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신 동아세계관)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32번째 줄: 32번째 줄:
<br />그러나 일제의 바람과는 달리 임정이 귀국하자 건준 측은 이를 환영하였고, 임정 측도 건준과 추후 정부 수립 건을 논의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다만 임정도 건준도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뒤섞여 있었으므로 의견이 한데 모아지기에는 힘들었다.
<br />그러나 일제의 바람과는 달리 임정이 귀국하자 건준 측은 이를 환영하였고, 임정 측도 건준과 추후 정부 수립 건을 논의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다만 임정도 건준도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뒤섞여 있었으므로 의견이 한데 모아지기에는 힘들었다.
<br />이 즈음, 만주의 간도성, 목단강성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만주국 군경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만주국 군경은 목단강성 내부를 진압하였으나, 조선의용군과 소련 88여단이 개입한 간도성에는 조선민족자치평의회가 설립되어 간도를 통제하기 이른다.
<br />이 즈음, 만주의 간도성, 목단강성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만주국 군경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만주국 군경은 목단강성 내부를 진압하였으나, 조선의용군과 소련 88여단이 개입한 간도성에는 조선민족자치평의회가 설립되어 간도를 통제하기 이른다.
<br />이를 통해 간도지역의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고, 이에 동조하여 일본 본토에서도 많은 교포가 귀국하게 된다. 그러나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조선인들은 본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재차 연해주 하산으로 이주되어 간도지역과 함께 하나의 지역으로 분리되어 관할되게 된다.
<br />이를 통해 간도지역의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고, 이에 동조하여 일본 본토에서도 많은 교포가 귀국하게 된다. 그러나 1930년대에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조선인들은 본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재차 연해주 하산으로 이주되어 간도지역과 함께 하나의 지역으로 분리되어 관할되게 된다.
<br />해방을 맞아 일본은 한반도에 주둔하던 제19사단과 제20사단을 본토로 복귀하게 하여 이동시켰고, 최소한도의 무장만으로 복귀하도록 지시하였기에 수많은 잔여무기를 한국광복군에게 불하하고 이동하게 되었다.
<br />해방을 맞아 일본은 한반도에 주둔하던 제19사단과 제20사단을 본토로 복귀하게 하여 이동시켰고, 최소한도의 무장만으로 복귀하도록 지시하였기에 수많은 잔여무기를 한국광복군에게 불하하고 이동하게 되었다.



2021년 11월 10일 (수) 12:02 판

대한민국의 역사(大韓民國-歷史)는 한국 또는 한민족과 관련되어 있거나 한반도에서 존재한 모든 역사적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무신정변

원 간섭기 이후

조선시대

전기

후기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

1945년 8월 15일 일본 쇼와천황의 평화선언이 담긴 옥음방송을 통해, 조선반도 및 타이완 일대가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었다. 이와 동시에 조선총독부는 비밀리에 여운형을 접촉하여 여운형의 5대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대신 안전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였다. 여운형은 이를 수용하고, 건국동맹을 기반으로, 건국준비위원회을 발족했다. 이 즈음, 일본 정부는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연락하여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임정 요인의 귀국을 인정, 보호할 것을 약속하였다.
일본 내각에서는 여운형의 건준과 대한민국 임정이 내홍에 휩싸일 것으로 보고 이를 지시하였다. 다만, 당시 일본 육군이 한국광복군에게만 무장해제 없이 귀국하는 것을 반대하여 모든 군사단체들에게 무장해제가 필요하다고 하였으나, 내각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을 귀국시킨다.
그러나 일제의 바람과는 달리 임정이 귀국하자 건준 측은 이를 환영하였고, 임정 측도 건준과 추후 정부 수립 건을 논의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다만 임정도 건준도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뒤섞여 있었으므로 의견이 한데 모아지기에는 힘들었다.
이 즈음, 만주의 간도성, 목단강성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만주국 군경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만주국 군경은 목단강성 내부를 진압하였으나, 조선의용군과 소련 88여단이 개입한 간도성에는 조선민족자치평의회가 설립되어 간도를 통제하기 이른다.
이를 통해 간도지역의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고, 이에 동조하여 일본 본토에서도 많은 교포가 귀국하게 된다. 그러나 1930년대에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조선인들은 본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재차 연해주 하산으로 이주되어 간도지역과 함께 하나의 지역으로 분리되어 관할되게 된다.
해방을 맞아 일본은 한반도에 주둔하던 제19사단과 제20사단을 본토로 복귀하게 하여 이동시켰고, 최소한도의 무장만으로 복귀하도록 지시하였기에 수많은 잔여무기를 한국광복군에게 불하하고 이동하게 되었다.

정부수립

임정 측과 건준 측은 몇 차례 논의 끝에 1945년 12월 26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치체제는 대통령제로 결정하고 1946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국회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대하여 국제연합 측에 도움을 요청하여 공정선거가 이루어지게 하였고, 국제연합은 이를 승인,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 국제연합에 가입하는 것도 승인하였다.
1946년 5월 10일 총선거로 꾸려진 국회에서 7월 17일 헌법이 통과, 대통령으로 여운형이 선출되었고, 8월 15일, 해방 1주년이 되던 날, 대통령 여운형이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발표하여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국가가 되었다.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제4공화국

제5공화국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