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 군사정권 (기계들의 유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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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우한 국민정부가 선포되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26년 독일의 군사복합 기업, 유럽철강공사와 일본의 초거대기업 야스다 재벌간의 중국 이권 충돌로 일어난 '''제2차 기업전쟁'''은 화북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고 국민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무기력하게 무너져가는 중국을 바라보기만 했다. 1930년 일독 양국은 소련과 프랑스의 중재로 도쿄 협정이 채결되며 휴전에 들어갔지만 상하이,칭다오들 많은 항구도시가 열강들의 손에 들어갔고 왕징웨이는 신 계계군벌 이종인의 쿠데타로 실각당한다. 수도는 광저우로 이전했고 황폐해진 화북을 대신해 중국 경제의 중심지는 광둥성으로 옮겨지게 된다. 하지만 이에 못마땅한 북부의 실권자 염계군벌의 염석산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서북군벌,중국 국민당 좌파와 중국 해양공사의 지원을 받아 1932년 대규모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를 '''제3차 중국 내전'''이라 한다. 4년간의 치열한 내전끝에 정통성을 지킨 이종인이 승리하지만 내전의 피해가 막심한 탓에 1937년 제2차 국민당 환송대회에서 이종인도 실각, 국민당 집단지도 체제가 되고 군사위원장 직책을 맏고있던 '''장제스'''가 실권을 쥐게된다. 이렇게 중국은 안정기에 접어드는줄 알았지만 대혼란은 이제 시작이었다. 1937년 7월 장제스의 도쿄 협정 파기를 구실로 일본 정부를 장악한 야스다 재벌이 중국을 침공, 1945년까지 이어진 전쟁으로 화북과 중국 해안지대는 잿더미로 변한다. 1939년 일어난 '''제3차 기업전쟁(2차 세계대전)'''으로 1945년, 중국은 끝내 승리했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그 피해는 매우 막심했다 기근과 학살로 전체 인구의 40%가 죽거나 불구가 됬고 국내 총생산의 70%가 증발, 국부의 80%를 손실했다. 장제스는 책임을 지고 사퇴, 국민당 집단지도 체제도 붕괴하며 행정원장인 웡원하오가 실권을 잡고 내각을 구성하지만 전후 일어난 경제위기, '''검은 50년대'''로 전세계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자 친소정책으로 경제위기를 타계해보려 하지만 더이상 중국의 이용가치가 없어진 소련은 이를 거부, 다급해진 중국은 제정경제긴급처분령으로 이를 막아보려 하지만 오히려 중산층이 몰락하는 결과만 낳으며 대실패, 국민정부는 민중의 지지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center>'''군사정권 수립과 안정기'''</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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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1일 (토) 11:38 판

파일:기계들의 유산 중화민국 국장3.png

중화민국 군사정권
中華民國軍事政權


무너진 조국
세계의 강대국이었던 중국, 현재는 무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중국을 장악한 기업, 부패한 정부, 60년에 걸친 혼란은 아시아의 용 중국을 처참히 밟아버렸고 현재는 또 다른 강대국들의 보물창고로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노동과 투쟁을 이어가고 정보기관인 COS에 의해 감시 받고 있습니다.

기업들에게 모든것을 통제당하는 상황에서도 몇몇 소수의 지식인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무너진 조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100년전 중국의 부활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개요

동아시아에 위치한 자본주의 기업독재 국가. 군사기구이자 경제기구인 난징 조약기구의 수장국이며 상하이를 기반으로한 아시아 무역과 금융의 중심국가다. 과거에는 중국 국민당이 집권정당으로 활동했지만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2차레의 기업전쟁으로 기존의 국민정부는 지지를 잃고 무너지고 전쟁특수로 힘을 키워오던 중국의 민간기업, 중국 해양공사와 그동안 국민정부에 불만을 품던 국민혁명군이 자작극인 중동로 사건을 일으켜 1960년대 정부를 장악하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있다

과거 급속한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지만 여러 전쟁과 혼란으로 현재는 강대국 수준 턱걸이만 간신히 하는 정도이다. 기업과 군대의 합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혼란, 인권탄압, 환경오염, 억압된 사회등 여러 문제들로 악명이 높다.

주요도시

파일:중화민국 군사정부 베이징.png

베이징
翻譯者
화북의 중심지이자 중국 왕조의 1000년 수도 베이징은 중국의 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극심한 부의 격차, 무능한 지방정부, 부패한 관료, 폭력, 군벌들간의 전쟁 판을 치고 있으며 탐욕스러운
중국 정부로부터 꿈을 찾아온 이들이 살아갑니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른채 오늘도 하나씩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나갑니다.


역사



신해혁명과 국민정부 수립까지

1911년 우한에서 청 왕조를 타도하기 위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고 양무운동의 성공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청나라 군대는 강남 전역으로 퍼진 봉기를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지만 위안스카이의 쿠데타와 쑨원이 미국의 지원를 받아 돌아오며 1912년 베이징이 함락, 선통제가 처형당하며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현실과 달리 쑨원은 임시대총통 자리를 넘기는 것을 거부했고 위안스카이가 반란을 일으킨다, 이를 제1차 중국내전이라 한다.
원세계의 반란군은 난징을 함락시키며 승승장구 하지만 1915년 소련이 임시정부 측으로 개입하며 반란은 진압되고 임시정부 채제가 유지된다. 1916년 유럽에선 제1차 세계대전, 훗날 1차 기업전쟁이라 불리게 될 대전쟁이 일어나고 중국은 노동자를 파견하고 이를 주도한 중화민국 해양공사는 막대한 이득을 얻게된다. 한편 1920년 모스크바 회담으로 전쟁이 끝나고 중국의 경제특수는 끝나거 된다. 얼마뒤 쑨원도 사망하고 이를 이은 중국 국민당의 왕징웨이가 주석이 되고 중국을 이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군벌이었다. 왕징웨이의 중앙집권적 정책과 군국주의적 성향은 군벌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고
1921년 군벌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호국전쟁, 제2차 중국 내전이 일어난다. 3년에 걸친 내전끝에 기업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왕징웨이 정부가 승리, 1925년 우한에서 중화민국 국민정부 설립과 국민혁명군 창설을 선포한다

대혼란기

1925년 우한 국민정부가 선포되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26년 독일의 군사복합 기업, 유럽철강공사와 일본의 초거대기업 야스다 재벌간의 중국 이권 충돌로 일어난 제2차 기업전쟁은 화북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고 국민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무기력하게 무너져가는 중국을 바라보기만 했다. 1930년 일독 양국은 소련과 프랑스의 중재로 도쿄 협정이 채결되며 휴전에 들어갔지만 상하이,칭다오들 많은 항구도시가 열강들의 손에 들어갔고 왕징웨이는 신 계계군벌 이종인의 쿠데타로 실각당한다. 수도는 광저우로 이전했고 황폐해진 화북을 대신해 중국 경제의 중심지는 광둥성으로 옮겨지게 된다. 하지만 이에 못마땅한 북부의 실권자 염계군벌의 염석산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서북군벌,중국 국민당 좌파와 중국 해양공사의 지원을 받아 1932년 대규모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를 제3차 중국 내전이라 한다. 4년간의 치열한 내전끝에 정통성을 지킨 이종인이 승리하지만 내전의 피해가 막심한 탓에 1937년 제2차 국민당 환송대회에서 이종인도 실각, 국민당 집단지도 체제가 되고 군사위원장 직책을 맏고있던 장제스가 실권을 쥐게된다. 이렇게 중국은 안정기에 접어드는줄 알았지만 대혼란은 이제 시작이었다. 1937년 7월 장제스의 도쿄 협정 파기를 구실로 일본 정부를 장악한 야스다 재벌이 중국을 침공, 1945년까지 이어진 전쟁으로 화북과 중국 해안지대는 잿더미로 변한다. 1939년 일어난 제3차 기업전쟁(2차 세계대전)으로 1945년, 중국은 끝내 승리했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전쟁으로 그 피해는 매우 막심했다 기근과 학살로 전체 인구의 40%가 죽거나 불구가 됬고 국내 총생산의 70%가 증발, 국부의 80%를 손실했다. 장제스는 책임을 지고 사퇴, 국민당 집단지도 체제도 붕괴하며 행정원장인 웡원하오가 실권을 잡고 내각을 구성하지만 전후 일어난 경제위기, 검은 50년대로 전세계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자 친소정책으로 경제위기를 타계해보려 하지만 더이상 중국의 이용가치가 없어진 소련은 이를 거부, 다급해진 중국은 제정경제긴급처분령으로 이를 막아보려 하지만 오히려 중산층이 몰락하는 결과만 낳으며 대실패, 국민정부는 민중의 지지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군사정권 수립과 안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