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의 변 (천하서사)

Sangyoon6133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26일 (화) 10:28 판

개요

평안 14년 (CD: 627) 주나라의 1대 황제 유상의 죽음으로 촉발된 대규모 군사반란 및 군웅할거. 유상이 자기 일생일대의 목표였던 중앙집권화를 이루지 못한 채 승하하며 일어난 사건으로, 불안전했던 평화를 깨뜨리고 다시금 난세에 돌입하게 만든 사건, 그리고 천하 시리즈의 시발점이 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배경

유상이 100년 전란 시기의 난을 끝내고 양 말제에게 선양을 받아 주나라를 세운 후, 또 다른 전란을 막기 위해 많은 개혁이 시도 되었다. 특히 지방 행정에 대한 거대한 개혁을 시도해 100년 전란의 원인이었던 지방 소군벌들의 난립을 차단 시키려 노력했고 양나라의 천하관을 완화시켜 주변국들의 반발보단 형식적인 조공국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유한 통치 14년의 시간은 중원 전체를 바꾸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으며, 유상도 이를 알고 있었다. 형식적인 조공국이라고 해도 중원 을 시시콜콜 노리고 있는 서쪽의 투판과 북쪽의 기나라, 유상의 엘리트 장수들이지만 군벌평정을 명분으로 막강한 힘을 쥐고 있는 외곽의 성평사들은 유상이 죽으면 언제든 독립할 수 있는, 사실상 독자 세력들이었으며, 후계자를 아직 정하지 못한 채로 정국을 이끄는 것은 주나라의 근간을 확실히 뒤바꿀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아가 아들 유기의 난폭한 성향과 얕은 지식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허나 유상의 나이가 채 50이 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그가 있는 한 성평사나 조공국의 반란은 꿈에도 못 꾸는 것이었다. 그렇게 장기적으로 개혁을 이루어 나가던 주나라는 평안 14년 천하춘제에서 유상이 의문사로 승하하면서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타 세력 배경

물론, 유상의 개혁은 꽤나 큰 효과를 이루면서 주나라를 차츰차츰 안정화 시켜놓았지만 그 전에 있던 100년의 혼란, 그리고 전 왕조의 300년 통치기간의 유산을 14년만에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었다. 당장 일족인 유연, 유평에게 큰 권한을 주어 서쪽과 북쪽 경계선의 방위 및 통치를 시켰으며 남부는 황후 장씨와의 결혼으로 인해 복속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에 동, 서북 및 중남부 쪽의 성평사들인 동황, 진하, 요연 등의 존재는 소군벌들보다 더 큰 위협이 됐으면 됐지, 못하지 않았다.

게다가 형식적으로 고개를 숙인 주변 조공국들의 알 수 없는 꿍꿍이 및 자체 천하관 수립 역시 완전한 개혁이라 보기 힘든 것들 이었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조공국들은 동쪽의 해동, 그리고 동남쪽의 운서 정도였기 때문에 조공국들과의 마찰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제어기라고 할 수 있던 유상의 존재가 사라졌는데다 이렇다 할 후계자는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결국 저마다의 야심을 가지고 있던 당시 권력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언제든 전장터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던 것이다.

전개

평안 14년 1월 20일, 제 2차 천하춘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고, 대황루에서 황궁을 청소하는 관리들을 보면서 식사를 즐기던 유상이 급작스럽게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다음날 승하하게 된다. 이에 조정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되고, 이를 지켜보던 어대사의 사마량, , , 등은 혼란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자 후계자 계승을 논하게 된다. 하지만 의논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유상의 장남이었던 유기가 어사대와의 논의 없이 주 2대 황제의 자리를 승계하기 시작하며, 아버지의 금위군을 업고 무자비한 숙청을 시작한다. 이로 인해 유상을 따랐던 많은 개국공신들이 죽어났으며, 유상의 입양아들이자 서삼성왕 유평은 목숨만 간신히 부지한 채 수도인 역양에서 탈출한다. 마찬가지로 혈통이 부족했던 유상의 서자 유한은 재상 사마량의 만류[* 후계자가 없을때 남은 황족을 바로 죽이면 반란이 더 거세질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태비 마씨와 같이 유폐되었다.

반란의 제일 첫 조짐이 보인 것은 북쪽의 조공국이자 한때 북방 초원을 호령했던 기나라 였는데, 유목제국 답게 신속하게 기병 병력을 남쪽 경계이자 유연의 본거지인 안북성으로 보냈다. [*허나 유연이 지키고 있는 안북성인 만큼, 기나라의 군사 이동은 주나라를 떠보기 위한 속셈으로 보인다.] 황권을 확실히 잡을 생각이었던 유기에겐 안북성을 지키고 있는 자신의 삼촌 유연을 복속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자찬하며 단 50기의 호위군을 이끌고 안북성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