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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dark=on|최명길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기자(箕子)의 옛날에 봉(封)해진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 | {{인용문|dark=on|최명길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기자(箕子)의 옛날에 봉(封)해진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 | ||
{{인용문|dark=on|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이라고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 {{인용문|dark=on|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이라고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 ||
고조, 성조 대에 조선은 사실상의 독립국가로 활동했다. 성조 당시에는 '성상 폐하'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고 중국과의 조공무역도 일본, 동남아시아 지방의 대외무역으로 조공무역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
2024년 3월 21일 (목) 19:13 판
조선 16대 국왕 문조|文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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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초대 황제 문조 태황제|文祖 太皇帝 | ||||
출생 | 1598년 | |||
조선 한성부 경복궁 | ||||
즉위 | 1641년 | |||
조선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 ||||
사망 | 1678년 | |||
대한제국 한성부 경복궁 | ||||
능묘 | 태릉(太陵)[1] | |||
재위기간 | 조선 제16대 국왕 | |||
1641년 ~ 1650년 | ||||
대한제국 초대 황제 | ||||
1650년 ~ 167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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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선 1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조와 성조가 이룬 대제국 조선을 승계하고 칭제건원하여 대한제국을 건립한 황제이다.
생애
칭제건원
“ 최명길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기자(箕子)의 옛날에 봉(封)해진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
”
“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이라고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
고조, 성조 대에 조선은 사실상의 독립국가로 활동했다. 성조 당시에는 '성상 폐하'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고 중국과의 조공무역도 일본, 동남아시아 지방의 대외무역으로 조공무역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 ↑ 문정왕후의 태릉과는 태자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