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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5일 (일) 03:2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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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의 정보기관
대통령 직속기관
중앙정보부 中央情報部 Gwangsung Central Intelligence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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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정보부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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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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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指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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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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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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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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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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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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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기관설립법 제8조 중앙정보부법 제1조, 제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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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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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보안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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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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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연방공화국 광산구 나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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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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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차장 이하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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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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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연방공화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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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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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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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광성공화국의 정보기관. 그 전까지 국내외 첩보 업무는 경찰의 사찰과와 정희철이 지휘했던 보안대의 몫이었다. 김핀천 정권 시절 경찰은 엄청난 위세를 떨쳤고 정희철은 김핀천의 양아들 소리를 들을 정도의 권력을 행사하던 군인으로 보안대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부대였다.
청사
광성 중앙정보부 청사는 당시 나종필 전 중앙정보부장이 헬기를 타며 부지를 찾으러 다니던 도중, 광산구에 위치한 남평산[1]을 보고 가르키며 중정 부지로 정했다고 한다.
특징
195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외 방첩 활동까지 국군 보안대에서 수행했기 때문에 인권 및 월권 문제로 말이 많았던 터라 국내외 방첩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기관의 창설이 필요했다.[2][3] 김핀천 정권 말기부터 창설 계획이 있었는데, 김핀수 정권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중앙정보부장
역대 중앙정보부장
- ↑ 南平山.광산(光山)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 당시 여러 국가기관들의 월권과 부패가 판쳤었다.
- ↑ 보안방첩부가 국내 안정을 위해 먼저 창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