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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티스의 정치인이자 판탈라사 4선 정치인. | 테티스의 정치인이자 판탈라사 4선 정치인. | ||
2023년 1월 13일 판탈라사 임기 종료 직전 밴드를 탈퇴하였고 1달 뒤 복귀하였다. | 2023년 1월 13일 판탈라사 임기 종료 직전 밴드를 탈퇴하였고 1달 뒤 복귀하였다. | ||
==생애== | |||
===과도위~ 웨일 정부 (초임)=== | |||
3세계 출신 인물로 유니온 세계관 통합 당시 포티의 소개로 테티스 생활을 시작하였다. 정계활동 시작 이후 에누바와 통합민주당을 공동창당하였으나 다음날 공산당과 합당하였고 정계활동 1달만에 초대 테티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16.7%를 득표하여 3위로 낙선하였다. 직후 총선에서 판탈라사에 출마하였으나 44.8%로 낙선하였고 이후 경선 포함 5번의 낙선길을 걷게 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
1. 대선 (3위) | |||
2. 총선 (판탈라사, 단일후보) | |||
3. 판탈라사 재선거 (경선 2위) | |||
4. 주지사 선거 (트라이아스, 단일후보) | |||
5. 트라이아스 재선거 (2위) | |||
그러나 | |||
닐오일보에서 기자로 입사하여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하였다. | |||
판탈라사 4대 총선에서 공산당 탈당을 선언, 스스로의 힘으로 당선되겠다며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하였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였던 무소속 박캐리 후보를 20% 차이로 가볍게 넘기고 있던 상황이였다. | |||
그러나 | |||
정작 총선이 시행되자 50%대 50%로 동점이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재선거를 실시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보수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집권여당 버프로 가볍게 당선되었으며 이후 내리 4선을 하게 된다. | |||
국회의장에 당선, 헌법에 따라 테티스에서 두번째로 정당해산을 선언하였다. 해당 정당은 트라이아스 생디칼리즘 해방전선, 사유는 국가내란 음모였다. | |||
===허경영 정부 (초임)=== | |||
재선에 성공하였다. | |||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경영과 보수당을 탈당, 새정치중도연합을 창당하여 총선에서 5대 4로 국민당을 이기고 승리하였다. | |||
테티스 유일 공영언론사 TBS의 초대 방송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직후 모닐오 동생 모닐호를 사장으로 임명하고 닐오일보를 퇴사하였다. | |||
===웨일 정부 (재임)=== | |||
3선에 성공하였다. | |||
전라인민공화국 신안 국회의원으로 당선, 판탈라사 해안에 염전을 유치하였다. 해당날 찍은 사진에서 마이크를 들고있는 윤서결 전 보수당 대표의 심령사진이 포착되었다. | |||
전라인민공화국 신안특별행정자치구와 자매결연도시를 맺었다. | |||
2-4. 허경영 정부 (재임) | |||
3선에 성공하였다. | |||
곤드나와 7개 시를 판탈라사에 통합시켰다. | |||
공약에서 내걸었던 저소득층 온라인 교육 시스템인 오세훈런을 구축, 보급하였다. | |||
파라디소- 곤드나와로 이어지는 판탈라사역을 건설하였다. | |||
국민당 2차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4위로 낙선하였다. | |||
회창옹 트라이아스 주지사와 회담을 진행하였고, 백병원 판탈라사 지부 설립을 추진하였다. 다음날 판탈라사 주의회 3선 공산당 의원인 비드쿤 의원이 주의회에서 제명당하였고 이후 의문사하였다. | |||
===스사 정부 (초임)=== | |||
4선에 성공하였고 100%의 득표를 받아 당선되었다. | |||
주의회 선거에서도 국민당 100석 전원 당선이라는 신안에서나 가능할법한 결과가 나왔다. 과거 공산당 출신 주지사가 당선되었고 모형준 본인도 공산당 출신이며 늘 주의회 원내 2당이 진보정당이었던 판탈라사의 정치적 성향이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증명하는 결과였다. | |||
판탈라사 동성혼 금지법을 발의, 주의회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 |||
무함마드 샤르니아를 판탈라사 2대 부지사로 임명하였다. | |||
1월 11일, 임기 종료 직전 사임을 선언하였다. 이후 2일간 부지사 무함마드 샤르니아가 직무대행을 하였다. | |||
===스사 정부 (재임)=== | |||
탈퇴 1달 이후 복귀하였다. 2일 후 정계복귀를 시사하며 보수당에 입당하였고, 현재 국민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중이다. |
2023년 2월 13일 (월) 20:57 판
테티스 연방 공화국 제3,4,5,6대 주지사 모형준 毛亨埈 | Moo Heong-joon | |
출생 | 1960년 1월 19일 |
테티스 연방공화국 판탈라사 | |
국적 | ![]() |
직업 | 정치인 |
현직 | 판탈라사 주지사겸 연방의원 |
임기 | 판탈라사 주지사 |
2022년 5월 9일 ~ 2023년 1월 13일(예정) | |
TBS 방송공사 대표 | |
2022년 5월 21일 ~ 2023년 1월 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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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테티스의 정치인이자 판탈라사 4선 정치인. 2023년 1월 13일 판탈라사 임기 종료 직전 밴드를 탈퇴하였고 1달 뒤 복귀하였다.
생애
과도위~ 웨일 정부 (초임)
3세계 출신 인물로 유니온 세계관 통합 당시 포티의 소개로 테티스 생활을 시작하였다. 정계활동 시작 이후 에누바와 통합민주당을 공동창당하였으나 다음날 공산당과 합당하였고 정계활동 1달만에 초대 테티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16.7%를 득표하여 3위로 낙선하였다. 직후 총선에서 판탈라사에 출마하였으나 44.8%로 낙선하였고 이후 경선 포함 5번의 낙선길을 걷게 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대선 (3위) 2. 총선 (판탈라사, 단일후보) 3. 판탈라사 재선거 (경선 2위) 4. 주지사 선거 (트라이아스, 단일후보) 5. 트라이아스 재선거 (2위) 그러나 닐오일보에서 기자로 입사하여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하였다. 판탈라사 4대 총선에서 공산당 탈당을 선언, 스스로의 힘으로 당선되겠다며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하였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였던 무소속 박캐리 후보를 20% 차이로 가볍게 넘기고 있던 상황이였다. 그러나 정작 총선이 시행되자 50%대 50%로 동점이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재선거를 실시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보수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집권여당 버프로 가볍게 당선되었으며 이후 내리 4선을 하게 된다. 국회의장에 당선, 헌법에 따라 테티스에서 두번째로 정당해산을 선언하였다. 해당 정당은 트라이아스 생디칼리즘 해방전선, 사유는 국가내란 음모였다.
허경영 정부 (초임)
재선에 성공하였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경영과 보수당을 탈당, 새정치중도연합을 창당하여 총선에서 5대 4로 국민당을 이기고 승리하였다. 테티스 유일 공영언론사 TBS의 초대 방송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직후 모닐오 동생 모닐호를 사장으로 임명하고 닐오일보를 퇴사하였다.
웨일 정부 (재임)
3선에 성공하였다. 전라인민공화국 신안 국회의원으로 당선, 판탈라사 해안에 염전을 유치하였다. 해당날 찍은 사진에서 마이크를 들고있는 윤서결 전 보수당 대표의 심령사진이 포착되었다. 전라인민공화국 신안특별행정자치구와 자매결연도시를 맺었다. 2-4. 허경영 정부 (재임) 3선에 성공하였다. 곤드나와 7개 시를 판탈라사에 통합시켰다. 공약에서 내걸었던 저소득층 온라인 교육 시스템인 오세훈런을 구축, 보급하였다. 파라디소- 곤드나와로 이어지는 판탈라사역을 건설하였다. 국민당 2차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4위로 낙선하였다. 회창옹 트라이아스 주지사와 회담을 진행하였고, 백병원 판탈라사 지부 설립을 추진하였다. 다음날 판탈라사 주의회 3선 공산당 의원인 비드쿤 의원이 주의회에서 제명당하였고 이후 의문사하였다.
스사 정부 (초임)
4선에 성공하였고 100%의 득표를 받아 당선되었다. 주의회 선거에서도 국민당 100석 전원 당선이라는 신안에서나 가능할법한 결과가 나왔다. 과거 공산당 출신 주지사가 당선되었고 모형준 본인도 공산당 출신이며 늘 주의회 원내 2당이 진보정당이었던 판탈라사의 정치적 성향이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증명하는 결과였다. 판탈라사 동성혼 금지법을 발의, 주의회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무함마드 샤르니아를 판탈라사 2대 부지사로 임명하였다. 1월 11일, 임기 종료 직전 사임을 선언하였다. 이후 2일간 부지사 무함마드 샤르니아가 직무대행을 하였다.
스사 정부 (재임)
탈퇴 1달 이후 복귀하였다. 2일 후 정계복귀를 시사하며 보수당에 입당하였고, 현재 국민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