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주공화국 제64-65대 총통 라이밍거 來明個(내명개) | Lái míng g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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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6년 3월 5일 (64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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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주공화국 정부 총통 | ||||
제38대 난징시장 | ||||
2208년 11월 1일 ~ 2212년 10월 30일 | ||||
제39대 난징시장 | ||||
2212년 11월 1일 ~ 2214년 4월 30일[1] | ||||
제64대 총통 | ||||
2214년 5월 1일 ~ 2218년 4월 30일 | ||||
제65대 총통 | ||||
2218년 5월 1일 ~ 2222년 4월 30일 (예정) | ||||
憲法政治講台 | ||||
3 | ||||
56, 57, 58 | ||||
난징 제2선거구 | ||||
칭화대학 (기자학 / B.A.) 칭화대학 (기자학 / M.L.) 케임브리지 대학교 (저널리즘학 / Ph.D.) | ||||
중국중앙텔레비전 주말 앵커 중국중앙텔레비전 정치사회부 기자 중화민주공화국 정부대변인 입헌정치연대 2대 주석 민선 38-39대 난징시장 |
개요
일생
가족은 원래 톈진시에서 중국공산당 고위간부로 일하고 있었는데, 증조부가 2023년에 홍콩보안법에 비판적인 입장을 냈다가 경질당해 후베이성으로 좌천되었다. 2031년의 대홍수로 인해 후베이성이 초토화되자 이후 윈난성으로 내려와서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2156년에 변호사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문학과 진학을 준비하였으나 기자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칭화대학에 입학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Ph.D. 과정을 밟은 이후에 2190년 귀국해 중국중앙텔레비전에 입사하였다. 2193년 중국중앙텔레비전의 주말 앵커로 일하다가 2195년에 정치사회부 기자로서 일하게 된다. 2197년에 청년 영입으로 중국민주당에 입당했고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198년 총선에서 난징 제2선거구에 출마해 51.53%를 득표하며 초선 의원이 되었다. 초선의원으로 중국민주당 부대변인을 맡았으며, 2202년 총선에서도 47.50%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2203년 중화민주공화국 정부대변인으로 임명되어 2205년까지 대변인 직책을 맡았다. 2206년 총선에서 56.21%로 3선에 성공하였고 입헌정치연단 창당에 참여하였다. 사퇴한 메이칭린 주석을 대신해 2207년부터 2208년까지 입헌정치연단의 주석직을 맡았다. 2208년 전국동시지방공직원 선거에서 수도인 난징 시장 선거에 출마해, 45.20%를 득표해 간발의 차로 사회민주연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 ↑ 총통 취임으로 인해 직무 정지