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대역빌런2: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 만에하나 오시는 분들을 위한 필독 ==
== 만에하나 오시는 분들을 위한 필독 ==


여기는 대역빌런이 대역빌런 닉값할겸 각종 대역망상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흥미로운 주제를 같이 만들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실험작들 전용 연습장입니다.


합작/합작예정작들, 혹은 실험작들 전용 연습장입니다.
== 신 해동성국 ==


== 신 남북국시대(가칭) ==
* 만약 고려가 여진정벌에 성공하여 발해의 영토를 되찾았다면?
대역빌런의 또다른 시도가 될 세계관으로, 현실에 기반한? 뇌절세계관이 될 예정이다. 단편이 될 가능성이 높다.
# 남한이 6.25 전쟁때 북진통일을 했다면?
# 6.25전쟁에서 패전한 북한이 만주로 망명했다가 중소전쟁을 틈타서 조민공을 간도에서 재건국했다면?
(창작자 본인은 김돼지 3대를 극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다 못해 반서방 성향 네티즌과 키배까지 떴습니다)
=== 북진통일과 간도로의 도피 ===
이범석은 국방부 장관직을 내려놓지 않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지연전을 통해 북한군을 지치게 만들었고, 대전에서 한타가 성공,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하여 역으로 38선 위로 북진한다. 중공군은 미국의 압력과 소련의 만류에도 무리하게 참전을 감행하다 과거 수나라시절 대패했던 청천강 바로 그곳에서 인민지원군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는다. 9월의 최종공세로 강계와 신의주등이 수복되자 북한은 간도로 도피하면서 1951년 10월 3일 한국전쟁은 북진통일로 막을 내린다.
=== 8월 종파사건 ===
=== 중소결렬과 중소전쟁 ===
=== 의지의 로동당 ===


== 대안냉전 세계관(가칭) ==
여진정벌 이전에 친고려파 동여진족 등을 포섭, 만반의 준비를 한 끝에 공험진 전투에서 승리하고 갈라수 전투에서 고려의 장수 척춘경이 여진의 장수 사묘아리를 전사시키면서 여진족은 고려에게 완전히 복속된다. 1112년 요나라의 암군 천조제의 경고가 고려에 의해 무시당하자 1114년 고려를 침공하면서 제4차 여요전쟁이 발발한다. 친고려파 여진족들의 도움과 여러 명장들의 활약 덕택에 납림하와 출하점에서 요나라군을 격퇴하고, 1115년 부터 고려는 자체적인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요나라는 다시금 70만대군을 이끌고 나왔으나 호보답강에서 패배, 옛 발해의 영토를 되찾게 된다. 1123년 이번에는 고려와 송나라의 선공으로 제5차 여요전쟁이 발발, 송나라는 연운16주를 수복하고 고려는 요나라의 상경임황부와 동경요양부, 중경대정부를 점령한다. 고려는 거란의 유민들을 관리하기 위해 안북도독부를 수립한다. 황족이였던 야율대석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여 서요를 세운다.  
그겨숨이 대확장된 리메이크라면, 이 세계관은 본인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상상한 모든 대체역사를 집어넣은 세계관이다.


=== 아시아 ===
그러나 이러한 영토 확장으로 인해 많은 무신들이 필요로하였고, 이는 문신이 권력을 잡던 고려에 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다행이도 정변 후 혼란은 경대승이 정권을 잡고 고려 황제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종결된다. 저고여 피살사건으로 일어난 몽골과의 전쟁에서는 중원 전체를 가지고 있는 송나라와 연합해 몽골과 대결하려 했으나 송나라가 양쯔강 이남으로 밀리자 회친을 제안했다. 몽골도 요하-송화강 이남을 장악한 고려에 부담을 가졌고, 안북도독부를 해체하는 등의 선에서 화친을 맺는다.
중화민국을 도와주는 미국 군사고문단장이 스틸웰이 아닌 웨드마이어가 임명되어 일본군 최후의 공세에 대비한다. 이 덕분에 대륙타통작전을 방어하는데 성공한다.
미군은 중화민국이 해안가 일부분을 지킨 덕분에 대만을 발판으로 삼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조선 13도 전역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항복을 망설이자 미국은 소련을 참전시켰다. 소련은 만주와 사할린, 쿠릴은 물론 홋카이도•도호쿠•고신에쓰 북부•기타간토•도쿄 동부를 해방시키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남쪽의 일본국과 북쪽의 일본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고 만다.


중화민국은 웨드마이어 장군이 예편하여 주중미국대사가 된 덕분에 지원을 더 받아 생존하는데 성공한다. 대표적으로 회해 전역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긴 했으나 국민당 또한 시간을 버는데에 성공한다. 미국의 경고와 중국의 적화통일조차도 원치 않았던 소련에 의해 허페이(합비)에서 휴전협정<ref>이른바 합비휴전협정</ref>이 맺어진다. 한중에서 시작하여 후베이-허난성 경계와 양쯔강보다 좀더 위쪽에 휴전선이 그려진다.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조공국이 되지만, 원나라가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에 의해 무너지자 고려는 원나라의 군신관계를 파기하고 명나라랑 협공하여 원나라의 잔당들을 정복한다. 만주와 몽골초원 사이에 있는 북만주 지역은 다시 설치된 안북도독부에 의해 '관리'된다.  


한편 미군정 조선의 사령관이 된 매튜 리지웨이는 조선 13도 해방에 공을 세운 김구의 임정과 여운형의 건준을 인정했다.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결정되고 초대 대통령에 김구, 초대 부통령에 여운형이 취임한다.
== 한실부흥 ==
김구 정권은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반민특위로 친일파를 대거 처단하거나 전향과 반성을 받아내는데 성공해 큰 지지를 얻는다. 한국독립당, 자유당, 민주당, 근로인민당, 조선공산당이 제1공화국 시기 주요정당이 된다.
* 만약 유비가 삼국지의 승리자였다면?
* 만약 고구려가 미천왕 당시 요동을 차지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한을 통일했다면?
=== 유비의 삼국통일 ===


베트남은 디엔비엔푸에서 월맹이 승리하고, 중국의 2/3을 차지한 중화민국과 미국의 동의 하에 1956년으로 예정된 통일총선거를 치룬다. 공산당이 승리하였으나 반공정당도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는 이변을 보였다.
208년 서서의 어머니는 조조군에게 잡히지 않았고, 같은해 적벽대전에서는 손유연합군이 조조군을 물리치면서 조조의 천하통일 야심은 좌절되고야 만다.
=== 서유럽 ===
 
=== 동유럽 ===
211년 유비는 유장의 요청으로 익주에 입성한다. 형주는 관우와 서서에게 맡긴다.  
# 만약 그리스와 터키가 공산화되었다면?
 
# 만약 흐루쇼프가 정권을 유지하는데 성공하고 미코얀이 후계자가 되었다면?
213년, 유수구에서 조조는 손권과 전투를 붙었고, 조조는 이번에도 대패한다. 이때 "아들을 낳으려면 응당 손중모(손권) 같아야지 유경승(유표)의 아들들은 개돼지와 같구나!"라는 말을 남긴다. 손권은 합비와 회남 일대를 점거하고, 유비는 낙봉파에서 방통이 살아남은 덕에 익주를 좀더 빨리 평정한다.
=== 아메리카 ===
 
# 만약 트루먼이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면?
217년 유비는 조조와 한중공방전을 시작한다. 2년간의 공방전 끝에 유비는 한중뿐만 아니라 상용과 무도까지 차지한다. 유비는 이로써 한중왕을 자처하게 되었다.
# 만약 닉슨이 1956년,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면?
 
# 만약 린든 B. 존슨이 1964년,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면?
219년 관우의 북벌은 조인을 격파하고, 우금을 항복시키고, 방덕과 서황을 전사시키며 형북일대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미방과 사인의 배신은 서서에 의해 진압되었고, 손권의 배신에 분노한 관우는 형주 동부까지 장악한다, 관우가 형주를 장악하자 익주에 있던 유비와 제갈량도 북진, 마초의 활약으로 서북을 점거하고 강유를 등용한다.
# 만약 로버트 케네디가 (살아남아서) 1972년,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면?
 
# 만약 로널드 레이건이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1981년에 암살당했다면?
220년 조조는 병든 몸을 이끌고 함곡관에서 유비랑 대치하지만 조조는 결국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조조의 세력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유비는 헌제를 옹립하고 낙양으로 다시 수도를 옮긴다. 대세가 유비에게 기울자 손권은 항복을 청했고, 유비는 손권을 달래기 위해 오왕으로 봉한다. 조비는 하북에서 항전하였으나 동생인 조창과 조식과 반목하여 결국 청주를 지키던 조식이 유비에게 투항한다. 기세를 모은 유비에게 업성이 함락당하자 조비는 자결, 북부를 지키던 조창마저 투항하고 만다. 이로써 유비는 한실부흥을 성공시킨다. 221년 봄에 유비는 헌제에게 양위를 받고 제위에 오른다.
# 만약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쪽의 산사태 승리가 아닌 동률이였다면?
 
=== 중동/아프리카 ===
225년 소열제 유비가 승하하고 유선이 황제에 오른다. 유선은 제갈량을 중용하여 전후 재건에 심혈을 기울인다. 238년 고구려랑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킨 공손연을 제압하기도 했다. 252년 오왕 손권이 죽자 오나라는 중앙에 통합되었다. 이로써 삼국지는 완전히 종결된다.
# 만약 팔레스타인과 아랍 세력이 역으로 이스라엘을 축소했다면?
 
# 만약 이란에서 입헌군주제가 이뤄졌다면?
=== 한나라의 요동 상실과 고구려의 삼한통일 ===
# 만약 아랍 바트주의가 좀 더 성공했다면?
=== 그외 ===

2024년 7월 17일 (수) 12:19 기준 최신판

만에하나 오시는 분들을 위한 필독

실험작들 전용 연습장입니다.

신 해동성국

  • 만약 고려가 여진정벌에 성공하여 발해의 영토를 되찾았다면?

여진정벌 이전에 친고려파 동여진족 등을 포섭, 만반의 준비를 한 끝에 공험진 전투에서 승리하고 갈라수 전투에서 고려의 장수 척춘경이 여진의 장수 사묘아리를 전사시키면서 여진족은 고려에게 완전히 복속된다. 1112년 요나라의 암군 천조제의 경고가 고려에 의해 무시당하자 1114년 고려를 침공하면서 제4차 여요전쟁이 발발한다. 친고려파 여진족들의 도움과 여러 명장들의 활약 덕택에 납림하와 출하점에서 요나라군을 격퇴하고, 1115년 부터 고려는 자체적인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요나라는 다시금 70만대군을 이끌고 나왔으나 호보답강에서 패배, 옛 발해의 영토를 되찾게 된다. 1123년 이번에는 고려와 송나라의 선공으로 제5차 여요전쟁이 발발, 송나라는 연운16주를 수복하고 고려는 요나라의 상경임황부와 동경요양부, 중경대정부를 점령한다. 고려는 거란의 유민들을 관리하기 위해 안북도독부를 수립한다. 황족이였던 야율대석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여 서요를 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영토 확장으로 인해 많은 무신들이 필요로하였고, 이는 문신이 권력을 잡던 고려에 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다행이도 정변 후 혼란은 경대승이 정권을 잡고 고려 황제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종결된다. 저고여 피살사건으로 일어난 몽골과의 전쟁에서는 중원 전체를 가지고 있는 송나라와 연합해 몽골과 대결하려 했으나 송나라가 양쯔강 이남으로 밀리자 회친을 제안했다. 몽골도 요하-송화강 이남을 장악한 고려에 부담을 가졌고, 안북도독부를 해체하는 등의 선에서 화친을 맺는다.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조공국이 되지만, 원나라가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에 의해 무너지자 고려는 원나라의 군신관계를 파기하고 명나라랑 협공하여 원나라의 잔당들을 정복한다. 만주와 몽골초원 사이에 있는 북만주 지역은 다시 설치된 안북도독부에 의해 '관리'된다.

한실부흥

  • 만약 유비가 삼국지의 승리자였다면?
  • 만약 고구려가 미천왕 당시 요동을 차지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한을 통일했다면?

유비의 삼국통일

208년 서서의 어머니는 조조군에게 잡히지 않았고, 같은해 적벽대전에서는 손유연합군이 조조군을 물리치면서 조조의 천하통일 야심은 좌절되고야 만다.

211년 유비는 유장의 요청으로 익주에 입성한다. 형주는 관우와 서서에게 맡긴다.

213년, 유수구에서 조조는 손권과 전투를 붙었고, 조조는 이번에도 대패한다. 이때 "아들을 낳으려면 응당 손중모(손권) 같아야지 유경승(유표)의 아들들은 개돼지와 같구나!"라는 말을 남긴다. 손권은 합비와 회남 일대를 점거하고, 유비는 낙봉파에서 방통이 살아남은 덕에 익주를 좀더 빨리 평정한다.

217년 유비는 조조와 한중공방전을 시작한다. 2년간의 공방전 끝에 유비는 한중뿐만 아니라 상용과 무도까지 차지한다. 유비는 이로써 한중왕을 자처하게 되었다.

219년 관우의 북벌은 조인을 격파하고, 우금을 항복시키고, 방덕과 서황을 전사시키며 형북일대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미방과 사인의 배신은 서서에 의해 진압되었고, 손권의 배신에 분노한 관우는 형주 동부까지 장악한다, 관우가 형주를 장악하자 익주에 있던 유비와 제갈량도 북진, 마초의 활약으로 서북을 점거하고 강유를 등용한다.

220년 조조는 병든 몸을 이끌고 함곡관에서 유비랑 대치하지만 조조는 결국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조조의 세력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유비는 헌제를 옹립하고 낙양으로 다시 수도를 옮긴다. 대세가 유비에게 기울자 손권은 항복을 청했고, 유비는 손권을 달래기 위해 오왕으로 봉한다. 조비는 하북에서 항전하였으나 동생인 조창과 조식과 반목하여 결국 청주를 지키던 조식이 유비에게 투항한다. 기세를 모은 유비에게 업성이 함락당하자 조비는 자결, 북부를 지키던 조창마저 투항하고 만다. 이로써 유비는 한실부흥을 성공시킨다. 221년 봄에 유비는 헌제에게 양위를 받고 제위에 오른다.

225년 한 소열제 유비가 승하하고 유선이 황제에 오른다. 유선은 제갈량을 중용하여 전후 재건에 심혈을 기울인다. 238년 고구려랑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킨 공손연을 제압하기도 했다. 252년 오왕 손권이 죽자 오나라는 중앙에 통합되었다. 이로써 삼국지는 완전히 종결된다.

한나라의 요동 상실과 고구려의 삼한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