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Communist 1968/2: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1번째 줄:
민주주의가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정치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작용하는 하나의 체제일 뿐이지 선과 악의 개념으로 나눌 수 있는게 아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선"의 영역으로 착각하지만, 사실 인류가 존경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독재 체제를 운영한 독재자들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강희제, 이세민, 나폴레옹은 독재자가 갖춰야할 요건을 모두 갖춘 군주였다.
우리는 인권 존중이 선의 부분이라고 도덕 혹은 생활과 윤리 시간에 배우고 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민주주의가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정치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작용하는 하나의 체제일 뿐이지 선과 악의 개념으로 나눌 수 있는게 아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선"의 영역으로 착각하지만, 사실 인류가 존경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독재 체제를 운영한 독재자들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강희제, 이세민, 나폴레옹은 독재자가 갖춰야할 요건을 모두 갖춘 군주였다. 강희제와 옹정제, 건륭제는 문자의변으로 무고한 한족들을 마구 학살한 인물이었다. 인권이 선의 가치라면, 이들은 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재 체제로 돌아가자는게 아니다. 독재는 분명히 메소포타미아의 시대에서 프랑스 혁명의 시대까지, 결코 변하지 않는 만세불변 최고의 정치 체제였다.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들도 있었지만 이는 그리스 도시 국가나 아이슬란드와 같은 작은 공동체 내에서 그쳤다. 하지만 교육 수준의 향상은 민중들의 정치 의식 강화를 가져다주었고, 이는 자연스레 소수에 의한 독점 권력이 해체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국가가 다뤄야할 영역이 넓혀짐에 따라 더이상 중앙집권제 하의 전제군주제만으로는 국가를 운영하기 어려워진 때가 18세기와 19세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민권을 탄압하는 독재 체제로 돌아가자는게 아니다. 독재는 분명히 메소포타미아의 시대에서 프랑스 혁명의 시대까지, 결코 변하지 않는 만세불변 최고의 정치 체제였다.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하는 국가들도 있었지만 이는 그리스 도시 국가나 아이슬란드와 같은 작은 공동체 내에서 그쳤다. 하지만 교육 수준의 향상은 민중들의 정치 의식 강화를 가져다주었고, 이는 자연스레 소수에 의한 독점 권력이 해체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국가가 다뤄야할 영역이 넓혀짐에 따라 더이상 중앙집권제 하의 전제군주제만으로는 국가를 운영하기 어려워진 때가 18세기와 19세기였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의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첫번째, 유럽에서 시민 혁명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봉건제도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중세 이후 지속된 점진적인 행정적, 교육적 변화의 축적이었다. 즉, 봉건제도가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민주주의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두번째, 독재가 민주주의로 넘어간 것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었다. 효율성의 문제였다. 과거 부족장의 공동체에서는, 부족장 중심의 전제군주적 시스템이 잘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럽 최강의 대국이었던 프랑스에서 전제군주제는 더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봉건제 하의 체제는 점차적으로 국가의 역량을 악화시켰다. 따라서 유럽 국가들은 점차적으로 자국에 가장 효율적인 통치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 절대 선이 악을 몰아낸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의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첫번째, 유럽에서 시민 혁명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봉건제도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중세 이후 지속된 점진적인 행정적, 교육적 변화의 축적이었다. 즉, 봉건제도가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민주주의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두번째, 독재가 민주주의로 넘어간 것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었다. 효율성의 문제였다. 과거 부족장의 공동체에서는, 부족장 중심의 전제군주적 시스템이 잘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럽 최강의 대국이었던 프랑스에서 전제군주제는 더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봉건제 하의 체제는 점차적으로 국가의 역량을 악화시켰다. 따라서 유럽 국가들은 점차적으로 자국에 가장 효율적인 통치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 절대 선이 악을 몰아낸 것이 아니다.
7번째 줄: 7번째 줄:
이러한 점은 정치가 근본적으로 국가 운영의 효율이라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 이념이라는건, 결국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생각에 불과하지, 정치의 본질이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전에도 분배라는 정치적 가치가 존재했으며 존 스튜어트 밀이 태어나기 전에도 자유라는 정치적 가치는 존재했다. 정치 이념과 시스템이라는건 결국 그런 추상적인 생각들을 정리해, 집약하고 그걸 한 단어로 축약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치 이념에 따라 국가를 통치해야한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맞아보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정치가 무엇인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념은 수단이며, 효율은 목적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이 존재하는 것이며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점은 정치가 근본적으로 국가 운영의 효율이라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 이념이라는건, 결국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생각에 불과하지, 정치의 본질이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전에도 분배라는 정치적 가치가 존재했으며 존 스튜어트 밀이 태어나기 전에도 자유라는 정치적 가치는 존재했다. 정치 이념과 시스템이라는건 결국 그런 추상적인 생각들을 정리해, 집약하고 그걸 한 단어로 축약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치 이념에 따라 국가를 통치해야한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맞아보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정치가 무엇인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념은 수단이며, 효율은 목적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이 존재하는 것이며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하겠다 : 민주주의가 과연 우리 사회에 중요한 가치인가? 모든 인간의 생각은 존중받아야하고, 각자의 생각이 공존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한다는게 민주주의의 의의라는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것도, 결국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다. 만약 인권이 국가 운영에 효율적이지 않다면(오해 방지용 주석 : 난 인권이 국가 운영의 효율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버려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본주의와 인권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은 것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복리가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지 다른 무언가가 있는데 아니다. 즉 민주주의, 인권, 인본, 민권은 모두 하나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가의 효율적인 통치이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게 아니다. 따라서 만약 필요하다면, 민주주의적 가치를 버릴 필요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하겠다 : 민주주의가 과연 우리 사회에 중요한 가치인가? 모든 인간의 생각은 존중받아야하고, 각자의 생각이 공존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한다는게 민주주의의 의의라는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것도, 결국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다. 만약 인권이 국가 운영에 효율적이지 않다면 그것을 버려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본주의와 인권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은 것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복리가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지 다른 무언가가 있는데 아니다. 즉 민주주의, 인권, 인본, 민권은 모두 하나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가의 효율적인 통치이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게 아니다. 따라서 만약 필요하다면, 인권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버릴 필요가 존재한다.

2022년 1월 2일 (일) 03:40 판

우리는 인권 존중이 선의 부분이라고 도덕 혹은 생활과 윤리 시간에 배우고 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민주주의가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정치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작용하는 하나의 체제일 뿐이지 선과 악의 개념으로 나눌 수 있는게 아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선"의 영역으로 착각하지만, 사실 인류가 존경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독재 체제를 운영한 독재자들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강희제, 이세민, 나폴레옹은 독재자가 갖춰야할 요건을 모두 갖춘 군주였다. 강희제와 옹정제, 건륭제는 문자의변으로 무고한 한족들을 마구 학살한 인물이었다. 인권이 선의 가치라면, 이들은 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권을 탄압하는 독재 체제로 돌아가자는게 아니다. 독재는 분명히 메소포타미아의 시대에서 프랑스 혁명의 시대까지, 결코 변하지 않는 만세불변 최고의 정치 체제였다.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하는 국가들도 있었지만 이는 그리스 도시 국가나 아이슬란드와 같은 작은 공동체 내에서 그쳤다. 하지만 교육 수준의 향상은 민중들의 정치 의식 강화를 가져다주었고, 이는 자연스레 소수에 의한 독점 권력이 해체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국가가 다뤄야할 영역이 넓혀짐에 따라 더이상 중앙집권제 하의 전제군주제만으로는 국가를 운영하기 어려워진 때가 18세기와 19세기였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의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첫번째, 유럽에서 시민 혁명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봉건제도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중세 이후 지속된 점진적인 행정적, 교육적 변화의 축적이었다. 즉, 봉건제도가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민주주의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두번째, 독재가 민주주의로 넘어간 것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었다. 효율성의 문제였다. 과거 부족장의 공동체에서는, 부족장 중심의 전제군주적 시스템이 잘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럽 최강의 대국이었던 프랑스에서 전제군주제는 더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봉건제 하의 체제는 점차적으로 국가의 역량을 악화시켰다. 따라서 유럽 국가들은 점차적으로 자국에 가장 효율적인 통치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 절대 선이 악을 몰아낸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은 정치가 근본적으로 국가 운영의 효율이라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 이념이라는건, 결국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생각에 불과하지, 정치의 본질이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전에도 분배라는 정치적 가치가 존재했으며 존 스튜어트 밀이 태어나기 전에도 자유라는 정치적 가치는 존재했다. 정치 이념과 시스템이라는건 결국 그런 추상적인 생각들을 정리해, 집약하고 그걸 한 단어로 축약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치 이념에 따라 국가를 통치해야한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맞아보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정치가 무엇인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념은 수단이며, 효율은 목적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이 존재하는 것이며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하겠다 : 민주주의가 과연 우리 사회에 중요한 가치인가? 모든 인간의 생각은 존중받아야하고, 각자의 생각이 공존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한다는게 민주주의의 의의라는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것도, 결국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다. 만약 인권이 국가 운영에 효율적이지 않다면 그것을 버려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본주의와 인권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은 것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복리가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지 다른 무언가가 있는데 아니다. 즉 민주주의, 인권, 인본, 민권은 모두 하나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가의 효율적인 통치이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게 아니다. 따라서 만약 필요하다면, 인권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버릴 필요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