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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5일 (토) 00:26 판
1274년 여몽연합군은 다카시마에 상륙해 파죽지세로 진격, 다자이후의 서쪽 관문인 미즈키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간몬 해협을 건넌 뒤 교토를 향해 진격하던 이들은 시모후리성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규슈로 퇴각하였고, 그 뒤에도 수차례 아카마가세키에 재상륙을 시도했으나 막부군의 강력한 저항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교착 상태에 이르렀다. 쿠빌라이 칸은 병력을 충원한 뒤 원정을 재개하려 했으나 다른 국내외적인 문제에 직면해 단념하였고, 1294년 그가 사망함으로써 일본 원정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쿠빌라이 칸 사후 다자이후가 위치했던 자리에 정동행성이 설치되어 본격적인 규슈 통치가 시작되었다. 정동행성 승상은 고려 국왕이 겸임했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없었으며, 그 밑에 평장정사가 행정 업무를 총괄했다. 평장정사는 주로 토착 호족들 중에서 임명되었는데, 이들을 지배 구조에 편입시킴으로써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였다.
13세기 말부터 고려에서 넘어온 이주민들이 대거 정착하면서 기존 원주민과의 분쟁이 심화되었다. 정동행성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일부 호족들이 소요를 일으켰으나 대부분 진압되어 영지를 몰수당했다. 몰수된 영지는 고려계 이주민들이 차지하였으며, 일부는 호족으로 성장해 기존 토착 호족들과 경쟁 구도를 이루었다. 대표적으로 상인 출신 김상첨은 규슈 북부의 막대한 토지를 사들이고 매관매직으로 정동행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