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베르녜는 43세기경 인류가 개척한 습윤형 냉대기후 행성이다. 은하 곳곳에 퍼져있는 류니카, 소볼류드와 같은 카르나로디아인들의 기원이다. 한때 열핵전쟁으로 인해 독성계(toxic world)로 분류되었으나, 1세기만에 해제되었다.
특징
베르녜는 K형 주계열성을 공전하고 있으나 골디락스 존의 거의 끝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에 평균 기온이 낮은 편에 속한다. 지역 대부분이 냉대기후이며, 생물군계 또한 대다수가 타이가로 구성되어있다. 일반적인 농사가 불가능한 툰드라 기후의 지역 역시 많이 퍼져있는지라 개척기 시절부터 유목민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어왔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온난기후대는 숲보단 초지로 구성되어있어 이로 인해 비옥한 흑색토 지형이 많기 때문에 베르녜에는 곡창지대가 많다.
또한 지하자원 역시 풍부하여, '역청탄과 철광석'은 베르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이를 통해 번영할 수 있었던 카르나로디아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다.
설명
역사
개척기
카르나로디아인의 역사는 43세기경 7대의 식민선이 베르녜의 온대림에 위치한 강가(現 카르디나스크)에 착륙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흑색토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지역이였기 때문에 식량문제는 없었으며, 역청탄과 철광석을 위시로 한 풍부한 지하자원들 덕분에 이들은 빠른 속도로 산업계 문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45세기경 대규모 마름병으로 인한 식량위기 때 일부 정착민들이 툰드라에 진출했고, 이들이 현재 베르녜 유목민들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카르나로디아에선 47세기까지를 개척기라 부르며, 이 시대에는 조상들이 빈 땅을 개척해나가며 새로운 국가와 공동체를 설립했다. 48세기경 국가는 총 24개, 인구 100만명 이상의 대도시가 31개에 달하는 등 순조롭게 번영해나갔다. 다양한 산업체들이 성장했고, 이 때 생명공학 회사들 역시 성장하여 유전자 시술이 유행이 된 적이 있었다. 이 때 개발되어 카르나로디아인들에게 널리 퍼진 제노타입이 류니카와 소볼류드이며, 이 두 제노타입 유전자는 생식유전자였던지라 핵전쟁 후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연방의 탄생
49세기경 베르녜의 대륙 중 35%만을 개척했으나 국가만 해도 40개에 다다르고, 분쟁까지 일어나는 등 혼란이 생기기 시작하자, 가장 국력이 강했던 카르디나스크 공화국과 12개의 국가들이 협약을 통해 카르나로디아 인민연방의 이름으로 통합된 것이 연방의 시작이다. 모체인 카르디나스크 공화국이 그러했듯 연방은 민주주의를 국체로, 사회주의 요소가 다소 섞인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경제체제로 삼았다. 인민연방의 안정적인 성장에 일부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흡수되거나 제휴국으로 참여하였으며, 일부 적대적인 국가의 경우 무력으로 흡수하기도 하였다.
51세기가 되자 행성 내 국가들은 12개로 줄었고, 카르나로디아 연방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연방의 제휴국이었다. 국가간 분쟁이 줄어들었고, 정부들은 군비를 아껴 사회발전요소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악연의 시작
이전부터 탐험가들 사이에서 서쪽에 호전적인 인류 아종의 문명이 있다는 소문과 함께 우타미르들이 찍힌 사진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녔으나, 카르나로디아인이 우타미르와 공식적으로 조우하게 된 날은 48세기경이다. 현 우타미르 전세계패권국의 사절이 현 서카르나로디아 연방관구 서쪽에 위치했던 엔자리스탄 공화국에 '더 이상 국경을 확장하지 말 것'과 '자신들과 접촉하려 하지 말 것'이라는 서신을 보냈었으나, 엔자리스탄 공화국 정부는 이 문서를 무시하고 개척을 이어나갔고 공화국이 연방에 흡수된 뒤에도 연방은 이를 이어갔다. 그렇게 53세기쯤에 우타미르 패권국과 국경이 맞물리게 되며 기나긴 악연이 시작되었다.
패권국에선 사절을 다시 보냈는데, '자신들과 절대로 접촉하려 하지 말 것, 국경을 넘은 카르나로디아인들은 무조건 사살'이라는 내용이었다. 종종 카르나로디아의 유목민이나 일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었다 사살당하기도 했으며, 이에 연방정부는 우타미르측과 연락하려 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우타미르측의 정찰기로 추정되는 항공기가 카르나로디아 상공을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연방정부의 대응은 초기까진 무시나 전파를 통한 항의만 했으나 결국 격추로 변경했다. 이외에도 수역 문제로 해양경찰간 싸움이 벌어지거나 이들에게 매수되어 군사정보를 넘긴 스파이가 발각되는 등 우타미르의 도발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고, 카르나로디아 정부 역시 더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55세기 초 정찰위성과 고고도 정찰기를 통해 패권국의 병력들이 국경 근처로 모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연방정부 또한 국경 근처에 병력을 추가 배치하기 시작했으나, 배치되었어야 할 연방군의 사단 중 절반만이 배치되었을 때 우타미르측에서 선전포고를 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대조국전쟁
전쟁 초기, 원래대로라면 국경에서 전선을 강화했어야 할 사단 중 절반만이 제시간에 도착했다. 제각각 전선에 간신히 도착한 부대는 고립되고 취약한 상황에서 우타미르군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고 전멸하거나 후퇴했다. 2년차 말에는 서부 카르나로디안 연방지구가 함락되었고, 개전 4년차에는 북서연방관구와 반도 연방관구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며 카르나로디아의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방어선이 무너지자 카르나로디아인들은 자연 장벽인 크로블 산맥이 있는 크로블 연방관구에 다시 집결했다. 높고 험준한 지형 때문에 기갑부대를 위시로 한 우타미르군은 이전처럼 진격하지 못한 채 돈좌되었다. 일부 우타미르 사단은 전선 후방으로 침투해 후방을 교란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병력은 수렁에 빠졌다. 고저차가 심하고 엄폐물이 널린 지형에서 카르나로디아군은 잠복해 있다 기습해 공격하는 식으로 우타미르군에게 큰 피해를 줬고, 공세가 여기서 멈추게 된다.
개전 6년째, 우타미르의 공세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을 감지한 카르나로디아 사령부는 대규모 반격을 준비했다. 카르나로디아의 산업력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고, 대부분의 무기 공장들이 크로블 연방관구 너머에 안전하게 위치해 있었다. 후방에 침투한 우타미르 사단의 산발적인 공습과 폭격을 제외하면 생산 라인은 안정적으로 가동되었다. '낙엽 작전'이라고 불리는, 카르나로디아군의 공세는 우타미르의 전체된 공세선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이 기세를 이어 카르나로디아군은 파죽지세로 몰아붙여 개전 7년째에 카르나로디아는 북서 연방관구를 탈환했고, 8년째엔 반도 연방관구 전체와 서카르나로디아 연방관구의 일부를 탈환했다.
개전 9년째, 서카르나로디아 연방관구의 대부분이 카르나로디아의 통제하에 돌아왔다. 하지만 우타미르의 격렬한 반격으로 카르나로디아는 다시 밀려났고, 10년째엔 서카르나로디아의 대부분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카르나로디아는 11년째에 '번개 작전'이라 불리는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고, 8개월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마침내 우타미르 영토로 넘어갔다.
개전 12년째,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카르나로디아 정보국은 우타미르측의 대규모 핵 공격 징후를 포착했다. 발사 플랫폼에서 ICBM이 목격되었고 전략 폭격기 편대가 준비중인 것을 확인했다. 이에 대응하여 카르나로디아 역시 핵무기들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15일 후, 우타미르 사령부는 아무런 예고나 경고 없이 ICBM 탑재체를 모두 발사했다. 카르나로디아 역시 모든 핵무기를 동원해 똑같이 핵공격으로 대응했다.
그렇게 대조국전쟁은 공멸로 대재앙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한때 번성했던 베르녜는 방사능 불길에 휩싸였고, 두 나라는 황량한 황무지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