근 것처럼.”
“부술까?”
아빠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번갈아 들린다.
나는 혹시 몰라 벽에 닿을 때까지 몸을 밀어넣어 침대 아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숨었다.
꽝. 부서지는 소리.
문이 열렸다.
나를 흉내낸 그것의 하얀 발이 발목까지 보였다.
“고마워요. 아빠!”
그것은 문을 닫지 않아서 난 아빠의 두 발도 볼 수 있었다. 아빠의 발은 문앞을 조금 서성거리다가 계단 쪽으로 움직였다.
내 방은 문이 계단 방향으로 나있기 때문에 사람이 내 방을 바라보며 계단을 내려가면 점차 눈높이가 낮아져 침대 밑까지도 볼 수 있다.
그런 이치로 나는 계단 중간에 우두커니 선 아빠와 눈을 마주쳤다.
두려움에 젖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아빠가 돌연 크게 외쳤다.
“아들!”
“네. 아빠!”
그것이 대답했다.
“아빠가 항상 말했지! 괜히 집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거 마주치면 큰 일 난다!”
아빠는 엄청 큰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아빠가 언제요? 그리고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다 들려요.”
그것이 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알겠지! 아들! 꼭 명심해라! 마주치지 마! 나오지 마!”
하지만 아빠는 집이 떠나가라 같은 내용으로 몇 번 더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짜증을 내며 문을 닫았다.
문고리가 고장난 문은 완전히 닫혔다가 약간 밀려 나왔다. 나는 그 작은 틈으로 계단을 살폈으나 아빠는 그새 없어졌다.
“아빠도 참. 저게 무슨 말이야. 집에 이상한 것이 숨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장롱 안에, 책상 아래, 에어컨 뒤에, 침대 밑에. 냉장고 안에, 서랍에 고이 접혀서, 세탁기 안에, 거울 속에.”
그것이 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침대 위를 올라갔다가, 책상 위로 올라갔다가,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발을 넣어보기도 했다.
나는 새하얀 발이 뒷걸음질로 돌아다니는 걸 본다.
그것은 뒤로 걷는다.
7
꼬박 밤을 새웠다.
깜빡 졸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낼까봐 두려워서였다.
나는 문밖을 경계하며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그것은 학교 간다면서 아침에 나가버렸다. 귀를 바짝 바닥에 붙이고 부모님과 녀석이 함께 나가는 소리를 확실하게 들었다.
이 집에는 지금 누나와 나뿐이다.
나는 [멍청이 출입금지]라고 써있는 문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메세지를 보내보기로 한다.
[나 : 누나. 지금 어디야?]
까톡.
아래에서 메세지가 왔다는 알림이 들렸다.
나는 소리를 따라 거실로 내려갔다. 에어컨 뒤에 누나의 폰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걸 찾았다.
잠금화면을 열 순 없지만 화면 상단에 가장 최근에 온 메세지들이 있다.
[엄마 : 멍청이랑 같이 내려와. 밥 먹게.]
[아빠 : 지금 식탁에 앉아 있는 거 아빠 아니야.]
[멍청이 : 누나. 지금 어디야?]
8
나는 누나의 폰을 손에 쥐고 고민하다가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부모님 방에서 아빠의 골프채를 찾아 들고 누나 방문을 두드렸다.
“어?”
문을 연 누나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리고 입을 연다.
“재희 너 지금 뭐하는 건데?”
나는 골프채를 휘둘렀다.
9
며칠 후.
나는 카페에 앉아 있다.
오픈채팅을 통해 약속을 잡은 ‘괴담박사’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잠시 창밖을 구경하고 있으니 갈색 코트 차림의 깡마른 남성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재희씨 맞지요? 저 괴담박사입니다.”
“직접 체험한 괴담을 알려주면 돈을 주신다는 게 정말인가요?”
“그럼요. 그럼요.”
괴담박사는 씨익 웃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나는 그것들의 원리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실은 벌써 두 개나 알아냈죠. 당신과의 대화가 세 번째를 알아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원리. 원리라고요.”
내 마음이 조금 들뜬다. 나는 실제로 얼마 전 괴상한 것들의 원리를 알아내어 극복한 적이 있다.
“그러면 제 이야기가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나는 괴담박사에게 내가 이겨낸 끔찍한 시련에 대해 설명했다.
괴담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는, 이야기가 끝나자 박수를 짝 쳤다.
“돈을 드릴 순 없겠군요. 아쉽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내게 어떠한 영감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지만 돈 대신, 내가 간신히 알아낸 두 가지 원리를 알려드리지. 도움이 될 겁니다.”
“돈 주세요.”
“첫 번째 원리.”
“돈 달라고요.”
“항상 인간이 패배하고 괴담이 승리한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 진실을 깨닫는다. 두 번째 원리를 듣지도 않았는데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됐다. 이건 실제적인 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육감 혹은 직감의 그것이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서 세탁기 안을 들여다 보고, 누나 방 서랍을 열어 보고, 냉장고를 열어 봤다.
그렇구나.
나는 문이 활짝 열린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삼행시를 모른다.

행복한 우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