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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개요}}<div style="width:100%;text-align:left;font-size:12px;word-spacing:1px;padding:15px 25px;color:#cc2121;font-family:Chosunilbo_myungjo, ChosunSm;font-weight:500; background:#e3ba62;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left, rgba(79,55,2,0.2) 0%, rgba(79,55,2,0) 100%);text-shadow:0px 0px 2px rgba(79,55,2,0.35);border-radius:10px;box-shadow:0px 0px 3px rgba(0,0,0,.3);border:2px solid #9c7e2d;font-weight:bold;"> | {{앵커|개요}}<div style="width:100%;text-align:left;font-size:12px;word-spacing:1px;padding:15px 25px;color:#cc2121;font-family:Chosunilbo_myungjo, ChosunSm;font-weight:500; background:#e3ba62;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left, rgba(79,55,2,0.2) 0%, rgba(79,55,2,0) 100%);text-shadow:0px 0px 2px rgba(79,55,2,0.35);border-radius:10px;box-shadow:0px 0px 3px rgba(0,0,0,.3);border:2px solid #9c7e2d;font-weight:bold;"> | ||
<div style="font-size:15px;letter-spacing:1px;margin-bottom:15px;color:#cc2121;font-weight:bold;">1. 개요</div> | <div style="font-size:15px;letter-spacing:1px;margin-bottom:15px;color:#cc2121;font-weight:bold;">1. 개요</div> | ||
방갈랄왕은 막와이 황제를 위시하여 델리를 탈환하기 위한 일련의 도발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영길리 동인도 회사와 군사적 충돌이 계속되었다. 이에 영길리는 인도에 직접 개입하기로 하고 미리견, 불란서, 오지리, 이태리에게 각지 식민지를 약속하고 연합을 꾀했다. 동인도 회사군이 방갈랄 일대로 진입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여 5개국 연합은 연합함대와 지상군을 파견하여 강화도와 제물포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인천이 함락되고 한성역까지 점령되자 조정은 흥화영, 장용영, 충헌영의 3만 장병을 각지에 집결시키고 근왕병을 소집했다.{{V|10}} | |||
경군의 저항이 격렬해 진척이 없자 연합군은 평양으로 진군하여 흥화병영을 점거했고, 삼화포을 장악해 물자를 탈취했다. 그러나 이내 근왕병과 충헌영이 남쪽에서, 장용영이 북쪽에서, 경군이 동쪽에서 공격하자 일부는 삼화포로, 일부는 제물포로 후퇴했다. 이후 황해 해전으로 연합군 해군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동래화약으로 전쟁을 끝냈다.</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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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5일 (금) 03:51 판
1. 개요
방갈랄왕은 막와이 황제를 위시하여 델리를 탈환하기 위한 일련의 도발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영길리 동인도 회사와 군사적 충돌이 계속되었다. 이에 영길리는 인도에 직접 개입하기로 하고 미리견, 불란서, 오지리, 이태리에게 각지 식민지를 약속하고 연합을 꾀했다. 동인도 회사군이 방갈랄 일대로 진입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여 5개국 연합은 연합함대와 지상군을 파견하여 강화도와 제물포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인천이 함락되고 한성역까지 점령되자 조정은 흥화영, 장용영, 충헌영의 3만 장병을 각지에 집결시키고 근왕병을 소집했다.
경군의 저항이 격렬해 진척이 없자 연합군은 평양으로 진군하여 흥화병영을 점거했고, 삼화포을 장악해 물자를 탈취했다. 그러나 이내 근왕병과 충헌영이 남쪽에서, 장용영이 북쪽에서, 경군이 동쪽에서 공격하자 일부는 삼화포로, 일부는 제물포로 후퇴했다. 이후 황해 해전으로 연합군 해군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동래화약으로 전쟁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