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동아시아야구기구, 약칭 EAPB(East Asia Professional Baseball Organization)가 주관하는 대한연방공화국과 만주공화국의 프로야구 리그이다. 산하에 연맹리그(Federal League) 소속 8개 구단과 시티리그(City League) 소속 8개 구단으로 총 16개 구단이 참가하고 있다.
역사
한국의 야구 도입은 일본과 비슷한 1872년 9월, 안중항에 정박한 미국 수군 수병들의 경기를 구경한 부두 노동자들이 이를 따라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비슷한 시기 영국 수군에서 도입된 크리켓도 안중항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나, 크리켓과 달리 야구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각종 학교와 예배당 등을 중심으로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대표적인 신문물로 한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1878년 일본에서 최초의 야구단인 니이바시 아스레틱 쿠라부가 창단되자 이에 자극을 받아 같은 해 평도에서 한국 최초의 야구단인 황성YMCA야구단이 창단되었고, 1880년에는 최초의 기업구단인 무원양행 야구단이 등장하여 이어를 포함한 전국을 순회하며 학교, 직장 야구단들과 경기를 가졌다.
초창기 야구는 축구에 비해 경기 규칙이 복잡하고 장비가 많이 필요해 인기에 한계가 있었으나, 1892년 7월 평도에서 황립육영원 중학부와 이어제1중학교의 대항전이 열리면서 본격적인 인기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3일간 열린 이 경기에서 그동안 '외방'으로 여겨지던 이어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수도의 육영원 선수들을 2승 1패로 꺾자 수도권의 이어 출신 주민들 사이에서 야구의 인기가 폭발했고, 이후 각 지방 출신의 향우회에서 후원하여 지방 유명 중학팀들을 평도로 초청해 육영원 혹은 수도제1중학교 등 평도의 대표 학교팀과 경기를 벌이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1896년 관북선의 완전개통으로 조선 최북단인 온성에서 평도까지 1일 이동이 가능해지자 이러한 지방팀의 상경전은 연례행사가 되었고, 이어 9월 혁명 직후인 1906년 제1회 전국체육대회의 개최로 각 지방 대표팀이 평도에 집결하여 토너먼트전을 벌이면서 전국단위 야구대회라는 틀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908년 황성신문이 주최하는 제1회 청송기 중학야구대전이 개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 황성신문은 청송기 10주년을 기념하여 각 지역별 중학팀 졸업자들로 지역대표팀을 구성해 대회를 벌이는 최초의 사설 지역대항전을 개최했다. 평도에서 6개 팀이 총 56경기를 벌여 당대 기준으로는 상당한 고액인 9만원의 수입을 올리자[1] 이에 고무된 당대 한국 최고의 인기구단 황성YMCA는 1919년 전격적으로 프로 전향을 선언하였다.[2][3] 이어 1921년에는 평도에서 대한천일은행 야구단[4]이 창단되었으며, 평양의 서경신문과 동평의 국제통상도 프로구단 창단에 돌입하여 1922년 대한직업야구연맹이 발족하고 1924년 첫 프로리그 개최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1923년 일본에서 간토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한국에서의 프로야구 리그 출범도 잠시 연기되었는데, 당초 구상은 한국과 일본이 각자 프로야구를 출범시켜 리그 우승팀이 최종적으로 동아최강전을 벌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대한직업야구연맹은 첫 프로리그 개최를 1926년으로 연기하였으나, 결국 일본의 양대 프로구단인 일본운동협회와 텐카츠 야구단이 대지진 이후 불어닥친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해체되면서 1926년 4월 2일 아시아 최초의 프로야구 리그인 대한직업야구연맹 선수권대회(現 연맹리그)가 단독으로 출범하였다.
참가구단
연맹리그
구단명 | 연고구장 | 모기업 | 리그참가 | 리그우승 | 동아시아시리즈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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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YMCA | 황성미라필드(평도부) | 황성스포츠그룹 | 1926년 | ||
코코아 캐슬러스 | 한주카이크로스파크(한수도 한주시) | 코코아소프트 | 1998년[5] | ||
서북철도 레일러스 | 쓰르라미낙랑돔(평안도 평양시) | 서북철도주식회사 | 1948년[6] | ||
은성 세일러스 | 아이손필드(경상도 동평시) | 은성전자 | 1926년[7] | ||
이화 워터스 | 청주천일필드(충청도 청주시) | 이화항공 | 1926년 | ||
리체 샤크스 | 남강유라베이스볼파크(남율도 남강시) | 리체리조트 | 1972년 | ||
호산 블랙호스 | 광성화신파크(평안도 의주시) | 호산타이어 | 1976년 | 예시 | 예시 |
나무 실스 | 칭니와탈라베이스볼파크(친니부) | 나무백화점 | 1976년 | 예시 | 예시 |
시티리그
구단명 | 연고구장 | 모기업 | 리그참가 | 리그우승 | 동아시아시리즈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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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T 호크스 | 안중경철돔(평도부) | SL텔레콤 | 1988년[8] | ||
태성 베어스 | 아이온파크(평도부 수원시) | 태성자동차 | 1926년 | ||
흥화 크리에이터스 | 본궁신화생명파크(함경도 함흥시) | 흥화케미컬 | 1964년 | ||
나산 보이저스 | 전주시리필드(전라도 전주시) | 나산건설 | 1964년 | ||
아이실라 파이오니어스 | 하이시아베이스볼파크(부르가투울라로 부르가투울라시) | 아이실라익스프레스 | 1992년 | ||
이레일 루비스 | 도화라주필드(도화부) | 이레일 | 1968년 | ||
서평 사파이어스 | 율화이진은행야구장(남율도 율화시) | 서평항공 | 1968년 | ||
푸린 버디스 | 이로베이스볼파크(차수도 차화시) | 푸린소프트 | 1968년 | 예시 | 예시 |
리그 확대 논의
2025년 현재 EAPB의 구단 구성은 조선 10개, 이어 4개, 만주 2개로, 인구 7천만의 조선이나 3천만의 이어에 비해 조선과 비슷한 7천만 인구를 가진 만주 시장에서 적절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야구계에서 종종 제기되어 왔다. 이론적으로 만주의 인구와 경제력을 감안할 때 역시 8~10개 정도의 구단을 갖추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이 있으며 이에 따라 리그 확대 구상은 크게 EAPB의 확장, 혹은 만주 리그의 독립의 두 부류로 나뉜다.
- 리그 확장안: 현 연맹리그와 시티리그가 만주 지역 구단을 추가하여 리그 당 10~14개 구단 체제로 운영
- 만주 리그 독립안: 8~10개 구단 체제의 만주 리그를 별도로 독립시키고 한국 리그는 추가 구단 창설로 14~16개 구단의 양대리그 체제로 운영
다만 만주의 경우 전형적인 냉대기후로, 구장의 난방시설에 많은 투자가 필요해 수입에 비해 유지비용이 많이 나간다는 점이 프로야구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현재 각 지역에서 운영되는 독립리그도 모두 5~9월의 짧은 기간 동안만 경기를 가지고 있으며, 만주에서 가장 활성화 된 프로스포츠인 MFL[9] 사무국은 현재 아시아 지역 프로축구의 추춘제화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때문에 현재는 한국계 도시로 야구 인기가 높으며 사실상 함경도 북부시장까지 영향력이 미치는 부르가투울라https://ko.wikipedia.org/wiki/옌지시와 만주 최남단인 https://ko.wikipedia.org/wiki/%EB%8B%A4%EB%A1%84%EC%8B%9C 두 곳에만 EAPB 구단이 운영되고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8B%A8%EB%91%A5%EC%8B%9C에서는 압록강 건너 의주와의 라이벌 의식에 기인해 신구단 창단 논의가 있으나 시장 규모 문제로 진척되지는 않고 있으며, 칭니와를 제외한 만주 4대 도시(묵던, 자무하, 하르빈, 무단기양) 중에서는 그나마 남쪽에 위치한 묵던에서의 창단이 점쳐지나 리그 균형 상 다른 한 구단의 추가 창단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그 외에 묵던 이남의 대도시들 중에서는 철강도시인 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C%82%B0%EC%8B%9C_(%EB%9E%B4%EC%98%A4%EB%8B%9D%EC%84%B1)이나 요서 최대 도시인 https://ko.wikipedia.org/wiki/%EC%A7%84%EC%A0%80%EC%9A%B0%EC%8B%9C_(%EB%9E%B4%EC%98%A4%EB%8B%9D%EC%84%B1) 정도가 거론되나 이 지역은 MFL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만주와 별개로 한국령 원남에서도 프로야구 창단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프로야구단의 부재가 본토 3대 지역(조선, 이어, 원남)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낙후된 현실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인구는 2024년 기준 720만 정도로 프로야구단이 입지할 수준의 시장성은 확보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나, 타 본토 지역과 비행기로만, 그것도 3~7시간씩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원남 야구계에서는 아예 이어 구단들이 독립해서 이어-원남 리그로 재편하거나, 혹은 현재 6개 구단 체제인 서태평양 프로야구 리그[10]와 통합해 8~10개 구단 체제의 신 서태평양 리그를 창설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어 쪽에서는 전혀 호응이 없다.
- ↑ 당시 입장료는 15전으로, 평도시내 주요 극장 관람료와 같았다.
- ↑ 황성신문과 황성YMCA야구단이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아 같은 계열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으나, 실제로는 별 상관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당시 황성신문과 황성YMCA 모두 야구계에서 영향력이 드높았기 때문에 이를 역이용해 제휴관계를 맺고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했다.
- ↑ 황성YMCA야구단은 애초에 개신교 선교구단이라 프로전환에 갑론을박이 벌어졌으나, 결국 황성YMCA야구단은 황성YMCA에서 분리하여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마침 추진되고 있던 황성YMCA의 평도YMCA로의 전환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과정에서 황성YMCA는 YMCA를 Young Men & Children's Authority로 고쳤다. 지금 보면 여러모로 이상한 조어지만 어쨌든 이미 야구계 최고의 파워브랜드가 되어버린 YMCA를 고수하느라 이렇게 된 거라 구단도 팬들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상황.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YMCA 하면 기독교보다는 야구를 먼저 떠올리는 상황이며 당시 황성YMCA에서 야구단을 떠나보낸것도 하라는 선교는 안하고 야구단으로만 인지도를 한껏 높여버려 내부 보수파들 사이에서 불만이 컸던 것도 한몫을 했다.
- ↑ 1936년 금산분리 시행으로 평한철도에 매각, 평한 호크스가 되었으며 2021년 SLT 호크스로 참가.
- ↑ 舊 성일 렉스 인수
- ↑ 舊 서경 메신저스 인수(1956년)
- ↑ 舊 국제 세일러스 인수
- ↑ 舊 평한철도 호크스 인수
- ↑ 만주 풋볼 리그(Manchurian Football League)
- ↑ 타이완과 류큐의 프로야구 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