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테시아는 38세기경 인류가 개척한 습윤형 행성이다. 은하 곳곳에 퍼져있는 카네 아테르니티노의 기원인 곳이며, 여러 거주 가능 행성들을 침략하는 아테르니티냐 제국 개척군단의 모성(母星)이기도 하다.
설명
역사
개척기
현재의 문명은 38세기 때 총 10대의 대형 식민선이 착륙함으로써 시작되었으나, 착륙 당시부터 테시아가 "어떤 문명에 의해 최근까지 행성단위로 체계적 관리를 받았던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 첫 정착민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예시로, 콜리나 로사(현 로지노 가톨릭 교회 교황령 위치)의 경우는 산 전체가 정원처럼 색색깔의 장미 군락들이 색깔별로 정렬되어 있었고, 일부 지역에선 알 수 없는 용도의 기계 파편들이 출토되곤 하였다. 주로 초월공학 특유의 패턴을 보이는 유물들이었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약 27세기쯤 이곳에 인류가 정착했고 이들이 기술적 특이점을 이룬 후 정신적 초월까지 성공하여 이 행성에서 떠났다고 주장한다.
현 인류가 행성 내 대륙 전체를 탐사한 후 주요 지역에 정착한 것은 46세기 초이며, 이때부터 테시아 행성 내엔 다양한 사상들이 발생했다. 개척 초기였던만큼 행성엔 낙관주의적이고 이타주의적인 사상이 많았고, 인프라 건설은 커녕 국경마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분쟁은 거의 없었다.
분열기
49세기경 인류가 쾌적하게 거주할 수 있는 테시아의 모든 지역에 인프라가 건설되었고, 두루뭉술했던 국경 역시 확정되었다. 각 국가별로 국경분쟁에서 정복전쟁 등 다양한 분쟁이 일어났다. 이때 자본주의 국가 연합인 자유국가기구와 사회주의 국가 연합인 세계혁명연맹이 수립되어, 자기 소속의 국가간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테시아에선 53세기까지의 시기를 혼란의 세기라 불리며, 그 시기엔 이념이나 문화, 혹은 제노타입간에 따라 여러 국가들이 건국되거나 소멸되는 것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당시까진 아테르니티냐 왕국은 아테르노 반도 어딘가에 있던 작은 입헌군주정 국가였고, 오르나티아 공화국 연방은 서서히 극단주의자들이 정계에서 날뛰긴 했지만 아직 의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민주공화국이었으며, 헬리아 제국은 오티아 대륙 극동에 위치한 섬에 있는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국가기구의 수장인 베스푸치아 공화국 연합과 루베아 사회주의 코뮌 연방이 당시 테시아의 열강이었고, 두 국가는 각각 자신들의 체제가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군사력보단 다른 분야에 투자했었다.
발견의 날
53세기 중반 반도통일전쟁이 아테르니티냐 왕국의 승리고 끝난 후, 두 세력의 이념 대리전과 전쟁의 상흔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아테르노 반도에 상이군인 출신이자 사상가인 '체사레 나자리'와 그의 새로운 사상-사회주의와 극초기 파시즘을 섞은-인 '결속주의'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모든 혼란이 열강들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하며 '제 3의 길'을 갈 것을 약속한 체사레는 '라치아 진군'을 통해 당시 왕이었던 비토리오 레오네 사벨리 2세로부터 총리직을 위임받는다.
외부세력에 대한 증오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는 기치 아래 빠른 속도로 회복하던 왕국에, 테시아의 운명을 완전히 바꿀 기회가 우연찮게 발견된다. 반도 남부의 숲속에서, 광물지대를 찾던 지질학자들은 심층 스캐너에서 부자연스럽게 생긴 지질구조를 발견해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듯한 이 터널은 지질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이들은 그곳에서 판도라의 상자라 불리는, 초월공학 유산들이 담겨져 있는 대형 금고실을 발견해냈다. 금고실 안에는 예시로 만들어진 수백개의 발명품들과 함께, 알 수 없는 구조의 유기물질 저장장치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가 있었고, 이 안에는 자연과학에서부터 공학기술까지, 테시아의 과학기술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수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체사레 나자레와 결속주의당은 보고를 받자마자 이곳을 "국영화" 한 다음, 일대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한 후 아무도 오지 못하게 막았다. 지질학자들은 정부에게 큰 돈을 받고 이를 비밀로 할 것을 강요받았다. 체사레는 자신의 일기에 이 날을 발견의 날이라 부른다.
발견의 날 이후 다른 강대국들에 비하면 상당히 뒤쳐진 경제력, 기술력을 가진 아테르니티냐 왕국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발굴해낸 기술들을 충성과 큰 로열티를 댓가로 자국내 기업들에게 팔거나 국영기업에 사용했고, 이는 왕국이 단 60년만에 열강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왕국의 유래없는 발전에 당황한 자유국가기구와 세계혁명연맹은 원인 조사 다음 기술 탈취를 목적으로 수많은 첩보원들을 보냈지만, 첩보원들은 전부 실종되거나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
53세기 극후반 오르나티아 공화국 연방은 결국 결속주의 선동가였던 1대 퓌러 요하임 슈타인하우저에 의해 독재국가로 전락했고, 헬리아 제국은 오티아 대륙의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다 자유국가기구와 세계혁명연맹 두 세력에게 전부 엠바고가 걸렸다. 아테르니티냐 왕국의 2대 두체는 이때를 노려 이들과 일부 독재국가들을 모아 결속주의 국가 연합인 삼두동맹(Triumviratus)을 만들었다. 아테르니티냐는 헬리아와 오르나티아에 자신의 기술들과 그동안 모아온 부를 일부 흘려보냈고, 이들은 극적인 군사력과 경제력 성장을 보여주었다.
세계통일전쟁
54세기 초 충분한 군수품들과 자원이 모였음을 확신한 삼두동맹은, 오르나티아 라이히가 자유국가기구 소속의 레하니아 공화국에 선전포고를 사는 것을 시작으로 세계통일전쟁의 막을 올렸다. 일부 기술들이 유출되어 자유국가기구와 세계혁명연맹도 이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삼두동맹과 두 연합의 차이는 극명했다.
전 국민이 항전하면서까지 싸웠으나 7주만에 항복한 레하니아 공화국, 전 국토가 파괴될 정도로 격렬하게 싸웠음에도 10주만에 패배한 살리아 제 8 공화국, 테시아 내 해군력 1위였던 함대를 개전 3년만에 괴멸당한 후 5주만에 항복한 알비온 연합 왕국까지. 개전 5년째, 루베아 연방은 수도가 점령당했고, 6년엔 헬리아 제국이 센트랄리아 국민정부를 항복시켰으며, 아테르니티냐 왕국이 베스푸치아의 본토에 '성공적'으로 상륙했다.
개전 7년에 베스푸치아의 국토 60%가 점령당했다. 전차의 운용률에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푸치아와 아테르니티냐의 전차 교환비율이 1:10을 기록했다. 동년도 3분기엔 아테르니티냐에서 신무기인 반물질 폭탄을 베스푸치아와 루베아 국토에 위치한 소도시에 투하하였다. 철근 콘크리트 혹은 철골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대다수였던 도시였음에도 범위 내의 모든 것들이 소멸된 수준이었고, 베스푸치아의 일부 주들이 항복하는 이유가 되었으나 각 국가의 중앙정부는 계속 저항하였다.
개전 8년 1분기, 루베아 연방 서기장 엘리제 뒤퐁이 등에 등산용 도끼가 박혀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베스푸치아의 대통령 잭 샌더슨이 수도인 링컨에서 항전 중 대통령 관사에 직격한 벙커버스터와 함께 폭사한다. 결국 개전 8년만에 자유국가기구와 세계혁명연맹이 무조건 항복하는 것으로 세계통일전쟁은 5342년 삼두동맹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냉전
삼두동맹이 테시아를 세 갈래로 분할하고 새로운 체제를 세운 지 약 반백년이 흘러 5400년이 되었다. 아테르니티냐, 오르나티아, 헬리아는 각각의 방식으로 결속주의를 체화하며 자신의 길을 모색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동맹 내부의 결속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각국의 독자적 이해관계와 그로 인해 벌어진 여러 사건들은 동맹을 위협하는 불씨가 되었다. 체제의 장밋빛 이상과 달리, 삼국은 경제적·이념적 갈등으로 인한 균열을 감추지 못하고 냉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속주의를 창시한 아테르니티냐는 경제와 군사에서 강한 국가적 개입을 표방하며 첨단 기술을 독점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발굴된 초월적 기술들은 아테르니티냐의 국가적 비밀로 남았고, 오르나티아와 헬리아는 열화된 기술을 비싼 로열티를 내고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경제적 격차를 확대하여 아테르니티냐의 기술적 우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한편 헬리아의 자이바츠들은 열화된 기술을 응용해 값싼 고품질 민간 소비재들을 대량 생산해 시장에 내놓으며, 아테르니티냐와 오르나티아의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무역 분쟁은 관세 인상과 수입 제한 조치로 이어졌고, 각국의 경제적 긴장을 극한으로 몰고 갔다.
이념적으로도 삼국은 결속주의의 해석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아테르니티냐는 결속주의의 원형을 유지하려 했으나, 급속한 사회 변화와 새로운 노동 계층의 등장으로 딜레마에 빠졌다. 이에 비해 오르나티아는 인류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민족결속주의로 변질하여 아테르니티냐의 다민족, 다문화적 접근을 비난했고, 이를 "인류의 유산을 훼손하는 배신 행위"라 비판했다. 반면 헬리아는 식민지에서 각 제노타입 간 갈등을 조장하여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며, 그나마 겉으로 따르는 척 했던 결속주의의 통합적 정신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익만을 추구했다.
동맹 내부의 긴장감은 점차 증폭되었고,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오르나티아가 아테르니티냐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비밀리에 스파이를 파견한 사건은 외교적 파장을 불러왔으며, 헬리아는 두 국가의 식민지 반란을 비밀리에 지원하면서 갈등을 부추겼다. 결속주의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삼국이 모인 정상 회담도 각국의 해석 차이로 인해 결렬되었고, 회의장은 서로를 향한 비난과 경멸로 가득 찼다.
이러한 갈등은 점점 더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았다. 결속주의로는 모두가 평등하게 만들 수 없음을 인정할 수 없었던 아테르니티냐는 한가지 편법을 짜내어, 제노타입이자 "어쨌든 인간은 아닌" 카네 아테르니티노를 창조하여 생산성과 군사력을 높였다. 오르나티아는 이를 '인류 순수성의 훼손'이라 주장하며 격렬히 반발했고, 헬리아 역시 경제적 영향과 사회적 불안정성을 우려하며 이를 경계했다. 각국은 점차 결속주의라는 깃발 아래 모였던 이상을 저버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경쟁으로 치달았다.
결국, 삼두동맹은 5482년 헬리아 대제국이 자신의 식민지들과 괴뢰국들로 이루어진 오티아권 국제기구를 창설하고, 잇따라 오르나티아 역시 판무관부와 괴뢰국들로 이루어진 통합생활권을 창설함으로써, 테시아의 삼두동맹은 박살난 채 증오만 남은 냉전으로 치달았다.
현재
5500년, 테시아는 세 개의 초강대국인 아테르니티냐, 오르나티아, 헬리아가 각각 행성의 안정을 위협하는 내외부의 도전에 맞서 싸우는 불안정한 냉전 상태에 놓여 있다. 각 국가가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 적응하면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한때 통일되었던 삼강 체제의 분열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유전자 조작 '아인류' 카네 아테르니티노의 인구가 1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들의 처우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논쟁이 커지고 있다. 학계와 활동가 그룹은 점점 더 그들의 권리 또는 최소한 인도적인 노동 조건을 옹호하며 이러한 노동력 사용의 윤리적 의미에 대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때 진보와 확장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던 오랜 우주 식민지화 프로그램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부가 쓸데없는 노력에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비평가들과 함께 지속적인 자금 지원과 실행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집권당 내 정치 환경은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다. 보수파는 온건한 개혁을 통해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반면, 급진파는 초기 결속주의의 진정한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보다 과감한 변화를 주장하며 과거의 혁명적 열정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산드라 로카텔로가 제7대 총리로 선출되면서 정치 지형이 더욱 불안정해졌다. 철학과 수석졸업자이자 젊은 나이에 3개의 박사학위를 딴 로카텔로는 정통적이지 않은 견해로 유명한 인물로, 전통적인 권위주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수주의자와 급진주의자 모두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며 '민주적' 풍미를 지닌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76세의 라이히스퓌러 베른하르트 쇠르너는 민족결속주의를 더욱 극단적인 수준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의 정책은 무모한 인프라 프로젝트의 경제적 파장이 계속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우월한 인간'을 위한 포퓰리즘적 조치에 점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 부채는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으며 자원 배분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강하고 우월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사치스러운 지출은 특히 비-베이스라이너 제노타입 중심으로 불안과 불만에 대한 보고가 증가하면서 그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해외로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망명률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합병된 영토와 속국으로 구성된 행정 지역인 국가판무관부에서는 제국에 보내는 자원과 공물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중앙 정부는 부패나 지역 반발을 의심하며 이러한 경향을 해결하기 위해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쇠르너의 권위주의적 지배력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며, 그의 선전 기관은 통일되고 불굴의 오르나티아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홍보중이다.
헬리아 제국에서는 자이바츠 대기업들의 영향력이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독점 기업이 주요 부문을 장악하고 그 힘을 이용해 국내 및 식민지 자원을 착취하고 있다. 점점 더 무자비해지는 이들의 행태는 대중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지만, 헬리아 정부의 단일 승인 정치 조직인 제국익찬회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이바츠를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이 눈에 띄는 약점으로 드러나자 충성파조차 자이바츠의 규제받지 않는 권력이 제국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한편, 오티아권 국제기구의 꼭두각시 정권인 센트랄리아 유신민국은 최근 새로운 수상을 임명하고 센트랄리아를 다시 한 번 산업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헬리아의 경제적 우선순위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행동은 정권의 진정한 의도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 많은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든, 단순히 국내 불안을 달래려는 움직임이든, 정책의 변화는 제국 지도부에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냉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테시아는 이념 경쟁과 경제 투쟁의 순환에 휘말렸고, 세 강대국은 점점 더 서로 얽히고설킨 그물망에 빠져들고 있다. 한때 원대했던 결속주의의 비전은 불신과 경쟁, 내부 붕괴가 단결과 힘을 대체하는 분열된 현실로 변질되었다. 각 국가가 쇠퇴의 유령과 씨름하면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세 제국의 미래, 그리고 테시아 자체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기술
51세기까지 이들은 21세기 중반 인류의 기술력과 비슷했으나, "판도라의 상자" 발견 후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56세기 기준 이들은 소형 핵융합 발전기, 상온초전도체, 12세급 지능의 AI, 입자무기, 일반인의 신체보다 강력한 보철물 등을 상용화했다. 유전자 편집 능력 또한 발전하여 일반 사기업에서도 새로운 제노타입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갖췄으나, 문화적 및 정치적 논란 때문에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문화
준 번화계급으로 발달한 기술과 이질적으로 이들의 문화요소는 20세기 초중반의 유럽과 비슷하다. 이들의 문화를 일컽는 "로마시타(Romascita)"는 아르데코 혹은 신고전주의적인 디자인이 우세적이며, 거대한 사이즈와 직선에서 오는 위압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국가
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