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 너머/예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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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활자라는 표현상의 한계로 인해 다른 신비예술 분야와 달리 강력한 초상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힘들었다. 그러나, 특정 영역에서 문학의 신비학적 면모는 아주 강력하게 발휘되었다.
신비예술로서의 문학은 주로 소재에 영향을 받았다. 종이와 잉크의 재질을 신비 소재를 활용하는 것으로, 문학의 알레고리나 언어의 기호학적 특성을 실체화시킬 수 있었다. 최대한 의미를 강화하고 압축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표현능력과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들은 문학 분야와 관련한 신비학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신비학은 문학의 예술적 특성을 신비로 승화시킨다기보단 연금술을 문학작품에 접목하는 것에 불과했다. 결국, 문학은 소재가 아니라 그 텍스트가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문학이 신비학적 특성을 가지기 위해선 그 자체로 신비를 함유하는 텍스트가 있어야 가능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텍스트는 이미 성경이나 마도서의 형식으로 오랜 시간동안 전승되어 왔으며, 신비의 상징기호를 언어로 승화시키는 능력은 그 자체로 이미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인식이 필요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신비문학은 그다지 선호되는 영역은 아니었다. 그나마 현실적 서술을 활용한 신비문학이 신비소재를 이용해 장면묘사를 상상함으로써 사실적 경험을 느끼게 하거나, 작품이 의도하는 감정을 더 충동시키거나 하는 등, 몰입감을 더 깊이있게 다루는 방식이 연구되긴 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전통적인 작가들에게 "실력미달 작가들의 편법. 실력이 있다면 신비학의 도움이 없어도 생생한 감동을 줄 수 있다."라며 크게 비판했다. 물론, 애당초 신비소재 자체가 희귀했기에, 종이나 잉크를 신비소재로 대체하는 방식은 그리 선호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다른 형태로 활용되었는데, 바로 신비소재로 작성된 문학적 암호문을 읽어 정신적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소통 방식이었다. 신비소재 문학작품은 텍스트를 읽고 그 장면을 상상하며 일종의 환술을 일으키는데, 동일한 소재와 동일한 텍스트로 구성된 작품은 같은 환상을 일으키며 일시적인 영적 연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비록 예술이라고 하긴 애매했으나, 이런 방식은 신비주의 비밀결사나 고위관료 등에게 애용되는 접선 방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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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2일 (토) 02:21 판

 사회 
 신비학 관련 
 우주관 
 지역 

개요

증기 너머 세계관은 산업혁명 이후의 열강국 제국주의적 팽창기를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세계 각지의 문화를 수입하였다. 동시에, 계몽주의를 거치며 일어난 사회문화적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예술적 개혁에 의한 낭만주의 사조가 시작되는 시기다. 그런 만큼, 대량 생산과 인간중심주의, 이성에 대한 확신과 희망, 동시에 관념과 정념의 표출 등 예술적 격동기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다양한 예술 사조가 나타났으며, 동시에 신비에 대한 학문이 퍼지며 귀족 중심으로 신비와 예술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이를 신비예술파라고 하며, 이들은 열강국의 예술계를 주도하였다.

예술계의 분위기

분야별 예술사조 흐름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계몽주의가 도래했고, 이에 대한 반감으로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다. 열강국의 탐험가들은 세계 각지를 누비며 온갖 신비와 문화를 수입해왔고, 이는 열강국에서 각 문화권에 맞게 해체되고 재창조되었다.

대체로 대부분 예술 분야의 주류 사조는 낭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분야별로, 또 파벌 별로, 계층 별로 선호되는 사조가 상이한 편이다. 또한, 대체로 예술 사조를 이끄는 것이 상류층 귀족집안이나 중산층의 부유한 계층이었고, 그들 대부분은 과학계에 대한 반감으로 똘똘 뭉쳐있었으며 그들의 예술행위를 파벌싸움에 유용한 마술적 기법으로 연결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요컨데, 마술적으로 용이한 사조가 더 사랑받고 인기를 끌었다.

이런 흐름 때문에 대부분 예술사조에는 상징주의 사조가 강하게 섞였으며, 이에 따라 예술계는 상징주의 파벌과 반상징주의 파벌로 나뉘었다. 상징주의 파벌 예술가들은 적극적으로 신비와 연관된 각종 문화권의 신화적 모티브를 강하게 채용하여 신화적 현상을 일으키는 것에 집중한 반면, 반상징주의 파벌은 그들 고유의 순수한 정념을 예술에 담는 것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신화적 모티브를 따오기 쉬운 미술, 문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신비예술가들은 신비를 일으키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신비 소재를 사용하였다. 신비 소재를 이용한 염료나 옷감, 혹은 그러한 소재를 통해 가공한 재료가 주로 이용되었는데, 이 역시 신비예술계에선 신비의 원리 자체를 적용하는 관념주의와 신비 소재를 이용해 작품의 철학적 가치를 증폭하는 촉매주의 예술가로 나뉘게 되었다. 그 중 촉매주의 예술가들은 고가의 신비 소재를 구매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신비학자, 특히 연금술사들과 긴밀한 유착관계를 맺어야 했다.

신비예술에 대한 마술 또는 의식적 기법에 대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미술

미술 분야는 다른 예술 분야에 강하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뿐더러, 신비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다 시각적 자극에 예민한 인간의 특성상 예술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연구되었다.

낭만주의의 바람이 예술계에 휘몰아치면서, 가장 대두되었던 것은 인상주의 사조였다. 특히 신비예술은 복잡하고 추상적인 정신작용을 가시화한다는 면에서, 인상주의는 아주 적절하게 신비예술과 섞여들었다.

기본적으로 예술가들은 반골기질이 있었기에, 이런 인상주의 흐름에 반대하는 흐름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사조였다. 신고전주의자들은 인상주의를 넘어 낭만주의 자체에 반감을 가지며, 계몽주의적 정신을 계승해 이성적이고도 이상적인 인간 우상화하였다. 이런 흐름에 따라, 신고전주의자들은 필연적으로 과학자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중산층(특히 사업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 편, 사실주의자들은 실재를 그대로 모방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신비를 적극 채용하였다. 사실주의자는 특히나 사진의 등장과 함께 사실주의 회화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되었고, 사실을 모방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답은 회화에 대한 시각적 자극을 오감으로 퍼뜨릴 정도의 현실성의 재현이었으며, 실제 그림이 사실적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신화와 유물에 대한 신비주의적 해석을 통해 일종의 별계의 차원을 만들거나, 특정 장소에 대한 회화를 통해 공간을 이동하는 등 사실주의 미술은 매우 다양하고 실용적인 신비예술 방법을 개발해냈다. 이로 인해 사실주의자들은 신비예술계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졌다.

건축

건축 분야는 매우 특수한 신비예술 양식으로 취급받는다. 우선, 기본적으로 순수하게 신비학을 접목시킨 건축자재나 공사의 비용부터가 만만치 않으며, 건축기술은 엄연히 공학의 분야였기에 높은 과학적 학문소양을 요구했다. 때문에 신비예술로서의 건축은 사실상 신비예술파의 분야라기보단 과학환원주의자들의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학계의 작은 크기에 비해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했다. 무한한 방, 암호화된 미로, 밖보다 안이 더 넓은 공간, 방 자체가 특정한 기분을 고취시키는 공간 등 착시와 인식능력에 깊게 관여하는 방식으로 실용적인 활용법이 가능했다. 때문에 신비학을 적용한 건축은 독자적인 학문영역이 되어, 공간설계사라는 직업으로 불리게 되었다. 공간설계사는 인형사와 마찬가지로 중산층 최상위 대우를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뛰어난 설계사는 기사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되기도 하였다.

건축 예술은 과학환원주의의 연구분야였기에, 주로 신고전주의에 의해 부활한 신고딕 양식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뾰족하고 높은 첨탑이나 마천루 등, 위압감을 조성하고 하늘로 치솟을듯한 건축은 과학기술 발달로 우수한 철강과 적극적인 콘크리트의 사용으로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어디까지나 랜드마크 수준의 도시 주요 건축물과 관광지 정도에나 사용되었으나, 대부분의 주택가나 상가 등 노동자 계층이나 계층이 낮은 중산층들의 건물은 목조 및 벽돌을 이용한 건축물이 대부분이었을 뿐더러, 예술적 시각보단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건축되었다. 건축은 일반적인 예술 분야와 달리 사치보단 실용성이 주가 되는 큰 자본이 들어가는 산업이기에 신비예술이 접목되는 건축물은 극히 소수였다.

문학

문학은 활자라는 표현상의 한계로 인해 다른 신비예술 분야와 달리 강력한 초상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힘들었다. 그러나, 특정 영역에서 문학의 신비학적 면모는 아주 강력하게 발휘되었다.

신비예술로서의 문학은 주로 소재에 영향을 받았다. 종이와 잉크의 재질을 신비 소재를 활용하는 것으로, 문학의 알레고리나 언어의 기호학적 특성을 실체화시킬 수 있었다. 최대한 의미를 강화하고 압축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표현능력과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들은 문학 분야와 관련한 신비학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신비학은 문학의 예술적 특성을 신비로 승화시킨다기보단 연금술을 문학작품에 접목하는 것에 불과했다. 결국, 문학은 소재가 아니라 그 텍스트가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문학이 신비학적 특성을 가지기 위해선 그 자체로 신비를 함유하는 텍스트가 있어야 가능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텍스트는 이미 성경이나 마도서의 형식으로 오랜 시간동안 전승되어 왔으며, 신비의 상징기호를 언어로 승화시키는 능력은 그 자체로 이미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인식이 필요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신비문학은 그다지 선호되는 영역은 아니었다. 그나마 현실적 서술을 활용한 신비문학이 신비소재를 이용해 장면묘사를 상상함으로써 사실적 경험을 느끼게 하거나, 작품이 의도하는 감정을 더 충동시키거나 하는 등, 몰입감을 더 깊이있게 다루는 방식이 연구되긴 하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전통적인 작가들에게 "실력미달 작가들의 편법. 실력이 있다면 신비학의 도움이 없어도 생생한 감동을 줄 수 있다."라며 크게 비판했다. 물론, 애당초 신비소재 자체가 희귀했기에, 종이나 잉크를 신비소재로 대체하는 방식은 그리 선호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다른 형태로 활용되었는데, 바로 신비소재로 작성된 문학적 암호문을 읽어 정신적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소통 방식이었다. 신비소재 문학작품은 텍스트를 읽고 그 장면을 상상하며 일종의 환술을 일으키는데, 동일한 소재와 동일한 텍스트로 구성된 작품은 같은 환상을 일으키며 일시적인 영적 연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비록 예술이라고 하긴 애매했으나, 이런 방식은 신비주의 비밀결사나 고위관료 등에게 애용되는 접선 방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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