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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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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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해령(禁海令) ==
== 금해령(禁海令) ==
{{인용문1|1. 2064년 1월 9일 0시를 기하여 '''모든''' 선박은 북위 25도선을 통과할 때 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br>2. 소련 해군은 1조의 허가를 받지 않은 선박을 '''격침'''시킬 수 있다.<br>3. 다음에 해당하는 국가 소속 선박은 1조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인용문1|1조 2064년 1월 9일 0시를 기하여 '''모든''' 선박은 북위 25도선을 통과할 때 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br>2조 소련 해군은 1조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위 25도선을 통과하는 선박을 '''격침'''시킬 수 있다.<br>3조 다음에 해당하는 국가에 적을 둔 선박은 1조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 소련 소속 구성국
* 소련 소속 구성국
* 소련 정부와 별도의 교섭, 협정 체결을 통해 공해상의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받은 국가
* 소련 정부와 별도의 교섭, 협정 체결을 통해 공해상의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받은 국가
4. 3조에서 지정된 국가의 선박일지라도 다음에 해당하는 국가가 종착지일 경우 1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4조 3조에서 지정된 국가의 선박일지라도 다음에 해당하는 국가가 종착지일 경우 1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 브리튼 연방국
* 브리튼 연방국
* 1항의 국가와 수교하는 국가
* 1항의 국가와 수교하는 국가
4-2. 2064년 2월 2일 4조에서 지정한 국가 항목에 다음의 국가를 추가한다.
4조 추가조문 2064년 2월 2일 4조에서 지정한 국가 항목에 다음의 국가를 추가한다.
*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 1항의 국가와 수교하는 국가
* 1항의 국가와 수교하는 국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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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4년 1월 8일 선전포고 하루만에 소련 정부는 ‘전쟁 상황에 따른 자유 항행의 제한에 대한 전소비에트대표자대회의 의결(AUPC Resolution on Restrictions on Free Navigation due to War Conditions)’이라는 제목의 14개 조항으로 구성된 전시 명령을 발표한다. 제목만 보면 소련 국내에만 관련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전세계 국가의 무역, 군사적 항행을 제한하는 범세계적 조치였다. 이 조치에 따라 수에즈 운하와 세계의 주요 항로는 모두 봉쇄되었다. 이 조치의 목표는 단 하나, 영국으로 들어가는 모든 해외 물자를 차단하고 결과적으로 영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이었다. 아울러 소련은 치밀한 외교전을 통해 남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의 암묵적 동의를 받아냈고 아예 몇몇 국가들과 다국적 연합군을 꾸려 영국에 대항하기로 했다. 1월 12일에는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4개국의 연합군 참여를 이끌어냈으며 추가로 아르헨티나에게는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소련이 인정해주겠다는 협정까지 맺었다. 1월 14일에는 스페인 공화국도 연합군에 참여했는데 이들에게는 지브롤터의 ‘통치권’을 보장하겠다는 협정을 맺었다. 1월 16일 자정, 연합군은 카리브해의 영국령 도서와 지브롤터, 키프로스등을 기습해 점령했다.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같은 대서양 오지는 점령하지 않고 전시기간 동안 수송함을 이용해 소련이 물자를 운송해주기로 했다. 17일에는 소련은 이집트의 반발로 인해 수에즈 운하의 봉쇄를 조건부로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선적된 모든 화물은 소련 해군이 검사하여 영국으로 가는 것이 확인된 것은 몰수했다. 영국은 작년 10월 소련 선박을 공격하고 소련이 선전포고하자 본인들도 호기롭게 전쟁을 선포했지만 변변한 전투도 치루지 않고 전쟁 양상은 영국에게 매우 어렵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련군을 위시로한 연합군은 개전 엿새도 안되어 버뮤다와 카리브해의 영국령 도서 지역들을 모두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2064년 1월 8일 선전포고 하루만에 소련 정부는 ‘전쟁 상황에 따른 자유 항행의 제한에 대한 전소비에트대표자대회의 의결(AUPC Resolution on Restrictions on Free Navigation due to War Conditions)’이라는 제목의 14개 조항으로 구성된 전시 명령을 발표한다. 제목만 보면 소련 국내에만 관련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전세계 국가의 무역, 군사적 항행을 제한하는 범세계적 조치였다. 이 조치에 따라 수에즈 운하와 세계의 주요 항로는 모두 봉쇄되었다. 이 조치의 목표는 단 하나, 영국으로 들어가는 모든 해외 물자를 차단하고 결과적으로 영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이었다. 아울러 소련은 치밀한 외교전을 통해 남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의 암묵적 동의를 받아냈고 아예 몇몇 국가들과 다국적 연합군을 꾸려 영국에 대항하기로 했다. 1월 12일에는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4개국의 연합군 참여를 이끌어냈으며 추가로 아르헨티나에게는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소련이 인정해주겠다는 협정까지 맺었다. 1월 14일에는 스페인 공화국도 연합군에 참여했는데 이들에게는 지브롤터의 ‘통치권’을 보장하겠다는 협정을 맺었다. 1월 16일 자정, 연합군은 카리브해의 영국령 도서와 지브롤터, 키프로스등을 기습해 점령했다.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같은 대서양 오지는 점령하지 않고 전시기간 동안 수송함을 이용해 소련이 물자를 운송해주기로 했다. 17일에는 소련은 이집트의 반발로 인해 수에즈 운하의 봉쇄를 조건부로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선적된 모든 화물은 소련 해군이 검사하여 영국으로 가는 것이 확인된 것은 몰수했다. 영국은 작년 10월 소련 선박을 공격하고 소련이 선전포고하자 본인들도 호기롭게 전쟁을 선포했지만 변변한 전투도 치루지 않고 전쟁 양상은 영국에게 매우 어렵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련군을 위시로한 연합군은 개전 엿새도 안되어 버뮤다와 카리브해의 영국령 도서 지역들을 모두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 [[북해 해전]] ==
== [[북해 해전]] ==

2025년 3월 2일 (일) 21:52 기준 최신판


혁명세계관
소영전쟁
Soviet-British War
날짜
2064년 1월 7일 ~ 2064년 11월 22일
장소
북대서양, 그레이트브리튼섬, 서유럽 일대
원인
조지 래슬로의 망명
카리브해에서의 영국군의 무력 도발
영국과 독일의 사회주의자 탄압
교전 세력
연합군
소련
스페인
쿠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
동맹군
브리튼국
독일
덴마크
지휘관
대니얼 맥클레이브
윤주용
윌리엄 스펜서
루크 핼러웨이
알레한드로 로페즈
다니엘 산체스
마우로 아사냐
마누엘 카르바할
디에고 페르난데스
구스타보 바르가스
시몬 코르테스
리오넬 페레즈
안토니오 카사노
잉게 욘스도티르
요한 스테판손
라스 하워드
크리스 호킨스
데니스 베리
리처드 바넷
알로이스 몰트케
케빈 랑
빌헬름 마이어
아우구스트 뇌르가르드
닐 라스무센
병력
55만명 25만명
피해규모
전사자 953명
부상자 1천 2백명
전사자 2만명
부상자 3만명
결과
연합군의 승리
영향
영국, 독일 공산화
영국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Britain shall pay price for their aggressive action. If there is an action, there is a reaction.
윤주용, 2064년 1월 7일 인민위원평의회 모두발언[1]

개요

소련을 위시로한 연합군과 영국 독일을 위시로한 파시스트 동맹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배경

전개

금해령(禁海令)

1조 2064년 1월 9일 0시를 기하여 모든 선박은 북위 25도선을 통과할 때 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조 소련 해군은 1조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위 25도선을 통과하는 선박을 격침시킬 수 있다.
3조 다음에 해당하는 국가에 적을 둔 선박은 1조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 소련 소속 구성국
  • 소련 정부와 별도의 교섭, 협정 체결을 통해 공해상의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받은 국가

4조 3조에서 지정된 국가의 선박일지라도 다음에 해당하는 국가가 종착지일 경우 1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 브리튼 연방국
  • 1항의 국가와 수교하는 국가

4조 추가조문 2064년 2월 2일 4조에서 지정한 국가 항목에 다음의 국가를 추가한다.

  •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 1항의 국가와 수교하는 국가
(후략)

2064년 1월 8일 선전포고 하루만에 소련 정부는 ‘전쟁 상황에 따른 자유 항행의 제한에 대한 전소비에트대표자대회의 의결(AUPC Resolution on Restrictions on Free Navigation due to War Conditions)’이라는 제목의 14개 조항으로 구성된 전시 명령을 발표한다. 제목만 보면 소련 국내에만 관련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전세계 국가의 무역, 군사적 항행을 제한하는 범세계적 조치였다. 이 조치에 따라 수에즈 운하와 세계의 주요 항로는 모두 봉쇄되었다. 이 조치의 목표는 단 하나, 영국으로 들어가는 모든 해외 물자를 차단하고 결과적으로 영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이었다. 아울러 소련은 치밀한 외교전을 통해 남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의 암묵적 동의를 받아냈고 아예 몇몇 국가들과 다국적 연합군을 꾸려 영국에 대항하기로 했다. 1월 12일에는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4개국의 연합군 참여를 이끌어냈으며 추가로 아르헨티나에게는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소련이 인정해주겠다는 협정까지 맺었다. 1월 14일에는 스페인 공화국도 연합군에 참여했는데 이들에게는 지브롤터의 ‘통치권’을 보장하겠다는 협정을 맺었다. 1월 16일 자정, 연합군은 카리브해의 영국령 도서와 지브롤터, 키프로스등을 기습해 점령했다.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같은 대서양 오지는 점령하지 않고 전시기간 동안 수송함을 이용해 소련이 물자를 운송해주기로 했다. 17일에는 소련은 이집트의 반발로 인해 수에즈 운하의 봉쇄를 조건부로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선적된 모든 화물은 소련 해군이 검사하여 영국으로 가는 것이 확인된 것은 몰수했다. 영국은 작년 10월 소련 선박을 공격하고 소련이 선전포고하자 본인들도 호기롭게 전쟁을 선포했지만 변변한 전투도 치루지 않고 전쟁 양상은 영국에게 매우 어렵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련군을 위시로한 연합군은 개전 엿새도 안되어 버뮤다와 카리브해의 영국령 도서 지역들을 모두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북해 해전

  1. 사실상 선전포고문이었다. 이 발언 직후 전소비에트대표자대회는 인민위원평의회의 전쟁 개시 요청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