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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부터는 [[주승용]] 경천시장, [[이태백]] 경수시장과 [[김태호]] 경천군수가 한 자리에 모여 삼경 통합에 대한 의견 공유와 세 지역들의 중간 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1994년 3월부터는 [[주승용]] 경천시장, [[이태백]] 경수시장과 [[김태호]] 경천군수가 한 자리에 모여 삼경 통합에 대한 의견 공유와 세 지역들의 중간 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
===제3차 주민투표=== | ===제3차 주민투표=== | ||
1994년 6월에는 마침내 삼경 시장, 군수가 삼경 통합과 다음과 같은 통합 조건에 합의를 하고 육지부와 도서부를 모두 통합경천시(가칭)으로 하는 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 1994년 6월에는 마침내 삼경 시장, 군수가 삼경 통합과 다음과 같은 통합 조건에 합의를 하고 육지부와 도서부를 모두 통합경천시(가칭)으로 하는 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7월 1일부터 7월 2일동안 2일간 정부 방침대로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 ||
{{제3차 주민투표 결과}} | {{제3차 주민투표 결과}} | ||
제1차, 제2차 투표와 마찬가지로 만 19세 이상 경천시•경수시•경천군 주민들이 투표를 했고, 그 결과 모든 지역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합이 확정됐다.''' | 제1차, 제2차 투표와 마찬가지로 만 19세 이상 경천시•경수시•경천군 주민들이 투표를 했고, 그 결과 모든 지역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합이 확정됐다.''' |
2025년 2월 3일 (월) 02:16 판
삼경 통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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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군 (鏡天郡, 188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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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시 (鏡天市, 1945) |
경수군 (鏡水郡, 1945) |
경천군 (鏡天郡, 19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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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시 (鏡水市, 1988) |
경천군 (鏡天郡, 19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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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시 (鏡天市, 1995) |
개요
1995년 1월 1일 3차례 시도끝에 유천도 구 경천시, 경수시, 경천군이 통합된 역사를 다루는 문서다.
위 통합에 대해 대부분 삼경 통합이라고 부른다.
배경
역사적으로는 원래 세 지역 모두 같은 고을이었으나 근대화를 거치면서 세 지역으로 분리되었고 이로 인해 생기는 행정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 1992년, 1996년 제1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전에 구 경천군 지역에 있던 구 경천시, 경수시, 경천군을 통합하는 삼경 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세 지역의 입장
구 경천시의 입장에서는 경천국가산단으로 인하여 인구는 계속 유입되는데 주거 지역이 부족하여 인구 포화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경수시와 경천군과 통합하면 면적이 1000km² 이상으로 확장되기에 경천군, 경수군과의 통합의 필요성이 늘어났고 이에 경천시는 우선 과제로 삼경 통합을 선정하기에 이른다.
경수시의 입장에서는 경수일반산단의 조성으로로 인구가 유입되고 이 덕분에 시 승격까지 됐지만 시 중앙에 큰 산이 있기 때문에 주거 용지가 적어서 인구 유입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또한 타 지역으로 나갈려면 경천군이나 경천시를 통해서 나가야 했었고 이 때문에 교통 불편도 상당했다. 이로 인해 경수시도 서서히 통합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경천군의 입장에서는 통합이 된다면 그동안 받아오던 농어촌 혜택이 사라지고 관청이 통합되고 의회가 통합되면 그에 따라 자릿수가 줄어드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또한 삼경 통합이 이뤄지면 모든 혐오시설은 경천군으로 올거라는 전망도 있었기에 경천군은 주민과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반대를 주장했다.
통합 시도
제1차 주민투표
1993년 2월 1일, 정부와 경수시는 제1차 분리 통합안으로 '경천시+경수시+경천군 섬 지역'은 통합경수시(가칭)으로 '경천시+경수시+경천군 섬 지역'은 통합경천시(가칭)으로 하는 통합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4월 1일부터 5월 1일까지 31일간에 걸쳐 제1차 분리 통합안에 대한 찬반을 우편으로 투표했다.
지역 | 찬성 | 반대 | |||
경천시 | 4.5% | 95.5% | |||
경수시 | 92.77% | 7.23% | |||
경천군 | 17.5% | 82.5% |
만 19세 이상 경천시•경수시•경천군 주민들이 투표했고 총 투표율은 92.41%로 집계됐다.
그 결과 당연히 경천시의 반대와 경천군의 적극적 반대로 무산됐다.[1]
제2차 주민투표
제1안이 부결되자 제2안인 경천시•경수시•경천군 육지와 섬 지역 모두 통합경천시(가칭)으로 하는 삼경 시군 통합안에 대해 6월 1일부터 7월 1일까지 똑같이 31일간에 걸쳐 우편으로 찬반을 투표했다.
지역 | 찬성 | 반대 | |||
경천시 | 94.73% | 5.27% | |||
경수시 | 11.7% | 88.3% | |||
경천군 | 25.10% | 74.9% |
제1차 주민투표와 마찬가지로 만 19세 이상 경천시•경수시•경천군 주민이 투표했고, 총 투표율은 80.14%로 집계됐다.
그 결과 1차 주민투표 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경천시의 찬성, 경수시와 경천군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제2차 주민투표 이후
제1차 주민투표와 제2차 주민투표가 연속으로 무산되자 세 지역의 주민들은 위축되고 좌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또한 행정력과 예산 낭비, 지역 현안 사업의 지연 등 주민들이 생활의 불편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고, 1996년 제1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1년 앞둔 1995년에 삼경이 통합을 못하면 영원히 통합을 하기 힘들어진다는 압박감마저 생기기 시작했다.
통합은 해야겠는데 제1안대로 육지부와 도서부를 경수시와 경천시로 통합하자니 경천시 쪽이 반발하고 제2안대로 육지부와 도서부를 통째로 경천시로 통합하자니 경수시 쪽이 반발하는지라 어떻게든 대책을 내놓아서 반발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994년에 들어서면서 삼경 통합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지역 언론의 적극적인 활동과 각 정당에 소속된 지역 당직자들의 생각 변화, 지역 단체들의 적극적인 통합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94년 3월부터는 주승용 경천시장, 이태백 경수시장과 김태호 경천군수가 한 자리에 모여 삼경 통합에 대한 의견 공유와 세 지역들의 중간 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제3차 주민투표
1994년 6월에는 마침내 삼경 시장, 군수가 삼경 통합과 다음과 같은 통합 조건에 합의를 하고 육지부와 도서부를 모두 통합경천시(가칭)으로 하는 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7월 1일부터 7월 2일동안 2일간 정부 방침대로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지역 | 찬성 | 반대 | |||
경천시 | 92,857 (97.78%) |
2,112 (2.22%) | |||
경수시 | 81,225 (93.49%) |
5,657 (6.51%) | |||
경천군 | 15,887 (90.62%) |
1,655 (9.38%) | |||
총 투표 결과 | |||||
189,969 (95.27%) |
9,424 (4.73%) |
제1차, 제2차 투표와 마찬가지로 만 19세 이상 경천시•경수시•경천군 주민들이 투표를 했고, 그 결과 모든 지역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합이 확정됐다.
7개 이행사항
- 통합 시청의 위치는 현 경수시청으로 한다.
- 통합 시의회 의원정수는 현 경천시군의회 의원정수와 현 경수시의회 의원정수가 동수가 되도록 조정한다.
- 경천•경수 상공회의소는 경천시로 이전토록 추진한다.
- 공공 기관 및 사회단체는 경수시로 이전토록 추진한다.
- 도서 및 농촌 지역의 예산은 현 수준보다 증액하여 배정하기로 하고, 경천군에 투자되는 자체 사업비 규모는 국•주•도비보조사업, 양여금 사업을 제외한 총 가용 재원의 30% 이상을 투자하기로 한다.
- 기타 지역의 현안은 현 경수시•경천군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 쓰레기 매립장, 분뇨 처리장 등의 혐오시설은 현 경천시와 현 경수시 지역에 설치하고, 일방적으로 경천군에 설치하지 않기로 한다.
경천시장 주승용
경수시장 이태백
경천군수 김태호
세 지역의 단체장들이 합의한 위의 이행사항들은 2025년 현재까지 지켜지고 있다.
삼경 통합에 따른 입법 조치
통합 이후
각주
- ↑ 사실 경천군은 통합경천시든 통합경수시든 반대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