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괴담의 원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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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를 흉내내는 것 #2. 그것은 삼행시를 모른다. #3. 행복한 우리집 # |
독자 해석 및 추측 |
디시인사이드 나폴리탄 괴담 마이너 갤러리 모 유저가 작성한 나폴리탄 괴담 시리즈. 그전까진 나폴리탄에 관심도 없었고 뭘 읽어도 재미가 없었는데 이건 처음으로 감탄하며 시리즈 전부 다 읽었다. 읽고 또 읽고 읽고. 많은 사람들이 이 명작을 알았으면 해서 출처를 남기고 제이위키로 가져왔다. 평소 나폴리탄에 관심이 많던 사람들은 분명 좋아할 것이다.
원작자: ㅇㅇ(118.218) (디시인사이드 나폴리탄 괴담 마이너 갤러리 유저)
시리즈 목록
나를 흉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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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흉내내는 것나를 흉내내는 것나를 흉내내는 것나를 흉내내는 것
1 -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얼핏 들린 것 같아서 나는 거칠게 헤드셋을 벗었다.
- 평소에는 옆방에서 누나가 부르는 소리도 안 들리는데, 왜 1층 부엌에서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소리는 이렇게 잘 들리는지.
- 일어나서 스트레칭 한 번 하고 문고리를 잡은 순간.
- “곧 가요. 엄마!”
- 닫힌 문밖에서 내 목소리가 들린다.
- 다다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난다.
- “…엄마….”
- “오늘….”
- 엄마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말소리. 발밑에서 조금 작게 들린다.
- 나는 비틀었던 문고리를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놓았다.
- 1층으로 뛰어 내려간 무언가가 나인 척하고 있다.
2 - 어쩌지.
- 나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눈을 질끈 감고 고민했다.
- 나가봐야 할까.
- 혹시 누군가가 장난치는 걸까?
- 하지만 그건 정말 내 목소리였는데. 가끔 디스코드에서 다른 녀석 마이크로 들리는 진짜 내 목소리.
- 그리고 수상한 건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차가운 마루에 귀를 가져다 댄다.
- “…학교에서…글쎄….”
- “…손목….”
- 1층에서 도란도란한 가족들의 대화가 들린다.
- 녀석은 마치 나인 것처럼 내 가족들과 떠들고 있다.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 대화를 엿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귀를 아플 정도로 바닥에 바싹 붙인다.
- “맞아….”
- “…나는….”
- 우웅.
- 갑자기 주머니에서 느껴진 진동에 놀라서 입을 틀어막고 허리를 바싹 구부렸다.
- 진정하고 폰을 꺼내보니 우리 가족 단체 톡방에 메세지가 와 있었다.
- [엄마 : 부엌에 있는 거 엄마 아니야. 엄마 지금 방 안에 있어.]
3 - 엄마도 엄마를 흉내내는 무언가를 인지하고 방에서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 우린 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부엌으로 나가 보기로 결정했다. 이런 괴상한 일을 겪는 게 나 뿐만이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이 내게 상당히 큰 용기가 되었다.
- 끽. 나는 방문을 열었다.
- 문이 끼익하고 열리는 소음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들렸다. 맨날 보던 하얀 벽과 [멍청이 출입금지]가 적힌 누나방 문이, 오늘따라 굉장히 낯설다.
- 심장이 쿵쿵 뛴다.
- 조용했기 때문이다.
- 고요하다.
- 방 안에 있을 때는 끊이지 않고 두런두런 들려오던 말소리가 문을 열자마자 뚝 끊겨서 그렇다.
- 나는 문득 그런 광경을 떠올린다.
- 가족끼리 모두 모여서 떠들다가 갑자기 아무도 없을 윗층에서 소리가 들린다. 말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문 아빠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쉿하고 모두를 조용히 시킨다.
- 그리고 식탁에 둘러앉은 모든 이들이 온 신경을 집중한다.
- 내 소리를 향해서.
- 나는 숨이 턱 막힌다.
- 피부에 찬바람이 닿아 한껏 오므라드는 것 같고 당장이라도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숨을 들이켜도 폐가 반 밖에 안 차는 것처럼 갑갑하고 어떻게든 이 순간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 “아아아아아!”
- 나는 될대로 대라는 식으로 괴성을 지르며 계단을 구르다시피 내려간다.
4 - “아, 깜짝이야. 멍청아. 왜 갑자기 지랄인데?”
- 식탁 의자에 앉은 누나가 나를 보며 인상을 썼다.
-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 그 옆에 앉아있던 엄마가 물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던 아빠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 나는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며 물었다.
- 엄마가 대답했다.
- “네가 여기서 밥을 먹고 있었냐고? 뭔 소리하니, 얘는. 밥 먹자고 하니까 제일 먼저 뛰어왔으면서.”
- 누나가 킬킬대며 거들었다.
- “멍청이. 먹다말고 화장실 급하다고 뛰어가더니 어디에 머리 부딪친 거 아니야?”
- 나는 계단 옆 화장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문이 활짝 열린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하나 더 했다. 누나가 대답했다.
- “엄마는 밥 먹다가 어디 안 갔다 왔냐고? 멍청아. 엄마가 너냐?”
- 나는 미소짓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다가, 폰을 꺼내서 가족 단톡방을 본다.
-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 엄마와 나눈 톡이 모두 지워져 있다.
5 -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 입맛이 없어서 밥은 먹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너무 조금 먹는 게 아니냐고 걱정했다.
- 하지만 난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알 길이 없어 가족들과 있고 싶지 않았다. 방문을 잠가버리고 헤드셋을 뒤집어 썼다.
- 귀신에 홀린 것이라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며 게임을 킨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 창문 밖이 깜깜한 걸 보니 밤이다.
- 나는 헤드셋을 벗었다.
- 달칵.
-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 달칵달칵.
- 무언가가 내 잠긴 방문을 열려고 한다.
- “아빠. 방문이 잠겼어요.”
- 내 목소리로 우리 아빠한테 도움을 요청하면서.
6 - 나는 침대 아래로 숨었다.
- 문밖에 있는 것과 마주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직감 같은 게 아니다. 보다 실제적인 감각이다. 뜨겁게 끓고 있는 냄비 주변의 후끈한 공기를 느끼고, 저 냄비를 만지면 손을 다치겠구나 알게 되는 것에 가까운.
- “아빠. 문이 잠겼어요.”
- “그렇구나.”
- “누가 안에서 찰칵하고 잠근 것처럼.”
- “부술까?”
- 아빠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번갈아 들린다.
- 나는 혹시 몰라 벽에 닿을 때까지 몸을 밀어넣어 침대 아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숨었다.
- 꽝. 부서지는 소리.
- 문이 열렸다.
- 나를 흉내낸 그것의 하얀 발이 발목까지 보였다.
- “고마워요. 아빠!”
- 그것은 문을 닫지 않아서 난 아빠의 두 발도 볼 수 있었다. 아빠의 발은 문앞을 조금 서성거리다가 계단 쪽으로 움직였다.
- 내 방은 문이 계단 방향으로 나있기 때문에 사람이 내 방을 바라보며 계단을 내려가면 점차 눈높이가 낮아져 침대 밑까지도 볼 수 있다.
- 그런 이치로 나는 계단 중간에 우두커니 선 아빠와 눈을 마주쳤다.
- 두려움에 젖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아빠가 돌연 크게 외쳤다.
- “아들!”
- “네. 아빠!”
- 그것이 대답했다.
- “아빠가 항상 말했지! 괜히 집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거 마주치면 큰 일 난다!”
- 아빠는 엄청 큰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 “아빠가 언제요? 그리고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다 들려요.”
- 그것이 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 “알겠지! 아들! 꼭 명심해라! 마주치지 마! 나오지 마!”
- 하지만 아빠는 집이 떠나가라 같은 내용으로 몇 번 더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짜증을 내며 문을 닫았다.
- 문고리가 고장난 문은 완전히 닫혔다가 약간 밀려 나왔다. 나는 그 작은 틈으로 계단을 살폈으나 아빠는 그새 없어졌다.
- “아빠도 참. 저게 무슨 말이야. 집에 이상한 것이 숨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장롱 안에, 책상 아래, 에어컨 뒤에, 침대 밑에. 냉장고 안에, 서랍에 고이 접혀서, 세탁기 안에, 거울 속에.”
- 그것이 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침대 위를 올라갔다가, 책상 위로 올라갔다가,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발을 넣어보기도 했다.
- 나는 새하얀 발이 뒷걸음질로 돌아다니는 걸 본다.
- 그것은 뒤로 걷는다.
7 - 꼬박 밤을 새웠다.
- 깜빡 졸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낼까봐 두려워서였다.
- 나는 문밖을 경계하며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 그것은 학교 간다면서 아침에 나가버렸다. 귀를 바짝 바닥에 붙이고 부모님과 녀석이 함께 나가는 소리를 확실하게 들었다.
- 이 집에는 지금 누나와 나뿐이다.
- 나는 [멍청이 출입금지]라고 써있는 문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메세지를 보내보기로 한다.
- [나 : 누나. 지금 어디야?]
- 까톡.
- 아래에서 메세지가 왔다는 알림이 들렸다.
- 나는 소리를 따라 거실로 내려갔다. 에어컨 뒤에 누나의 폰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걸 찾았다.
- 잠금화면을 열 순 없지만 화면 상단에 가장 최근에 온 메세지들이 있다.
- [엄마 : 멍청이랑 같이 내려와. 밥 먹게.]
- [아빠 : 지금 식탁에 앉아 있는 거 아빠 아니야.]
- [멍청이 : 누나. 지금 어디야?]
8 - 나는 누나의 폰을 손에 쥐고 고민하다가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부모님 방에서 아빠의 골프채를 찾아 들고 누나 방문을 두드렸다.
- “어?”
- 문을 연 누나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리고 입을 연다.
- “재희 너 지금 뭐하는 건데?”
- 나는 골프채를 휘둘렀다.
9 - 며칠 후.
- 나는 카페에 앉아 있다.
- 오픈채팅을 통해 약속을 잡은 ‘괴담박사’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 잠시 창밖을 구경하고 있으니 갈색 코트 차림의 깡마른 남성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 “재희씨 맞지요? 저 괴담박사입니다.”
- “직접 체험한 괴담을 알려주면 돈을 주신다는 게 정말인가요?”
- “그럼요. 그럼요.”
- 괴담박사는 씨익 웃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 “나는 그것들의 원리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실은 벌써 두 개나 알아냈죠. 당신과의 대화가 세 번째를 알아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원리. 원리라고요.”
- 내 마음이 조금 들뜬다. 나는 실제로 얼마 전 괴상한 것들의 원리를 알아내어 극복한 적이 있다.
- “그러면 제 이야기가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 나는 괴담박사에게 내가 이겨낸 끔찍한 시련에 대해 설명했다.
- 괴담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는, 이야기가 끝나자 박수를 짝 쳤다.
- “돈을 드릴 순 없겠군요. 아쉽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내게 어떠한 영감도 주지 못했습니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 “하지만 돈 대신, 내가 간신히 알아낸 두 가지 원리를 알려드리지. 도움이 될 겁니다.”
- “돈 주세요.”
- “첫 번째 원리.”
- “돈 달라고요.”
- “항상 인간이 패배하고 괴담이 승리한다.”
- 나는 거기까지 듣고 진실을 깨닫는다. 두 번째 원리를 듣지도 않았는데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됐다. 이건 실제적인 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육감 혹은 직감의 그것이다.
- 나는 집으로 달려가서 세탁기 안을 들여다 보고, 누나 방 서랍을 열어 보고, 냉장고를 열어 봤다.
- 그렇구나.
- 나는 문이 활짝 열린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삼행시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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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은 삼행시를 모른다.그것은 삼행시를 모른다.그것은 삼행시를 모른다.그것은 삼행시를 모른다.
1 - [방송 :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
- 에브리 파크 아파트 101동 곳곳의 스피커가 잡음과 함께 울렸다.
- [방송 : 당장 귀가하시고, 절대 집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밖으로 나오거나 문을 열지 마십시오.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 나는 친구들과 아파트 옥상에서 망원경을 설치하다가 그 이상한 방송을 들었다.
- 우리 넷은 서로를 보며 뭔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웃었다.
- 잠시 후.
- 다다다닥.
- 계단과 연결된 옥상 문 안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 발소리는 점점 커졌고, 다급한 숨소리와 허둥거리며 벽을 치는 소리, 그리고 마침내.
- 쿵쿵!
- [누군가 : 저기요! 거기 사람 있죠? 열어줘요! 빨리! 문 좀 열어봐요!]
- 별 구경을 방해받지 않으려고 미리 잠궈둔 옥상문을 누군가가 두드린다.
- [누군가 : 제발요. 제발. 제발. 부탁합니다. 와요…. 저 죽으면 안 돼요….]
- 문을 마구 때리고 긁고 문고리를 힘껏 비트는 소리, 절규.
- 그 처절함에 나는 몸이 굳어서 친구들의 눈치만 살폈다. 친구들도 당혹스러운지 멀뚱히 서서 입을 여는 사람조차 없었다.
- [누군가 : 안 돼…. 안 돼….]
- 문을 긁는 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악을 지르는 괴성도 점차 줄어들 때.
- 다다다닥. 뛰는 소리.
- 달칵. 계단 창문 같은 걸 여는 소리.
- 잠시 정적. 그리고.
- 철퍽!
- 옥상문 반대편이 아니라, 아파트 아래에서 들려오는…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
- 나는 직감적으로 그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어서, 도무지 아래를 내려다 볼 수가 없었다.
- 용기 있게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려다 본 C는 눈을 질끈 감고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 결국 아직까지 구토를 하고 있는 C를 제외한 우리는 다 같이 내려다 보았다.
- 반 쯤 뭉개진 시체가 부서진 몸을 질질 끌고 다시 아파트 안으로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2
인터뷰- [남자 : 반갑습니다. 내가 바로 [공포특급]입니다.]
- 카페에서 따듯한 라떼를 시키고 앉아 있으니, 갈색 코트를 입은 깡마른 남성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 공포특급. 오픈채팅에서 우연히 보고 오늘 약속까지 잡은 닉네임이다.
- 나는 혹시 몰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나 : 정말 실제로 겪은 괴담을 말해주면 돈을 주십니까?]
- [남자 : 그럼요.]
- 남자는 손을 들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고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 [남자 : 나는 그것들의 원리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벌써 두 개나 알아냈지요. 당신의 이야기가 나를 세 번째로 인도해 줄 영감의 원천이길 바랍니다.]
- [나 : 원리……. 그렇군요.]
-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려보면, 그 때의 기억은 흐릿하고 안개가 잔뜩 껴있는 것처럼 갑갑하다.
- 나는 옆에 둔 가방에서 ‘에브리 파크 101동’이라고 적힌 종이 뭉치를 꺼냈다.
- 이것은 구멍이 엉성한 내 기억보다 더 선명하고 진한 기록이다.
- [나 : 저도 그것의 원리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 내 말에 공포특급이 입가에 웃음기를 지우며 눈을 반짝였다.
- [남자 : 무엇인가요?]
- [나 : 그것은 삼행시를 모른다.]
3 - 눈을 뜨자 보이는 건 텐트의 주황색 천장이다.
- 조금 몽롱한 채로 가만히 뾰족한 텐트 끝을 응시하고 있으니 서서히 무언가 떠오른다.
- 다 같이 밤새 별을 보자며 넷이 함께 옥상으로 올라왔고.
- 텐트와 망원경을 설치하는데 들린 그 기이한 방송.
- 그리고, 그 흉측한 장면.
- 끔찍한 밤이었다.
- 간헐적으로 찢어지는 비명이 들리고, 신나는 웃음소리도 들렸다.
- 가끔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는 듯 다른 소음보다 더 선명한 말소리도 들렸다. 열어주세요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소리. 그러나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금방 사라지곤 했다.
- D는 내 옆에서 사색이 되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 나는 D와 함께 텐트 밖으로 나갔다.
4
인터뷰- 공포특급은 내 말을 듣고는 고민하는 듯 눈썹을 찡그리다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두 손바닥을 비볐다.
- 그리고 주머니에서 막대기 같은 것을 꺼냈다.
- 막대기의 측면에 달린 버튼을 누른 남자는 그것을 주머니가 아니라 테이블 가운데에 두고는 입을 열었다.
- [남자 : 사행시…, 아니 삼행시라. 조금 의외군요.]
- [나 : 못 믿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들어보세요.]
- 나는 종이 뭉치 중 몇 장을 꺼내 눈에 가까이 대고 글자를 읽었다.
- [나 : 깨어난 우리는 다섯이 모여 서로의 몰골을 확인했다. 모두 잠을 설친 듯 개판이었다. 갑자기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동내에 울려퍼지고 관리사무소의 방송이 전해졌다.]
- 공포특급이 내 말을 끊으며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 [남자 : 실제로 방송이었나요? 아니면 환청?]
- [나 : 방송입니다.]
- 내 대답에 남자는 뭔가 만족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계속하라고 손사래를 쳤다.
- 나는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 [나 : 당장 집밖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스피커는 이렇게 말했다.]
- [남자 : 그것 참 기이하군요. 전날에는 나오지 말라고 하더니.]
5 - [A : 말이 다르잖아. 어떤 말을 믿어야 되지?]
- [D : 아니 애초에 저 방송이 정상일까? 밤에 그 웃음소리들 나만 들었어?]
- [C : 똑바로 들어보자, 일단.]
- 방송이 계속 됐다.
- [방송 : 관리비서실에서 알린다? 립니다. 방에 들어가든 말든입니다. 그렇습니까? 고마워요.]
-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아예 부서진 문장이 나열된다.
- [C : 똑똑한 사람이 저거 해석 좀 해봐.]
- [나 : 귀신 들려서 헛소리하는 게 분명해.]
- [B : 근데 여기 옥상에서 평생 있을 순 없어.]
- [C : 한 번 나가볼까?]
- [B : 나는 나가 봐야 된다고 생각해.]
- 모두 말렸지만 B는 한사코 나가보겠다고 했다.
- [B : 내가 아파트 밖으로 나가서 경찰 부를게. 나가면 전화도 제대로 되겠지. 이상한 웃음소리만 나는 게 아니라.]
- [C : 뇌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너 그걸 보고도 저기 밖에 나가겠다고?]
- [B : 갔다올게.]
-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던 B는 결국 옥상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A는 잽싸게 달려가서 옥상 문을 다시 잠갔다.
- 터벅. 터벅.
- B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
- 그러던 중 돌연 B의 잔뜩 날 선 목소리가 들린다.
- [B : 잠깐, 거기 누구야.]
- [B : 아, 당신이군요.]
- 하지만 곧장 B의 목소리에서 힘이 탁 풀리고, 반가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 [B : 반가워요. 어젠 미안했어요. 무서워서… 그러게요. 와, 내장이 참 빨갛네요. 부럽습니다. 먹어도 된다고요?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 그리고는 다다다닥 하고 무언가 계단을 뛰어 올라오더니, 건물 안쪽에서 옥상 문을 두드렸다.
- 똑. 똑.
- [B : 얘들아. 문 좀 열어봐. 꼭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
- [B : 얘들아? 거기 있는 거 알아. 열어보라니까?]
- 저 너머에 있는 B는 분명히 정상이 아니었다.
- 나는 친구들과 어깨를 벌벌 떨며 속삭였다.
- [C : 가볼까? B가 이상한데. 구해야 될지도 몰라.]
- [D : 미쳤어? 저 문 열면 우리 다 죽을 거야.]
- 쾅! 쾅!
- B는 문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 [나 : 열지 말자. 저건 더 이상 B가 아니야. 알겠지?]
- [C : 좋아. 동의해.]
- [A : 너무 끔찍해. 대체 왜 이런 일이….]
- [C : 아니 그러지마. 지금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해.]
- 그때, 다시금 방송이 들려왔다.
- [방송 : 집밖으로 나오면 즐겁습니다. 이는 테스트용 방송이니 무시해도 좋습니다. 현상을 설명하지 않아도 검열이 진행되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 [방송 : 확인했습니다.]
- 지지직. 지지직.
- 찢어지는 소음 사이로 방송이 계속 됐다.
- [방송 : 그것들은 삼행시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다시 이 방송이 들릴 때 귀를 기울여주세요.]
- 뚝, 하고 방송이 끊긴 옥상에는. 끼이익. 끼기긱. 끼긱.
- [B : 야! 개새끼들아! 이거 열라고! 씨발!]
- 옥상 문을 두드리다 지쳐서 손톱으로 박박 긁는 B의 절규만이 들리고 있었다.
6
인터뷰- [남자 : 것 참 기묘한 이야기입니다.]
- 남자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 [남자 : 은은하지만 지독한 무언가가 점점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 [나 : 우리 넷은 텐트 하나에서 다 같이 있기로 했다. 좁아서 편하게 누울 수도 없었지만 차라리 이게 나았다. 문 건너편의 B는 힘을 다 했는지 조용했다. 어쩌면 아까 아파트 아래에서 들린 철퍽 소리가 B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거기까지 읽고 나는 목이 타는 것 같아서 잠시 종이에서 눈을 떼고 커피를 마셨다.
- 공포특급이 재촉했다.
- [남자 : 다음은 어떻게 됐죠?]
- [나 : 다음은… 방송입니다.]
- [남자 : 알 수 없는 그 방송 말인가요?]
- [나 : 아니요….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건….]
- [남자 :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면 천천히 떠올리셔도 좋습니다.]
- 나는 잠시 심호흡하고 다시 종이를 들고 눈앞에 가져다댔다.
- 공포특급이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 [남자 : 있죠. 너무 힘들면 여기서 그만하셔도 됩니다.]
- [나 : 아뇨. 종이를 보고 읽으면 됩니다. 괜찮아요.]
- [남자 : 어지러우면 언제든 말을 멈추세요.]
7 - 지이이익.
- 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방송이 울려퍼졌다.
- [방송 :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 규칙 안내방송입니다. 그것들은 삼행시를 못합니다. 반드시 어디 기록해두시고 꼭 숙지하세요.]
- [방송 : 첫째, 나가세요. 집안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 [방송 : 둘째, 가다가 지치면 창문으로 뛰어내리세요.]
- [방송 : 셋째, 지옥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습니다.]
- [방송 : 넷째, 마음대로 걸어도 좋지만 관리사무소로 오는 걸 추천합니다.]
- [방송 : 다섯째, 새로 이사 왔다며 말을 거는 이를 쳐다보지 말고 도망치세요.]
- [방송 : 여섯째, 요괴를 퇴치한다는 어떤 미신도 효과가 없으니 시도하지 마세요.]
- A는 피곤한 얼굴로 폰에 방송 내용을 받아적고 있었다.
- 다들 방송에 귀를 한껏 기울이고 있다. 나는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피곤하여 후드의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 그래. 이럴 때 생존일지라도 기록해두자.
- 나는 폰을 들어 메모장 어플을 켰다.
- [방송 : 전 구간 검열 없음 확인. 이제 이 방송 내용이 반복되어 송출됩니다. 어디 기록하시고 꼭 생각하세요. 그것들은 삼행시를 못합니다.]
- 이후로 구린 스피커는 계속 규칙 안내방송만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기록한 A가 오랜만에 웃으며 다급히 손짓했다.
- 모두가 무릎으로 기어서 텐트 중앙의 폰을 보자, A가 우리에게 속삭였다.
- [A : 알아냈어! 삼행시라더니 이거였어. 모든 규칙의 첫 글자!]
- [C : 그게 무슨 말이야?]
- [A : 첫 글자만 다 모아봐.]
- 잠시 폰을 내려다보던 D가 중얼거렸다.
- [D : 나가지마새요.]
- [C : 거 이상한데? 첫 규칙이 나가세요잖아.]
- [A : 검열이라고 했잖아. 무언가가 방송을 검열하고 있는 거지. 저번에 그 다 깨진 방송처럼.]
- [D : 그러네. 하지만 그 검열하는 것은 삼행시를 모르니까 그것이….]
- C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 [C : 만족할 만한 내용으로 검열을 피하고, 진짜 메세지는 첫 글자로 준 거구나.]
- [A : 관리사무소에 저것들을 피해서 우릴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거야.]
- 나는 아주 약간의 희망을 품게 된 친구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다.
- 1일 차의 내 생존일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 우리는 넷이 별을 보러 옥상에 올라왔다.
- 밖에는 B가 있고, 이 텐트 안에는 나, A, C, D, 이렇게 넷이 있다.
- 우린 어느새 다섯이 됐는데 그것을 전혀 몰랐다.
-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끼어서 친구인 척 하고 있다.
8 - 나는 머리를 쥐어짜냈지만 누가 가짜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 다섯이 모두 내 기억에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 [C : 남은 물이 좀 있으니 절대 텐트 밖으로 나가지 말자.]
- [A : 나가지 말라고 했으니까.]
- [D : 그 와중에 물을 챙겼구나!]
- [C : 겨우 생각이 났어. 들어오기 직전에.]
- 저벅.
- 갑자기 텐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 속닥거리던 친구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 나도 숨을 급히 들이키고 엎드렸다.
- 저벅. 저벅.
- 텐트 밖에 무언가가 걸어다니고 있다.
- 맨발이 옥상 바닥을 밟는 듯 조금은 끈적한 발소리.
- 텐트의 주황색 천 너머에 희미한 그림자가 생겼다.
- 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휘날리는 왜소한 여자의 형상이다. 휘청거리고 절뚝거리는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커졌다. 그것이 다가오고 있다.
- [누군가 : 저기요….]
- 손가락이 텐트 문을 지그시 누르더니, 아래로 긁었다. 방수천에서 시익, 소리가 났다.
- 나와 친구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 [누군가 : 이것 좀 열어주세요. 저 배가 고파요. 제 아이도, 아이가 배고프대요.]
- 텐트를 손가락으로 긁으며 그 여자가 우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 여자는 텐트 천 곳곳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 [누군가 : 먹을 것 좀 나눠주세요. 굶었어요, 제 아이가. 제 아이만큼은.]
- 마치 손을 더듬어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 나는 순간 무언가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 거의 동시에 C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 팔을 쭉 뻗어서 텐트 문의 지퍼를 움켜쥐었다.
- 저 여자는 텐트 문을 열기 위해 지퍼를 찾고 있다.
- 나는 C의 옆으로 기어가 지퍼가 내려가지 않게 꽉 쥐었다.
- 거의 동시에 앙상하게 마른 손그림자도 바깥의 지퍼를 찾아서 콱 잡았다.
- 지퍼를 아래로 내리려는 힘이 느껴져서 C와 함께 위로 끌어당기며 버텼다.
- [누군가 : 어라, 왜, 왜 안 열리지. 저기요, 우리 애가 굶고 있어요. 아이만큼은.]
- 점점 아래로 내리는 힘이 강해진다. 이러다 지퍼가 못 버티고 부러지면 어쩌지?
- D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가방을 뒤져서 클립을 꺼냈다.
- C가 다급하게 외쳤다.
- [C : 줘!]
- D가 던진 클립을 받은 C가 그것으로 지퍼가 아닌 그 아래의 천을 꽉 집었다. 우리는 그 상태로 온 힘을 다해 버텼다.
- 그러자 문밖의 그림자가 갑자기 지퍼를 놓고 물러섰다.
- [누군가 : 어라. 잠시만요. 저기요. 필요 없어요. 여기 고기가 있네.]
- 우린 지퍼에 달라붙어서 눈으로 천에 비친 그림자를 끝까지 쫓았다.
- [누군가 : 등에 고기를 업고 다니면서 먹을 거를 찾았네. 진짜 나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 앙상한 그림자의 툭 튀어나온 부분이 떨어지더니, 그것은 뭔가를 주워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 [누군가 : 쩝쩝, 아이, 맛있어라. 와그작. 아작아작. 맛있어. 맛있다. 왜 이렇게 맛있지. 이거 무슨 고기지. 와작. 무슨 고기가 이렇게 맛있지?]
- 뭔가를 뼈째로 씹는 빠작, 빠작, 소리가 나고, 덩어리, 같은 것이 사방으로 튀었다.
- 지퍼를 쥐고 있던 D가 허겁지겁 빈 생수통을 찾아 들고 토악질을 했다.
- 길고 끔찍한 밤이었다.
- [누군가 : 배부르다! 배부르다! 어라? 애기 어디있지? 얘야, 어딨니. 우리 애기 보신 분….]
- 여자의 중얼거림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있었다.
9
인터뷰- [남자 : 재앙과도 같은 밤이었네요.]
- [나 : 그렇네요.]
- [남자 : 미친 여자는 다행히 아침이 되자 사라졌고요.]
- [나 : 해가 뜬 걸 확인하고 우린 텐트 밖으로 나왔다. 옥상문 근처에서는 여전히 B가 중얼거리는 들린다. 아직도 B는 거기에….]
- 남자가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 [남자 : 있었다…. B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 나는 이 남자가 자꾸 말을 끊어먹는 것이 조금 짜증났지만, 계속해서 읽었다.
- [나 : A는 자다가 뒤늦게 우리를 따라 나왔다. A는 새벽에 그 난리가 났음에도 자고 있었다. A에게 새벽의 일을 설명하자 너무 피곤해서 깊게 잔 것 같다며 사과했다. 나는 우리 사이에 우리가 아닌 것이 있음을 알고 있어서 A의 행동이 너무나도 수상했다.]
- [남자 : 어지간히도 수상하군요.]
- [나 : 일단 같이 모여 급하게 회의를 했다. 모두 더 이상 텐트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했다.]
- [남자 : 서로 말이 잘 통하네요, 끼어든 그것이 방해하지 않는 게 신기해요.]
10 - 우리는 옥상 바로 아래인 11층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 계획은 이렇다.
- 텐트를 고정하는 끈을 길게 연결해서 우리 몸에 묶고, 옥상 난간에서 뛰어내린다. 11층 창틀에 붙어서 공구로 창문을 깨버리고 안으로 진입한다.
- 집 안에서 무거운 가구 등에 끈을 묶어 고정한 뒤 모두가 차례대로 내려온다.
- 만약 안에 사람이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설명한다.
- 가장 어려운 처음 진입을 A가 하기로 했다.
- A는 어제 밤을 새지 않아서 체력이 가장 좋기도 했고, 본인이 미안하다며 자원했기 때문이다.
- [C : 서서 버티는 사람들이 처음에 잘 해줘야 된다.]
- [A : 준비 됐어.]
- 허리에 줄을 묶은 A는 난간에 앉은 채로 조금씩 엉덩이를 난간 밖으로 뺐다. 우리는 충격에 대비했다.
- 나는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의 찝찝함을 지우지 못했다.
- 그러던 중, 마침내 A의 몸이 난간 아래로 휙 떨어졌다.
- 우리는 몸을 뒤로 힘껏 당기며 한 번의 충격을 견디고, 다음 순간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 찢어질 듯한 괴성과 함께 저 아래에서 퍽! 하고 북이 터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 나는 망연자실해서 딸려 올라온 줄을 바라보았다.
- 그 끝은 마치 누군가가 공구로 자른 듯 반쯤 깔끔하게 잘려있었다.
11 - D는 반쯤 미쳐서 소리질렀다.
- [D : 누가 줄을 잘라놨어. 힘주는 순간 끊어질 정도로 잘라놨다고.]
- [C : 고 얘기 좀 그만해라.]
- C가 그런 D에게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 [D : 너도 봤잖아! 아니, 너냐? 너였냐, 새끼야?]
- [C :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라.]
- 나도 두 사람을 말리며 울적하게 거들었다.
- [나 : 줄 마지막으로 확인한 건 A야.]
- D는 할 말을 잃고 옥상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버렸다.
- 나는 내심 계속해서 A를 의심했다. A는 자기가 먼저 내려가겠다고 자원하고, 유리창을 깨기 위한 공구를 고르겠다며 공구상자를 뒤적거렸다.
- 그렇게 사고가 났고.
- 잘린 줄은 너무 짧아서 11층까지 닿지도 않게 됐다.
- 우린 옥상에 고립됐다. 줄을 잇느라 텐트도 해체해버린 옥상에.
- 나는 속이 갑갑하고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 대체 누굴까. 정말 죽어버린 A인가, C인가, D인가, 아니면 내가 미쳐버려서 저지른 일인가.
- 이런 고민이 의미는 있나.
- 이대로 밤이 오면 모든 게 끝인데.
- [C : 워어. 내려다보지마. A…가 기어 올라오고 있어.]
-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C가 진저리를 치며 경고했다.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나는 충동적으로 옥상 난간 위에 올랐다.
- [D : 잠깐! 뭐하는 거야!]
- 등 뒤로 D가 소리지르는 것이 들렸으나 나는 그대로 뛰었다.
- 줄이 없어도, 잘만 뛰어내리면.
- 잘만 뛰어내리면, 될 수도 있다.
- 저 둘과 함께 밤을 기다리는 그 1초 1초가 너무 답답하고 버티기 힘들어서, 나는 평소였다면 무서워서 절대 하지 못했을 도전을 했다.
- 몸이 확 아래로 당겨지는 동시에 등 뒤로 손을 휘두른다.
- 무언가가 기다란 봉 같은 게 잡히는 느낌이 들었을 때 주먹을 꽉 쥔다.
- 팔이 뽑혀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
- 나는 11층 난간에 매달렸다.
- 다행히 창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몸을 붙이고 난간을 타고 넘어 11층 베란다로 굴러떨어졌다.
- [나 : 하하. 하하하하. 하하.]
-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위에서 시끄럽게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나는 신나게 웃었다.
-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생의 아늑함이 비로소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12 - [방송 :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 규칙 안내방송입니다. 그것들은 삼행시를 못합니다. 반드시 어디 기록해두시고 꼭 숙지하세요.]
- [방송 : 첫째, 나가세요. 집안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 [방송 : 둘째, 가다가 지치면 창문으로 뛰어내리세요.]
- [방송 : 셋째, 지옥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습니다.]
- [방송 : 넷째, 마음대로 걸어도 좋지만 관리사무소로 오는 걸 추천합니다.]
- [방송 : 다섯째, 새로 이사 왔다며 말을 거는 이를 쳐다보지 말고 도망치세요.]
- [방송 : 여섯째, 요괴를 퇴치한다는 어떤 미신도 효과가 없으니 시도하지 마세요.]
- 먼지가 조금 쌓였지만 푹신한 침대에 누워 지겹게 반복되는 방송을 들으며 창밖을 내다 보았다.
- 옥상에서 내렸는지 조금 짧은 줄이 대롱대롱 흔들렸다.
- 마치 여기 연결해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 하지만 말이야.
- 저걸 당기려면 집밖으로 몸을 내밀어야 하는데?
- 친구들. 삼행시를 알고 있어?
- 방송에서 말하고 있어. 나가지마새요.
- 이게 내가 너희를 도와줄 수가 없는 이유야.
- 미안해. 나는 살고 싶어.
13
인터뷰- [나 : 끝…입니다.]
- 내가 종이를 내려놓자 남자가 내 손등을 토닥거렸다.
- [남자 : 모질게 독촉한 것 같아서 죄송하군요. 기억이 조금은 나십니까?]
- [나 : 네…. 이걸 읽으면 기억이 조금 납니다. 그 날, 나는 관리사무소에 앉아 있었어요.]
- 나는 에브리파크 아파트 101동 관리사무소 직원이었다.
- 그것들을 보고 황급히 안내 방송을 키는 순간 지옥이 시작됐다. 101동을 비추는 여러 대의 CCTV 화면들에 끔찍한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 나는 방송을 틀고 필사적으로 주민들에게 나오지 말라 권고했다.
- 하지만 막상 101동에 울려퍼지는 내용은 내가 말한 내용과 전혀 달랐다.
- [남자 : 른 셴의 명언이 생각나는군요. ‘행동하고 후회하라.’]
- [나 : 잘못된 방송을 듣고 나온 주민들은… 그들은 당했습니다. 나는 그걸 모두 지켜봐야만 했어요.]
- 그것은 방송을 망치는 것 외에 나를 더 지독하게 괴롭히는 방법을 찾아냈다.
- 관리사무소 복합기로 팩스가 오기 시작했다.
- 특히 조마조마하게 살피고 있던, 옥상 CCTV에 잡히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종이에 활자로 찍혀서 나오고 있었다.
- 하지만 그 비참한 기록은 오히려 내 마음에 어떤 불길을 지폈다.
-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 앉은 나는 방송을 망치는 녀석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 [남자 : 척하면 척이군요.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 테스트 방송을 미친듯이 되풀이하며 그것의 의도를 알아내고, 그것의 한계를 알아냈다.
- 그것이 삼행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 규칙 안내방송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나 : 그래요. 그것들은 삼행시를 몰라요. 나는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용한 겁니다.]
- 그래. 나는 결국 승리했다.
- 내 방송을 알아들은 주민들은 문을 잠그고 집 안에서 버티기 시작한 것이다.
- 그것은 화가 났는지 팩스로 옥상 청년들이 참혹한 일을 겪는 내용을 계속해서 보내왔으나, 나는 흔들리지 않고 방송을 계속 했다.
-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관리사무소로 찾아온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구출되었다.
- 나는 들것에 실려가면서도 옥상청년들의 이야기가 담긴 종이를 손에 꽉 쥐고 환호했다.
- [나 : 저는 저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지켜낸 겁니다.]
- 그렇게 말하며 공포특급과 눈을 마주쳤다. 남자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 그리고는 뜬금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 [남자 : 할아버지. 그거 아십니까? 저도 삼행시를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해진 단어로 문장을 만드는 것 말이에요. 그래서 종종 편법을 씁니다. 뜬금없이 문맥과 묘하게 안 맞는 표현을 하거나, 내가 원하는 단어가 나올 때 급하게 끼어들거나, 발음이 비슷하면 억지로 글자를 바꿔쓰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과 명언을 지어내죠.]
- 남자는 한참 전 테이블에 올려놨던 막대기를 집어 들더니, 잠깐 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 [남자 : 뿐……. 뿐이라…. 이야, 뿐은 정말 어려운 글자네요. 이것도 편법 중 하나입니다. 너무 어려운 글자라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써버리는 거죠. 어떠십니까?]
- 그리고는 막대기 옆에 있는 버튼을 꾹 누르더니 내게 내밀었다.
- [남자 : 녹음 종료. 휴! 이제 살 것 같네요. 아무튼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돈을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내가 알고있는 그것들의 두번째 원리를 가르쳐드리죠. 도움이 될 겁니다.]
- 내가 반사적으로 막대기, 아니 녹음기를 받자 남자가 신나게 박수를 짝짝 쳤다.
- [남자 : 자! 알려드렸습니다!]
- 공포특급은 그것으로 됐다는 듯 일어서서 코트자락을 툭툭 털더니 카운터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가락을 탁 튕기더니 등을 돌렸다.
- [남자 : 아, 참! 정말 마지막으로 또 하나 알려줄게요. 당신이 팩스로 받은 이야기 말입니다만. 거기도 있지 않았나요? 다급하게 말을 끊거나, 발음이 비슷한 글자를 억지로 쓰거나, 맥락에 묘하게 안 맞는 표현을 하거나 뭐 그런 친구 말이에요.]
- 그 말을 끝으로 공포특급은 정말 카페를 나가버렸다.
14 - 나는 녹음기를 계속 반복해서 틀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에브리 파크 아파트로 향했다.
- 폴리스 라인을 넘고 101동 마당으로 들어가자 음산한 안개가 끼고 공기가 칼칼해졌다.
- 마치 그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 101동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모든 집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 나는 아무 곳이나 들어가려다, 문득 생각을 바꿔서 11층으로 향했다.
- 11층의 집에 들어가 방안을 확인한 나는 들고 온 종이 뭉치를 한 번 더 읽었고, 듣지도 않은 첫 번째 원리가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 나는 문득 허탈해져서, 챙겨온 권총을 들어 나의 턱을 겨누었다.
행복한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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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설정 및 등장인물
- 그것
작중 발생하는 심령스럽고 기이한 현상, 또는 그 현상에서 활동하는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 '괴이'나 '괴담'이라고도 한다. 괴담박사가 말하는 세 가지 원리를 만족하는 존재로써 주로 인간과 대립하면서도 늘 인간의 우위에 있다. 인간을 죽이거나 잡아먹는 데에 적극적이다.
- 괴담의 원리
본 시리즈의 제목. '그것'에게 적용되는 세 가지[1] 원리로 괴담박사가 직접 연구하여 정의한 것들이다. 거의 절대적인 세계의 법칙 정도로 묘사되고 여겨져서 시리즈 등장인물 전부 이 원리를 거스르지 못했다.- 항상 인간이 패배하고 괴담이 승리한다.
1편에서 괴담박사가 직접 밝힌 첫째 원리. 무슨 짓을 해도 인간은 괴담에게 거스를 수 없음으로 이 시리즈의 절망적인 호러 분위기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이 늘 자신이 승리했다고 여겼다가 나중에는 그마저 괴담의 손아귀 안이었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전통이자 클리셰. - 사실 그것은 다 알고 있어 재미있어서 모른 척할 뿐[2]
2편에서 공포특급[3]이 녹음기에 녹음한 말들의 첫 글자로 알려진 둘째 원리. 2편의 주인공은 '그것'들이 삼행시를 못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규칙이라는 함정 속에 첫 글자만 모아 절대 나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숨겼었지만, 사실 '그것'들은 그 모든 메시지를 알고 있었고 하는 말마다 첫 글자를 모았을 때 오히려 주인공을 농락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위의 첫째 원리와도 어느 정도 이어진다. 1편의 가짜 재희도 아빠의 외침 이후로 장소들을 나열하는데, 그 장소들은 진짜 가족들이 숨어 있던 장소들이다. 즉, 이미 어디 숨어 있었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 항상 인간이 패배하고 괴담이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