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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이 해소된 이후에도 미·러 양국 모두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체감하며 북극해에 대한 군사적 군사 활동을 강화하였으며 북극해에 대한 분쟁이 본격적으로 심화되게 되었다. | 긴장이 해소된 이후에도 미·러 양국 모두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체감하며 북극해에 대한 군사적 군사 활동을 강화하였으며 북극해에 대한 분쟁이 본격적으로 심화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라시아 내부에선 반서방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점차 중국과의 충돌에서 서방과의 갈등으로 옮겨갔다. 결국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유라시아의 발트로의 확장과 이를 막기 위한 유럽합동군의 [[서풍 작전 (서풍)|{{color|#C4D2E1|'''서풍 작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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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8일 (월) 09:01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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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tic Military Conflict Crisis
크고 작은 국지전이 치루어 질 정도로 확장되어 전쟁 위기가 고조 되었다.
- 배경
대항해 시대로 물류 혁명 시대가 시작되며 바다를 통한 무역이 활성화 되었다. 그 탓에 막대한 물자를 빠른 시간 내에 운송 할 필요성이 생겨났고 그중에서도 북극 항로는 유럽과 아시아, 북아메리카를 짧은 시간 내에 도달하게 해주는 주요한 길목 이었던 탓에 북극과 인접한 국가들은 북극 항로를 장악하기 위해 경쟁 해왔다.
탈세계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현대 시대에도 북극 항로는 매우 중요한 항로였다. 2008년 시작된 대침체의 영향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붕괴 된 이후, 미해군의 영향력 아래있던 바다는 무법 지대로 변했다. 그 중 많은 선박들이 통과하던 수에즈 운하는 이란의 수중으로 떨어져 제1차 중동대전으로 번지는 등 불안정한 상태이고 파나마 운하는 서아프리카부터 시작 된 해적 행위로 일명 죽음의 바다로 변하며 사용하기 매우 어렵게 되었다. 반면 북극 항로에 경우 유라시아 연방의 관리 하에 있으나 다른 바다에 비해 안정적이고 지구 온난화의 가속으로 일반 배들도 통과 할 수 있게되며 분쟁의 장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2031년, 태양의 활동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강력한 태양 플레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노후화된 미국의 북극 궤도 정찰 위성 '쇼니(Shawnee)'가 제어 불능 상태에 빠졌고, 결국 북극해 인근 퀸 엘리자베스 제도 근처에 추락하고 말았다. 이 위성은 수년간 미국의 안보를 책임져 온 중요한 정찰 장비로, 위성에 저장된 정보가 노출될 경우 미국은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할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북극해 해류의 흐름을 분석한 결과, 추락한 위성의 잔해가 약 2개월 내에 북극점을 지나 유라시아 영해인 노보시비르스크 제도 방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위성의 잔해를 신속히 회수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미해군 제2함대와 해병대 특수 구조대(SEAL 팀 10)를 포함한 회수단이 편성, 비밀리에 북극해로 파견했다. 북극해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대규모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비무장화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미해군의 갑작스러운 진입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유라시아 정부는 레이더를 통해 미해군의 움직임을 발견했고 크렘린은 미국이 공식 통보 없이 북극해에서 군사 작전을 개시한 것에 강하게 반발하며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북방 함대를 급파하며 양측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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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해군 소속의 핵추진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와 핵잠수함 카잔은 3월 3일, 북극해 프란츠 요제프 제도 인근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미국 해군 함대와 조우하게 되었으며, 이 조우 직후 유라시아 측은 해당 해역에서 미군 전력의 즉각적인 철수를 강하게 요구하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이전에 소실된 미국 정찰위성 쇼니의 잔해가 해당 해역 인근에서 발견되자, 미군은 해군 특수부대인 SEAL 팀과 무인 잠수정을 투입하여 본격적인 잔해 탐색 작전을 개시하였으며, 이에 대응하여 유라시아군은 해상 정찰을 목적으로 Tu-142 초계기를 출격시켜 미 해군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추적 및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라시아군이 파견한 Tu-142 초계기는 북극 작전 지역 상공에서 미국 해군의 P-8 포세이돈 정찰기와 공중에서 직접적인 대치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양측 항공기는 상호 견제를 유지하며 일정 시간 동안 극도로 긴장된 비행을 지속하였다. 그러던 중 3월 5일, 유라시아 측의 핵잠수함 카잔이 미 해군이 설정한 작전 해역 인근으로 근접 접근하였고, 이를 포착한 **미국 해군 구축함 USS 루스벨트는 즉각적인 대응 조치로 경고 사격을 실시하였다. 이에 유라시아는 미군의 행위를 명백한 군사적 도발이자 공격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현지 배치 병력을 통해 즉각적인 반격 준비에 돌입하였다.
이후 상황은 더욱 격화되어, 3월 7일에는 유라시아 공군 소속 Su-35 전투기 2기가 미국의 P-8 포세이돈 정찰기에 가까이 접근한 뒤, 위협적인 기동을 반복하며 공중 도발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돌발적 위협 행위로 인해 무력 충돌 가능성이 우려되었고, 결국 미국 측은 확전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해당 정찰기를 후방으로 철수시키는 결정을 내리게 되며,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유라시아 측이 해당 해역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듯한 양상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며, 미 해군은 곧바로 대응 수위를 높이기 위해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35B 기체 2기를 추가 투입하여 공중 전력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감행하였다. 이와 동시에,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키어 스타머는 유라시아군의 군사적 행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강한 반발의 뜻을 밝히며, 자국 해군 전력을 현지에 투입할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국제적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러한 위기 국면 속에서, MDTO와 유럽연합은 미국과 유라시아 간의 전면적인 무력 충돌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사태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즉각적인 외교적 중재 절차에 돌입하였다. 이에 따라, 프랑스, 독일, 핀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 각국의 외무장관들이 적극적인 외교 접촉을 통해 미국과 유라시아 양측과의 중재 협상을 개시하였으며, EU는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사고 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북극해 지역에서의 긴급한 협력 방안으로 한시적 공동 탐색팀 구성 제안을 공식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외교적 노력의 결과, 미국과 유라시아 양국은 일정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하였으며, 결국 양측은 공동 위성 잔해 탐색팀을 해당 해역에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즉각적인 무력 충돌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양국은 북극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비공식적인 해상 경계선을 상호 설정하였고, 동시에 각국이 배치한 해군 전력을 점진적으로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극단적인 군사적 대치 국면은 점차적으로 완화되고 소강 상태로 전환되었다.
- 영향
긴장이 해소된 이후에도 미·러 양국 모두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체감하며 북극해에 대한 군사적 군사 활동을 강화하였으며 북극해에 대한 분쟁이 본격적으로 심화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라시아 내부에선 반서방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점차 중국과의 충돌에서 서방과의 갈등으로 옮겨갔다. 결국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유라시아의 발트로의 확장과 이를 막기 위한 유럽합동군의 서풍 작전으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