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친왕 이현: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9번째 줄: 19번째 줄:
|-
|-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111111;" | <center>가족관계</center>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111111;" | <center>가족관계</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0pt | '''헌종 효정태자''' 이헌 (부친)</br>헌의명황후 김선경 (모친)</br>[[광영황제 이곤]] (형)</br>'''친왕비''' 김씨 (부인)</br>'''한성군''' 이민 (장남)
| colspan="4" style="font-size: 10pt | '''헌종 효정태자''' 이헌 (부친)</br>헌의명황후 김선경 (모친)</br>[[광영황제 이곤]] (형)</br>'''친왕비''' 김예은 (부인)</br>'''한성군''' 이민 (장남)
|-
|-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111111;" | <center>생년월일</center>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111111;" | <center>생년월일</center>
42번째 줄: 42번째 줄:


== 개요 ==
== 개요 ==
=== 유년기 ===
대한 5대 황제 광종 헌문제 이휼의 둘째 손자이자 추존 헌종 인황제, 효정태자 이헌의 차남인 이현은 1996년 10월 21일 제 가족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고귀한 황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기에 저 자신이 먹고 사는 것에는 충분히 문제가 없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많은 사랑으로 자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나이 만 한살이 막 지났을 무렵에 부모이던 황태자 부부가 비행기 사고로 안타까이 사망하여 그의 인생은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꼬이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부모와의 추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라도 할 그의 형과는 달리 부모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를 돌봐줄 두 고모들과 섭정공 정연군은 막 황제의 위에 오른 그의 형을 챙기기에 바빴기에 그는 그의 외삼촌 부부에게 크게 의존하였다.  
대한 5대 황제 광종 헌문제 이휼의 둘째 손자이자 추존 헌종 인황제, 효정태자 이헌의 차남인 이현은 1996년 10월 21일 제 가족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고귀한 황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기에 저 자신이 먹고 사는 것에는 충분히 문제가 없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많은 사랑으로 자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나이 만 한살이 막 지났을 무렵에 부모이던 황태자 부부가 비행기 사고로 안타까이 사망하여 그의 인생은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꼬이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부모와의 추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라도 할 그의 형과는 달리 부모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를 돌봐줄 두 고모들과 섭정공 정연군은 막 황제의 위에 오른 그의 형을 챙기기에 바빴기에 그는 그의 외삼촌 부부에게 크게 의존하였다.  


=== 성장기 ===
황제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그의 형과는 다르게 형에 결혼하여 자식을 낳을 것인 미래에 큰 변수가 없는 한 황제 위와는 관련이 크게 없을 것이라 완친왕은 옛 조선의 왕자군과 비슷하게 풀어져서 지냈다. 평범한 학교에 들어가여 아이들과 교류하고, 즐겁게 지냈다. 이현의 외모 또한 준수하여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또래 아이들에게서 인기를 끌었으며 소위 '노는 아이'에 들어갔다. 만 열 세살이 될 무렵에는 황실에게 '완친왕'이라는 작위에 정식 책봉되었다.
황제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그의 형과는 다르게 형에 결혼하여 자식을 낳을 것인 미래에 큰 변수가 없는 한 황제 위와는 관련이 크게 없을 것이라 완친왕은 옛 조선의 왕자군과 비슷하게 풀어져서 지냈다. 평범한 학교에 들어가여 아이들과 교류하고, 즐겁게 지냈다. 이현의 외모 또한 준수하여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또래 아이들에게서 인기를 끌었으며 소위 '노는 아이'에 들어갔다. 만 열 세살이 될 무렵에는 황실에게 '완친왕'이라는 작위에 정식 책봉되었다.


남아있는 가족인 형과의 사이는 돈독하였고, 그의 두 고모들과의 사이 또한 준수하다. 물론 그의 유년기를 거의 책임지다시피 한 외삼촌 김씨 부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그가 성장한 지금도 거의 부모처럼 여기고 있다. 그는 평생동안 부모로부터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 '가정'이라는 단어에 큰 갈망을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여러 여인들과 교제한 그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에게 반한 완친왕은, 수 많은 구애를 뿌리치고 자신이 반한 한 여자를 위하여 헌신하였고 그녀와 결실을 맺게 되었다.  
남아있는 가족인 형과의 사이는 돈독하였고, 그의 두 고모들과의 사이 또한 양호하다. 물론 그의 유년기를 거의 책임지다시피 한 외삼촌 김씨 부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그가 성장한 지금도 거의 부모처럼 여기고 있다. 그는 평생동안 부모로부터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 '가정'이라는 단어에 큰 갈망을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여러 여인들과 교제한 그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에게 반한 완친왕은, 수 많은 구애를 뿌리치고 자신이 반한 한 여자를 위하여 헌신하였고 그녀와 결실을 맺게 되었다.  


== 가계 ==
== 인간관계 ==
=== 가계 ===
* 조부 [[광종 이휼]]
* 조모 태후 유씨
* 부친 [[효정태자 이헌]]
* 형 [[광영황제 이곤]]
* 부인 친왕비 김예은
* 장남 [[한성군 이민]]
 
=== 가족 관계 ===
부인 친왕비 김씨와는 사이가 좋다 못해 가히 물과 물고기처럼 매일을 함께하고 있다. 친왕 부부의 금슬이 좋다는 것은 한국을 넘어 외국에서도 유명한 사실.<ref>물론 이 사실이 알려진 이유는 당연하게도 [[완친왕가 창설사건]]이 가장 컸다.</ref> 아들 한성군 이민 또한 친왕의 부모가 친왕을 아꼈던 것처럼 많은 사랑을 주고 있다. <ref>당장 한성군이 역대 최연소로 군에 봉해진 것 만으로도 알 수 있다. 사실 이건 황제가 조카를 아낀 것도 있다.</ref>
 
형인 광영제와의 사이는 되게 좋다. 어릴 적 의지할 구석이 둘 밖에 없어서 그렇다. 물론 친왕가 창설때는 궁궐에서 피바람이 돌았다는 썰이 있으나 2017년의 모습으로는 사이가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방계 황족과의 관계는 썩 좋지 못해보인다. 특히 의친왕 일가. 완친왕이 워낙 행실이 안좋은 탓도 있고 부친 효정태자대 부터 황위계승권 가지고 말이 많았기 때문.<ref>효정태자가 광종이 '''만 42세'''때 출생하여 그 이전까디 황제의 조카를 입적하여 황태자로 삼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많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의친왕의 장남인 정연군을 황태자로 삼자는 소리가 나왔었다.</ref> 최근에는 황실의 중재로 이들과 공식 행사도 나가는 등 사이를 회복하랴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가인 함박부원군 일가와는 사이가 굉장히 좋다고 한다. 못해도 세 달에 한번씩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 교우 관계 ===
형과는 이화중학교까지 같이 다니고 고등학교는 서울고등학교를 다녔다. 공립고등학교인 서울고등학교에 다닐때 언론 등에 많이 노출되지 않아 친왕인 것을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별 상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여담 ==
== 여담 ==
* 둘째 계획은 아직까진 없다고 한다.
* 완친왕의 사저는 최초로 한성이 아닌 평양에 세워졌다.
* 일본의 황사 [[후미히토]] 또한 똑바로 자란 형과 달리 여러 논란을 빚어 완친왕이 '''한국의 후미히토'''라고 불리기도 한다.
* 친왕가 창설사건 이후에도 사생아가 여럿 있다, 친왕비를 냅두고 사창가를 나돈다는 둥의 말이 떠돈다.


<br>
<br>
[[분류:인물]] [[분류:마지막 제국]]
[[분류:인물]] [[분류:마지막 제국]]

2022년 5월 30일 (월) 15:50 판

대한 완친왕
大韓 垸親王
본명
이현 (李炫)
종족
인류 사피엔스 계열
국적
대한국 (마지막 제국)
성별
남성
가족관계
헌종 효정태자 이헌 (부친)
헌의명황후 김선경 (모친)
광영황제 이곤 (형)
친왕비 김예은 (부인)
한성군 이민 (장남)
생년월일
1996년 10월 21일 ~
출생지
대한국 경기도 한성부
직위
대한국 친왕
소속
대한제국 황실
특이사항
-
상태
생존

개요

유년기

대한 5대 황제 광종 헌문제 이휼의 둘째 손자이자 추존 헌종 인황제, 효정태자 이헌의 차남인 이현은 1996년 10월 21일 제 가족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고귀한 황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기에 저 자신이 먹고 사는 것에는 충분히 문제가 없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많은 사랑으로 자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나이 만 한살이 막 지났을 무렵에 부모이던 황태자 부부가 비행기 사고로 안타까이 사망하여 그의 인생은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꼬이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부모와의 추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라도 할 그의 형과는 달리 부모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를 돌봐줄 두 고모들과 섭정공 정연군은 막 황제의 위에 오른 그의 형을 챙기기에 바빴기에 그는 그의 외삼촌 부부에게 크게 의존하였다.

성장기

황제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그의 형과는 다르게 형에 결혼하여 자식을 낳을 것인 미래에 큰 변수가 없는 한 황제 위와는 관련이 크게 없을 것이라 완친왕은 옛 조선의 왕자군과 비슷하게 풀어져서 지냈다. 평범한 학교에 들어가여 아이들과 교류하고, 즐겁게 지냈다. 이현의 외모 또한 준수하여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또래 아이들에게서 인기를 끌었으며 소위 '노는 아이'에 들어갔다. 만 열 세살이 될 무렵에는 황실에게 '완친왕'이라는 작위에 정식 책봉되었다.

남아있는 가족인 형과의 사이는 돈독하였고, 그의 두 고모들과의 사이 또한 양호하다. 물론 그의 유년기를 거의 책임지다시피 한 외삼촌 김씨 부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그가 성장한 지금도 거의 부모처럼 여기고 있다. 그는 평생동안 부모로부터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 '가정'이라는 단어에 큰 갈망을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여러 여인들과 교제한 그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에게 반한 완친왕은, 수 많은 구애를 뿌리치고 자신이 반한 한 여자를 위하여 헌신하였고 그녀와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인간관계

가계

가족 관계

부인 친왕비 김씨와는 사이가 좋다 못해 가히 물과 물고기처럼 매일을 함께하고 있다. 친왕 부부의 금슬이 좋다는 것은 한국을 넘어 외국에서도 유명한 사실.[1] 아들 한성군 이민 또한 친왕의 부모가 친왕을 아꼈던 것처럼 많은 사랑을 주고 있다. [2]

형인 광영제와의 사이는 되게 좋다. 어릴 적 의지할 구석이 둘 밖에 없어서 그렇다. 물론 친왕가 창설때는 궁궐에서 피바람이 돌았다는 썰이 있으나 2017년의 모습으로는 사이가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방계 황족과의 관계는 썩 좋지 못해보인다. 특히 의친왕 일가. 완친왕이 워낙 행실이 안좋은 탓도 있고 부친 효정태자대 부터 황위계승권 가지고 말이 많았기 때문.[3] 최근에는 황실의 중재로 이들과 공식 행사도 나가는 등 사이를 회복하랴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가인 함박부원군 일가와는 사이가 굉장히 좋다고 한다. 못해도 세 달에 한번씩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교우 관계

형과는 이화중학교까지 같이 다니고 고등학교는 서울고등학교를 다녔다. 공립고등학교인 서울고등학교에 다닐때 언론 등에 많이 노출되지 않아 친왕인 것을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별 상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담

  • 둘째 계획은 아직까진 없다고 한다.
  • 완친왕의 사저는 최초로 한성이 아닌 평양에 세워졌다.
  • 일본의 황사 후미히토 또한 똑바로 자란 형과 달리 여러 논란을 빚어 완친왕이 한국의 후미히토라고 불리기도 한다.
  • 친왕가 창설사건 이후에도 사생아가 여럿 있다, 친왕비를 냅두고 사창가를 나돈다는 둥의 말이 떠돈다.


  1. 물론 이 사실이 알려진 이유는 당연하게도 완친왕가 창설사건이 가장 컸다.
  2. 당장 한성군이 역대 최연소로 군에 봉해진 것 만으로도 알 수 있다. 사실 이건 황제가 조카를 아낀 것도 있다.
  3. 효정태자가 광종이 만 42세때 출생하여 그 이전까디 황제의 조카를 입적하여 황태자로 삼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많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의친왕의 장남인 정연군을 황태자로 삼자는 소리가 나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